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몰 브랜드를 위한 12단계 브랜딩 프로세스
요즘은 빈 택시가 지나다녀도 카카오 택시를 부른다. 이유는 간단하다. 택시 기사에게 굳이 어디 어디를 가는지 설명하지 않아도, 확인받지 않아도 목적지까지 편하게 갈 수 있기 때문이다. 택시를 타는 중에도 어느 경로로 가는지 확인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내릴 때도 현금을 낼지, 카드를 낼지 고민하지 않아도 된다. 그러나 더 좋은 것은 '블루 서비스'를 이용할 때이다. 따로 교육을 받는지 아닌지 모르겠지만 블루 택시는 조용하다. 손님만 만나면 기다렸다는 듯 자신의 정치 신념을 설파하는 기사들이 있다. 정말 피곤하다. 특정 정치인을 대놓고 욕하는 사람들을 만나면 정치적 성향과 상관없이 내리고 싶어진다. 그래서 나는 빈 택시를 눈 앞에 두고도 카카오 택시를 부른다.
얼마 전 화제가 된 이니스프리 매장이 있다. 이 매장은 바구니의 종류를 두 개로 구분했다. 각각의 바구니에는 '혼자 볼게요'와 '도움이 필요해요'라는 문구가 각각 적혀 있다. 굳이 점원의 설명이 불필요한 사람들을 배려하기 위해서다. 그런데 이런 서비스는 관계에 예민한 일본인들에게는 더욱 절실했나 보다. 일본의 미야코 택시는 일찌감치 '침묵 택시'라는 서비스를 도입했다. 손님이 원하지 않으면 꼭 필요한 내용 외에는 말을 걸지 않는 서비스다. 재밌는 사실은 우리나라 택시 기사들은 이 서비스에 반대한 반면 젊은 택시 승객들은 높은 비율로 이 서비스를 찬성했다는 것이다. 택시 기사들 중에는 자신이 말을 걸지 않으면 손님들이 불편해한다고 믿는 사람들이 많았다. 과연 그럴까? 나는 적어도 젊은 MZ 세대 만큼은 높은 비율로 택시 기사들의 수다를 반기지 않을거라 확신한다.
브랜딩은 제품과 서비스를 통해 '가치'를 전달하는 일련의 과정이다. 여기서 말하는 가치는 쓸모 이상의 인간의 '욕구'를 의미한다. 그런데 이 욕구는 사람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결핍에 따른 필요와 본능을 따른 욕망, 불안과 불만, 해결이 필요한 문제들도 다 욕구와 관련된다. 이른바 매슬로우의 욕구의 5단계 피라미드를 보면 인간들의 다양한 욕구를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먹고 자는 생리적인 욕구에서부터 안전에 대한 욕구, 소속감, 사랑받고 싶은 욕구... 그리고 그 욕망의 맨 꼭대기에는 자존감과 자아 실현의 욕구가 있다. 어쩌면 사람들이 그토록 자신의 책을 쓰고 싶어하는 것도 이런 자아 실현의 욕구는 아닐지. 아무튼 브랜드를 쓸모가 아닌 욕망의 단계에 두면 왜 같은 제품이라도 그렇게 다양한 가격 차이가 나는지를 쉽게 알 수 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브랜드값이 바로 이 가치, 즉 욕망의 정도의 차이이다.
하지만 인간의 욕망을 다루는 일은 어려운 작업이다. 무엇보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자신이 무엇을 욕망하는지 잘 모른채 살아간다. 그러다가 어떤 새로운 제품이나 서비스가 주어졌을 때 비로소 '아, 내가 이걸 원했구나'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설문에 의존한 시장 조사의 한계도 여기에 있다. 사람들은 듣고 싶어하는 말을 해주려는 본능, 혹은 사회적 훈련에 길들여져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말 강력한 브랜드들은 사람들의 이런 니즈를 귀신같이 알아낸다. 그리고 지갑을 열게 한다. 나는 아직도 애플의 펜슬 하나가 왜 17만원이나 해야 하는지 잘 모르겠다. 키보드에 매직이라는 글자 하나를 붙이고 40만원을 받는 이유를 나 같은 소시민이 어찌 알겠는가. 그러나 사람들은 욕하면서도 그 제품을 산다. 엄청난 판매량이 이 사실을 증명해준다. 어디 그 뿐인가. 커피계의 애플로 불리는 블루 보틀, 가전계의 애플로 불리는 발뮤다... 이들 제품은 하나같이 비싸다. 나는 여기서 형언하기 힘든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를 본다. 이처럼 이성과 합리적인 판단을 뛰어넘는 소비를 가능하게 하는 것이 바로 브랜딩의 힘이다.
그렇다고 브랜딩을 명품과 외제차 같은 특별한 소비의 영역으로 국한하는 것은 어리섞은 일이다. '레오 119'라는 가방은 소방관이 입다 버린 방제복으로 가방을 만든다. 그리고 그 수익의 절반을 암투병 중인 소방관을 돕는데 쓴다. 직업의 특성상 유해 가스를 많이 마시는 소방관들은 최근까지 산재보험의 헤택을 받지 못했다. 이 브랜드는 그런 소방관들을 17명이나 도왔다. 버려진 천으로 비싼 가방을 만드는 프라이탁보다 백만 배는 훌륭한 브랜드라고 생각한다. 못생겨서 버려지는 농산물만 파는 '어글리 어스'는 어떤가. 예쁘지 않다고 버려지는 농산물이 그렇게 많은 줄 나는 미처 알지 못했다. 사람들이 명품백과 명품 시계만 '욕망'한다고 생각하면 그건 오산이다. 지구 환경을 구하기 위해 플라스틱을 쓰지 않는 '열매 상점'의 손님들은 어떤가. 이들은 세제와 화장품 같은 제품을 유리병에 그램을 재어가며 비용을 치루고 담아간다. 문제는 이런 가계가 서울에만 십여 곳을 훌쩍 뛰어넘는다는 것이다. 인간의 욕망의 프리즘은 이렇게도 깊고도 넓다.
나는 키보드 덕후다. 지금까지 수십 여개의 크고 작은 키보드에 돈을 낭비?해왔다. 아마도 와이프는 이런 나의 소비 생활을 죽을 때까지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컴퓨터에 글을 쓰는 도구로만 이해하자면 만 원짜리 키보드를 써도 전혀 문제될 것이 없다. 그러나 키보드의 세계는 또 얼마나 넓고 광대한가. 기계식 키보드로 넘어가면, 심지어 커스텀으로 넘어가면 가격대는 수십, 수백만원대로 확장된다. 적축, 청축, 갈축 등 컬러로 구분되는 스위치의 차이는 기본이다. 아주 개인적일 수밖에 없는 그 미묘한 키감과 타건감, 타이핑 소리에 사람들은 목을 맨다. 마음에 드는 키보들 가졌다 해서 글솜씨가 느는 것도 아닌데 사람들은 언제나 최고의 키보드, 색다른 기보드를 열망한다. 아니 실제로 그런 키보드를 만나면 글이 더 잘 써지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진다. 하물며 키보드 하나도 이럴진대, 각각의 제품과 서비스의 영역으로 들어가면 얼마나 할 말이 많겠는가. 배민이 '치믈리에 선발'이라는 이벤트를 연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치킨의 넓고 깊은 세계를 이 글 안에서 표현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그러니 사람들의 보이지 않는 욕망에 귀를 기울이자. 시장의 소비자들은 친절하지 않다. 그러나 관심을 갖고 관찰하면 이런 욕망을 못 읽을 것도 없다. 왜 사람들은 마카롱에 토핑을 터지도록 넣어 뚱카롱을 만들었을까. 동해를 따라 생겨나는 그 수많은 대형 카페들은 도대체 어떤 사람들이 찾아가는 것일까. 모두가 컴퓨터로 일하는 이 시대에 왜 만년필과 연필을 찾는 사람들은 왜 여전히 많은 것일까. 자청과 신사임당처럼 월천을 이야기하는 유튜버들은 어떻게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았을까. 이런 욕망의 지도를 해석하다보면 우리의 제품과 서비스를 어떻게 팔아야할지에 대한 아이디어가 샘 솟듯 솟아난다. 문득 클래식 음악을 담은 USB를 약봉지에 담아 팔던 저팬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프로모션이 생각난다. 그 약봉지를 닮은 포장지에는 'For Beautiful Skin', 'For Plesant Sleep' 같은 문구가 적혀 있었다. 그들은 단순히 음악을 팔지 않았다. 사람들의 숨은 욕망을 팔았다. 브랜딩의 단계에서 이런 욕망 읽기가 중요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