우리 말이 좋고 우리 글이 좋아
우리나라 단편 작가들을 꽤나 좋아한다고 여겼던 나였지만,
그래서 박민규, 김애란, 김연수, 김영하 같은
당대 최고의 단편 작가들을 틈틈히 찾아 읽는 나였지만
그 후보에 한 번도 한강이란 이름을 올린 적은 없었다.
만약 그랬다면 나는 오늘
모래톱에 묻힌 진주를 찾은 발견자의 기쁨으로
우리나라 최초의 맨부커상 수상 작가를 칭송했을지 모르겠다.
스스로의 안목에 대한 옹졸한 자부심을 글 뒤에 숨긴채 말이다.
한강은 원래 시인이었다고 들었다.
한 두편 정도 그의 수상작을 읽었던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작가의 사진에서 풍기는 심연의 우울감 같은 선입견 탓에
초입에 바로 읽히지 않는 그 우울이 뭍어난 문장 탓에
한 번도 그의 작품을 더 읽어봐야겠다고 생각지 않았다.
그런데 놀랍게도
영국의 어느 번역가가 독학으로 한글을 배운 뒤에
그녀의 작품을 찾아 읽고 번역까지 한 끝에
외국 작가의 표지에서나 읽을 수 있었던
대단한 문학상의 수상까지 끌어냈다는 소식에 괜히 내 얼굴이 뜨거워졌다.
외국에 알려진 작가라 해봐야 고작 고은이나 김영하, 신경숙 정도인데다
그나마 신경숙은 표절시비로 철저히 가라앉은 한국 문학계가
아마도 한동안은 한강이 일으킨 바람으로 시끄러이 떠들어댈테지만
왜 우리는 우리의 작품을 알아보지 못하고
항상 외국 어디 누군가의 인정을 받고 나서야
목소리를 높일 수 있는 것인지 스스로 곰곰히 되묻고 싶다.
정말로 우리가 그들을 부러워해야 하는 건
오랫동안 쌓아온 그들의 문학적, 문화적 토양이 만들어낸 권위라기보다는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제 3세계의 작품을 스스로 발견해내고
그것을 독학으로 배우고 익혀 세상에 소개하는 자신감,
아니 어쩌면 자존감이 아닐지 생각해본다.
그런 의미에서 상금의 절반을 쪼개어 번역가에 주는 그들의 결정은
한편으론 응당 당연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어찌 되었든 오늘은, 아니 어제는
정말로 오랫동안 기억할만한 기쁜 날이다.
그들이 알아보건 알아보지 못하건
우리 말과 글로 쓴 한국의 단편 작가들은 이미 그만큼의 역량이 충분했었다.
부디 한강이 그 시작이 되어주기를.
그래서 우리에게도
'문학적 자존감'이라는 거대한 샘의 물꼬가 트이는 날이 오기를.
그래서 언젠가 그 물길이 '한강'을 이루기를.
그래서 결국 '기적'이 되어주기를.
* 사진 출처: 한강 ‘채식주의자’ 英 맨부커상 최종후보 올랐다, <한국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