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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에 가지 않고 다큐 감독이 되다, 이길보라

사람도 브랜드가 될 수 있을까? #09.

1. 글을 쓰고 영화를 찍는 사람. 농인 부모 이상국과 길경희 사이에서 태어났다. 고등학교 1학년 재학 중 아시아 8개국으로 배낭여행을 떠났고, 여행에서 돌아온 후 학교로 돌아가지 않고 학교 밖 공동체에서 글쓰기, 여행, 영상 제작 등을 통해 자기만의 학습을 이어나갔다. ‘홈스쿨러’, ‘탈학교 청소년’ 같은 말이 거리에서 삶을 배우는 자신과 같은 청소년에게 맞지 않다고 판단해 ‘로드스쿨러’라는 말을 제안했고, 그 과정을 2008년 자신이 제작하고 연출한 첫 영화 〈로드스쿨러〉에 담았다.


2. 어릴 때부터 다큐멘터리를 보는 걸 좋아했다. 소리가 들리지 않는 부모님은 영화관에 가는 취향을 가진 분들이 아니니까, 저도 어릴 때 영화관에 간 적이 거의 없다. TV로 다큐멘터리를 보면서 자랐는데, 고래와 상어가 나오는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을 어릴 때부터 너무너무 좋아했다. 자연스럽게 앞으로 그것들을 만드는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했고, 열 아홉 살에 처음 다큐 영화를 만들게 되었다.


3. 고1 때 학교를 그만두고 8개월간 인도와 네팔, 타이와 베트남 등 아시아 8개국을 혼자 여행했다. 돌아와서는 자신과 같은 탈학교 청소년들을 주인공으로 한 중편 다큐 <로드스쿨러>(2008)를 제작했고 자신의 여행기를 담은 <길은 학교다>(2009)를 출간했다. 청각장애인인 부모님과 자신의 가족사를 소재로 한 장편 다큐멘터리 <반짝이는 박수 소리>를 개봉했다. 지은 책으로 『해보지 않으면 알 수 없어서』, 『반짝이는 박수 소리』, 『길은 학교다』, 『기억의 전쟁』(공저), 『우리는 코다입니다』(공저) 등이 있다. 2021년 네덜란드 정부가 전 세계 여성 리더에게 수여하는 젠더 챔피언 상을 받았다



4. "나는 두려움 보다 ‘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더 강한 것 같다(웃음). 해보지 않으면 알 수 없으니까. 그래서 계획도 꼼꼼히 세운다. 네덜란드 유학도 그랬다. 출발선이 0이고 성공이 1이라고 해보자. 비싼 돈과 시간 들여 날아가서 면접 봤어도, 마지막 순간에 제가 떨어질 수 있다. 그런데 불합격이면 그냥 제로, 원점이 되나? 밑지는 건가? 아니다. 떨어져도 0.9의 경험을 얻고, 그게 내 몸에 쌓인다. 그 믿음을 엄마 아빠가 줬다. ‘할까, 말까’ 망설일 때, 아빠는 환하게 웃으며 그러신다. ‘보라야, 괜찮아, 경험!’."


5. "(자퇴는 스스로 결정한 거죠?) 그렇다. 나는 다큐멘터리 감독이나 NGO활동가가 되고 싶었다. 그런데 어른들이 그랬다. 다큐 영화감독이 되려면, 수능 잘 쳐서 좋은 대학 나와서 언론 고시 보고 방송국 들어가고 몇 년간 조연출 빡세게 해야 한다고. ‘세상에! 정말 이상하다. 이 길을 가려면 세상 사람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봐야 되지 않나? 내가 원하는 게 학위나 좋은 명함이 아닌데…’ 좋은 감독이 되려면 어떤 배움, 어떤 능력이 필요한지 알고 싶었다."


6. “경험하는 게 하나도 없으니까. 경험하는 게 학교 학원 말고는 아무것도 없는데 어떻게 꿈을 상상하고 경험하나? 난 더 많은 아이들이 학교를 그만둬야 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공교육이 변해야 하지만, 그 공교육을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더 다양한 배움의 기회들이 허용되어야 한다. 다양한 대안학교도 많아져야 하고 학교를 안 다니는 애들도 많아지고 공교육을 선택하는 애들도 여기저기 색깔 있는 학교를 선택해서 들어갈 수 있어야 한다.”



7. 고등학교를 자퇴한 후로는 선택한 대로 살았던 것 같다. 대학원도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간 게 아니라 이런 배움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선택해서 간 것이다.. 저의 경력을 보신 어떤 분들은 시스템 밖에 있는 경험을 하다가 다시 시스템으로 들어온 경험을 했다고 보시고 어떻게 다르냐고 질문하시는데, 나는 다른가? 한다. 저에겐 똑같거든요. 내가 필요한 배움을 그때 상황에 맞게 선택한 것이었기 때문에 시스템 안인지 밖인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8. 학교 멘토, 신부님, 대안 교육 학부모, 동남아 여행 작가… 그렇게 소개받은 사람을 만나러 지방을 두루 찾아다녔다. 노잣돈보다 사람이 재산으로 쌓였다. "학교에만 있었다면 절대 못 만났을 분들이죠. 그분들에겐 어김없이 돈과 훈계, 정보가 같이 따라왔어요." 이 패턴은 여행지에서도 그대로 이어졌다. "청소년이 배낭여행을 한다니 루피와 바트를 주는 분들이 많았어요. 콜라도 사주고 샌들도 사주시고."


9. 영화를 만들 때는 농인 부모님이 표정으로도 말할 수 있는 사람들이라는 걸 시각적으로 생생하게 보여줄 수 있어 좋았다. 일상의 소리라는 게 얼마나 작고 크게 느껴지는지 보여주고, 들려줄 수 있었다. 그런가 하면 책을 쓸 때는 재구성할 수 없는 기억이나 감정을 표현할 수 있어서 좋았다. 영화를 만들고 배급하면서 생긴 이야기까지 전부 다룰 수 있었다. 영화와 책이라는 두 개의 영역을 넘나들 수 있어서 다행이고 기쁘다.





* 내용 출처

https://bit.ly/3M5titQ (조선일보, 2020.10)

https://bit.ly/3SPMPRi (채널예스)

https://bit.ly/3yjITAd (노컷뉴스, 202

https://bit.ly/3SD6NyV (채널예스)

https://bit.ly/3EqyJS2 (마리끌레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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