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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새 희망퇴직자가 된 동생에게...

은행에 다니는 동생이 희망퇴직 대상자라고 한다. 물론 당장 퇴사할 생각은 없어 보인다. 하지만 20년 넘게 은행일을 해왔으니 언제가 반드시 회사를 나와야 할 것이다. 카톡으로 이런 저런 얘기를 하다 보니 버티라는 말도, 나오라는 말도 현실감 없을 것 같다. 그래서 '나라면 어찌 했을까?'를 몇 자 적어 보기로 한다. 가끔은 내 페북을 보는 것 같으니 언제라도 한 번은 읽어보지 않을까 해서다.


1. 요즘 핫한 사업들을 스크랩하자.


내 돈을 투자하든, 타인으로부터 투자를 받든 일단 사업을 시작하면 정신이 없을 것이다. 그것이 아주 조그만 카페일지라도 말이다. 그러니 지금이라도 수없이 많은 경우의 수를 수집해보자. 요즘 핫한 매장, 브랜드, 비즈니스 모델을 공부하듯이 학습해보자. 물론 이런 정보들은 수박 겉핥기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성공한 사람들은 이런 경우의 수에 밝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내게 물어보면 백 가지도, 천 가지도 얘기해줄 수 있다. 좋은 책과 전문가, 유튜버를 소개해줄 수 있다. 그들이 하는 사업을 하라는 얘기가 아니다. 그로부터 파생될 아이디어와 가능성들이 무궁하기 때문이다. 정작 뭐라도 시작하면 여유가 없어 이 내용들이 들어오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지금부터라도 시장을 보는 눈을 기르자. 성공과 실패의 이유들을 다양하게 섭렵하자. 나는 이게 진짜 중요한 준비이자 투자라고 생각한다.


2. 나만의 팬덤을 만들자.


내가 알기로 동생은 캠핑을 좋아한다. 그렇다고 유튜브를 찍거나 하는 등의 생산적인 활동까진 가지 않은 듯 하다. 하지만 명절날 여행 가려다 어머니한테 혼나는 꼴을 보아 하니 정말로 캠핑을 좋아하는건 분명한 것 같다. 인스타그램을 보니 캠핑카 한 대쯤 있을지도 모르겠다. 어찌 되었건 그동안 알게 된 것들이 한 두가지 아닐 것이다. 캠핑 장비며, 여행지며, 가족과의 추억이며... 그렇다면 이런 것들에 대한 정보에 목마른 사람들은 또 얼마나 많겠는가. 시간이 없어서, 돈이 없어서, 때로는 가족이 없어서 유튜브로 대신 만족하는 나같은 사람이 적지 않을 것이다. 그런 사람들을 팬으로 만드는 것이 동생이 가장 먼저 해야 할 퇴사 준비라고 생각한다. 하다못해 카페를 하나 만들어도 캠핑 컨셉의 카페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나라면 매장의 컵을 스노우피크에서 만든 스테인리스 컵으로 제공하겠다. 벽에선 내가 다녀온 캠핑장의 전경을 프로젝트로 쏘겠지. 캠핑 동호회에는 카페를 종종 저렴하게 빌려주기도 할 것이다. 돈이 목적이 아니다. 나와 취미와 관심을 공유할 수 있는 팬덤을 만들기 위해서다. 이런 식으로 다만 몇 백명이라도 팬을 만들어두자. 나중에 내가 무슨 사업을 하든 어마어마한 도움으로 돌아올 것이다.


3. 막연한 사업 아이템보다 '내 책'을 쓰자.


아무리 퇴사 이후를 고민한다 해도 회사 안에서 구체적인 준비를 하기는 힘들 것이다. 어찌 되었든 막상 닥쳐야 뭐든 되기 마련이니까. 그럼에도 준비를 한다면 나는 책을 써보라고 권해주고 싶다. 글로 옮겨 보면 안다. 내가 얼마나 준비가 부족한지 절실하게 깨닫게 된다. 아울러 내가 무엇을 가지고 있는지도 깨닫게 된다. 책은 수익을 올리기 위해 쓰는 것이 아니다. 나 자신을 객관화하고, 나를 타인에게도 매력있는 상품으로 만들어가는 과정이다. 일종의 시제품을 만들어보는 것이다. 내가 책을 써서 번 돈은 채 1,000만원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 이번 달 강의료 수입만 500만 원 정도다. 지난 수 년간 못해도 1억 이상은 벌었을 것이다. 책이 어렵다면 글이라도 쓰자. 회사 안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의 준비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동생의 나이 마흔 셋, 은행에도 견딜 수 있는 시간은 분명 한계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몇 년 후엔 지금처럼 몇 억의 보상금을 받기도 어려운 날이 오겠지. 나는 이런 퇴사자들의 목돈을 노리는 사기꾼들도 많이 보아왔다. 1년에 5,6억 정도 날리는 일은 아무것도 아닌게 현실이다. 나는 그러지 않겠지 싶지만 모두가 그런 생각을 한다. 어쩌면 나의 조언과 관심조차 부담이 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동생의 나이로 재취업은 쉽지 않을 것이다. 아직 조카들은 어리다. 그러니 남은 회사 생활 동안 앞서 얘기한 준비들만큼은 꼭 좀 했으면 좋겠다. 옆의 직원이 '카페 하시면 잘 하실 것 같아요'라고 했다는 말을 듣고 기겁을 했다. 그런 마음으로 절대 회사를 나와선 안된다. 프랜차이즈 사업자들 중에 사기꾼들은 또 얼마나 많던가. 아직 돈벌이를 해야 할 시간이 많이 남은 동생이다. 성실한 은행원으로 20년 이상 살았다면, 이후의 20년도 학교 다니듯 공부하고 준비해야만 한다. 5년 먼저 세상에 나온 형이 꼭 하고 싶은 조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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