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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미용실에도 브랜딩이 필요할까요?

늘 가던 미용실이 있습니다. 이사를 가서도 이 미용실을 찾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내 머리를 믿고 맡길 수 있기 때문입니다. 미용실 의자에 앉아 눈만 감고 있으면 모든 것이 끝납니다. 굳이 디자이너와 서먹한 대화를 이어가지 않아도, 스타일을 어떻게 해달라 일일이 주문하지 않아도 됩니다. 마치 자판기 커피처럼 나는 그냥 15분 정도의 시간을 견디면 됩니다. 내가 마리 헤어에 바라는 바는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습니다.


며칠 전에도 미용실을 찾았습니다. 그런데 처음 보는 낯설 얼굴이 보입니다. 원장님과 디자이너 한 분이 일하는 이곳을 찾는 이유는 바로 두 사람 누구든 내가 원하는 스타일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나의 놀란 표정을 읽은 듯 원장님이 서둘러 새로 온 디자이너에게 손님을 맞을 것을 주문합니다. 기왕이면 원장님이 만져주었으면 하는 내 바람이 산산이 무너집니다. 그래도 나는 굳이 말을 하지 않습니다. 괜히 미용실 공기가 어색질까봐서입니다. 나는 묵묵히 새로 온 디자이너가 가리키는 의자에 앉습니다. 자칫하면 마지막 방문이 될 수도 있겠다 생각합니다.


"얼마만에 미용실에 오신 거에요?"


새로운 디자이너를 만날 때마다 듣는 질문입니다. 이 질문에 어떻게 답하느냐에 따라서 이후의 대화가 달라집니다. 약 3,4주 되었다고 대답합니다. 이후 잠깐의 침묵은 아마도 '그보다는 더 된 것 같은데요?'라는 반문을 담고 있을 겁니다. 하지만 디자이너는 내게 다른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윗 머리가 너무 짧은 것 같은데 어떠세요?"


새로운 디자이너가 싹싹한 목소리로 물어옵니다. 나는 지금 정도의 길이가 낫다고 대꾸하고 눈을 감습니다. 다행히 더는 말을 걸어오지 않습니다. 디자이너는 마스크 줄에 테이핑을 합니다. 귀에 걸친 마스크 줄이 방해가 되는 모양입니다. 이런 배려는 나쁘지 않습니다. 바리깡 보다는 가위를 더 많이 쓰는 분이네요. 처음 가졌던 불쾌감이 조금씩 누그러집니다. 조금은 두터워 보이는 과한 화장을 한 이 분이 아주 눈치가 없지는 않구나 생각합니다. 가위질이 끝나고 샴푸를 할 시간입니다. 그런데 웬걸 손길이 거칩니다. 시간이 조금 지나서야 그게 두피 맛사지임을 깨닫습니다. 마이너스였던 기분이 플러스가 되는 순간입니다.


자리로 돌아온 후 그제서야 내 머리를 쓰윽 훑어 봅니다. 내가 원하는 건 단정함 그 자체입니다. 눈에 띄는 어떤 스타일도 원하지 않습니다. 짧은 머리는 손질도 쉽습니다. 내가 이 미용실에 바라는 건 바로 속도와 단순함, 합리적인 가격입니다. 수다도 서비스도 원하지 않습니다. 계산을 마치자 미용실 원장이 그제서야 새해 인사를 건네옵니다. 한 사람의 단골을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예의였을지도 모르겠네요. 나 역시 잠깐 동안 고민에 빠집니다. 굳이 이전 동네까지 다시 찾아와 머리를 만질 이유가 있을까? 새로 이사간 동네에서 새로운 미용실을 개척해야 할까?


미용실 원장님은 아마도 모를 겁니다. 만팔천원 짜리 남성 컷트 손님이 이렇게 다양한 생각을 하고 있을 줄 말입니다. 하지만 눈치 빠른 원장님은 아실 겁니다. 손님마다 제각각 원하는 바가 다르다는 것을요. 저는 한동안 이 미용실을 '무조건' 찾는 충성 고객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날의 경험으로 저는 새로운 선택지를 두고 고민을 하고 있는 중입니다. 만일 원장님이 제 마음을 읽었다면 어떤 서비스를 해주셨을까요? 일단 새로운 디자이너를 강요하기 전에 선택권을 주었을 것입니다. 바뀐 디자이너에 대한 피드백을 어떤 식으로든 들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원장님은 그 어떤 것도 묻지 않았습니다.


물론 저는 아주 소소한 고객입니다. 저 하나 오고 가는 것이 매출에 큰 영향을 주지도 않을 거에요. 하지만 제가 미용실 원장이라면 새로운 디자이너의 실력 만큼이나 고객이 이를 받아들이는 프로세스에서 신경을 썼을 것 같아요. 동네 미용실에 뭘 그렇게 많이 바라냐고요? 그러게요. 그런데 저는 3주에 한 번 가는 미용실에서의 시간이 조금은 편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이 미용실도 무려 일곱 번의 방문 끝에 어렵게 찾은 곳이거든요. 새로운 미용실을 찾는 건 언제나 큰 위험을 내포한 도전이구요.


브랜딩이 별건가요? 손님들 마음을 얻는 과정인 걸요. 제가 다른 선택을 한다고 해서 이 미용실이 훌륭한 브랜드가 아니냐면 그것도 아니에요. 제가 타겟 고객이 아닐 수도 있으니까요. 다만 구구절절 저의 경험담을 털어놓는 건 이 미용실에 보이지 않는 악플 하나를 달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무얼 하든 고객, 즉 사람의 마음을 읽으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얘기를 하고 싶어서였습니다. 저는 과연 마리 헤어를 다시 찾게 될까요? 굳이 마을 버스를 타고 10분 이상을 걸어야 하는 귀찮은 과정을 감내하면서. 글쎄요. 아직은 반반입니다. 문득 동네 장사 하나도 참 어렵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네요. 동네 미용실로 살아남기도 결코 쉽지 않습니다. 브랜딩이 이렇게나 어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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