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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름달 빵과 폭스바겐 광고

며칠 전 친구가 편의점에서 찍은 듯한 사진 한 장을 보내왔다. 자세히 보니 보름달 빵을 사진이었다. 수많은 빵들 중에 유독 그 빵이 반가웠다며 보낸 사진이었는데 사실 반갑기는 나도 마찬가지였다. 사진을 보는 순간 빵의 질감과 딸기잼의 맛이 금방 연상되었기 때문이다. 그 이유가 뭔지 궁금해 살펴보니 나무위키는 이 빵에 대해 다소 냉정하게 기록하고 있었다. 카스테라 빵은 기름 투성이며 잼도 사실은 설탕이 대부분이라는 설명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 순간 아파서 학교를 가지 못할 때마다 할머니가 사주시던 보름달과 요구르트 특유의 향을 떠올렸다. 그렇다 내게는 이 빵이 단순한 카스테라 빵이 아니라 할머니의 정성이 담긴, 그것도 아플 때만 먹을 수 있는 아주 특별한 빵이었던 것이다.


마케팅 관련 책 중에서도 고전으로 꼽히는 '포지셔닝'을 다시 읽고 있다. 수십 년의 세월이 무색하게도 이 책은 최근에 나온 어떤 관련 책보다도 풍부한 영감을 준다. 그 중에서도 폭스바겐의 'Think Small'이라는 광고는 내게 아주 특별하게 다가왔다. 이 차는 덩치 큰 미국 차들 가운데서 폭스바겐이 가진 장점을 너무나 잘 살린 위대한 광고로 꼽힌다. 자동차란 클수록 좋다는 미국인들의 고정관념을 완전히 뒤흔들어놓은 광고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광고가 내게 특별한 이유는 따로 있다. 나는 생애 첫 책의 제목을 '스몰 스텝'으로 지었다. 이 책은 6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여러 회사들의 특강 제목으로 자주 불려다니고 있다. 아마 이 책 한 권으로 번 돈이 족히 수천 만원은 될 것이다. 하지만 'small'의 힘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바로 뒤이어 쓴 '스몰 브랜드'란 책의 제목과 지금의 활동에 지대한 기여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제는 세바시랜드에서 4번째 수업이 있었다. 이 수업에서 나는 '박요철' 하면 무슨 단어가 떠오르는지를 수강생들에게 물었다. 그러자 절반은 스몰 스텝을, 나머지 절반은 스몰 브랜드를 이야기했다. 그렇다. 나는 지난 6년 간의 스몰 스텝이라는 키워드에서 나의 원래 업인 '브랜드'로 조금씩 포지셔닝을 해가고 있는 중이다. 스몰 스텝은 내게 참으로 고마운 책이지만 브랜드와는 연관이 없었다. 그러나 나는 서두르지 않고 'small'이라는 키워드로 나의 진짜 영역으로 내 위치를 옮겨가는 전략을 썼다. 그리고 최근에는 아예 '스몰 브랜드 연대'라는 모임으로 이 전략에 방점을 찍었다. 아마 5년 뒤 나는 스몰 스텝의 저자가 아닌 '스몰 브랜드'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사람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포지셔닝'은 위대한 책이다. 불과 1년만 지나도 그 쓸모를 짐작하기 힘든 트렌디한 책이 쏟아지는 지금과 같은 시대에서는 더욱 그렇다. 코인이 그랬고, 메타버스고 그랬고, 어쩌면 챗GPT와 같은 인공지능도 그런 유행을 타고 사라질지도 모른다. 유독 새로운 것에 집착하는 우리 사람들의 특성을 굳이 언급하지 않더라도 10년, 20년, 50년을 견뎌낼 수 있는 책은 그리 많지 않다. 내가 고 구본형 선생님의 책을 좋아하는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다. 30년이 훌쩍 지나 40년을 바라보는 지금, 구본형의 책들은 그의 독자들과 제자들에 의해 끊임없이 읽히고 있기 때문이다. 올해는 구본형 선생님의 10주기다. 그리고 나는 그가 생전에 했던 것과 거의 같은 메시지와 활동들로 나의 50대를 시작하고 있는 중이다. 다만 나는 'small'이라는 키워드로 나만의 빈틈을 만들어 스스로를 브랜딩해가고 있는 중이다.



친구는 왜 보름달 빵을 보며 나와 공유할 생각을 했던 것일까? 그건 아마도 그의 기억 속에 여전히 또렷히 하나의 영역을 만들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내게는 아픈 날 할머니가 챙겨주던 특별한 간식이었다면 친구에게는 아마도 그 나름의 스토리를 가지고 있을 공산이 크다. 그리고 이런 전략은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포지셔닝'의 위력을 새삼 느끼게 하는 부분이다. 그러니 내 이름 하면 떠오르는 하나의 키워드를 만들어 보자. 브랜딩이란 결국 인식의 싸움이다. 그렇다고 그 인식이 유재석이나 아이유처럼 거대한 것일 필요는 없다. 사람들은 나를 보며 무엇을 가장 먼저 떠올릴까? 이런 질문은 결국 가장 '나다운' 삶에 대한 고민으로 이어진다. 나는 내 삶을 바꿀 키워드로 'small'을 정한 후 지난 6년 동안 일관되게 이에 관한 글을 쓰고 강연을 하고 책을 내왔다. 나도 가능한 이 일을 누군들 하지 못할까? 이 새벽에 영감을 주는 이 책은 정말 고전 중의 고전이다. 위대한 책이다. 그리고 언젠가 나도 이런 책을 꼭 한 번 써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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