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세엽의 스몰 스텝 이야기 (2)
일상에서 부딪히는 일 중 어렵게 느껴지는 일이 있을 때, 나는 그걸 스몰스텝으로 잘게 나눠서 만들어보는 습관이 생겼다. 내향형의 성향을 지닌 나는 주로 거절하기, 요청하기, 나를 드러내기, 내세우기를 어렵게 느꼈다. 그런 일들에 늘 그래오던 대로 망설이고, 움츠러들고, 상대방이 원하는 답을 내 것인양 제시하다 보니 내 자신에 대한 불만들이 쌓여갔다. 나는 솔직하게 살고 싶었다.
승진자 명단에서 누락되던 어느날이었다, 나는 사람들이 습관적으로 "이번에 안되서 어떡해? 아쉬웠겠다" 라고 묻는 인사말에 나도 습관적으로 "괜찮아요" 라고 대답하고 있음을 발견했다. 사실 직장에서 승진을 열망하고 삶에 엄청나게 큰 비중을 차지하진 않더라도 완전히 쿨할 만큼 괜찮은 건 아니었다. 하루 동안 수십번 "괜찮아요"를 연발하고 내 감정을 억누르다 보니 퇴근할 무렵 더 지치고 한숨만 나왔다. 이렇게 괜찮아요만 연발하다 정말 '승진 안해도 괜찮은 애'로 인식되면 어쩌나 하는 걱정도 생겼다.
집에 와서 스몰스텝을 정리해 둔 파일을 열었다. 물론 물어보는 사람들은 특별히 정말 내 기분을 알고 싶어서가 아니라 가벼운 관심이나 위로를 표현하는 거였다. 나도 특별히 "네, 아쉽고 기분이 나빠요"라고 대답해서 상대방을 불편하고 어색하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 그럼 내 기분을 속이지 않고 솔직하게 대답하면서, 상대방의 배려도 어색하지 않게 만드는 가벼운 멘트가 없을까? 나는 귀가 후 곰곰 생각하다가 지금 상황에 맞는 대답을 생각해 냈다.
"그러게요. 기분이 좀 그러네요"
"예, 다음엔 꼭 되겠죠"
이런 것까지 연습해야 하다니, 나의 쿨하지 못함에 피식 웃음도 나왔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승진에 대한 서운함을 과하지 않게 표현하면서 그다지 연연해하지 않음을 자연스럽게 나타내 주는 말이라며, 나는 스스로 감탄(?)했다. 그 날 저녁 남편을 상대로 어조와 높낮이까지 맞춰서 연습했다. 다른 사람들은 대화할 때 순발력이나 재치로 떠오를 수도 있는 여러가지 반응이지만 나는 연습을 해야 자연스럽게 나올 수 있었다.
그 후로, 내 마음속에 떠오르는 불편한 상황들이 떠오르면 나는 스몰스텝 파일에 정리해둔 멘트들을 훑어본다. 나를 드러내야 할 때, 요청해야 할 때, 거절해야 할 때... 모든 상황들을 내가 왜 불편해했는지 적고 그리고 내가 어떤 방식으로 원하는 바대로 솔직하게 표현할 수 있는 멘트와 태도, 방식을 정리해놓은 스몰스텝 파일이다.
- 자연스럽게 서운함을 표현하기
- 유난스럽지 않게 나를 드러내기
- 담백하게 요청하기
- 요청하면서 충분히 기다렸음을 표현하기
- 침착하게 거절하기
- 당당히 이야기하지만 미안함을 살짝 표현하기
앞서 승진에 누락됐을 때처럼 자세히 상황을 정리해놓으면, 나는 자연스럽게 나를 표현하고 드러내고 거절할 수 있는 여유가 생긴다. 때로 새로운 상황에 맞닥뜨려 예전처럼 우물쭈물할 때도 있다. 그럴땐 집에가서 이 파일을 열고 새로운 상황을 업데이트한다. 불편한 상황이나 당황스러운 상황에서도 나를 자책하지 않을 수 있도록 지켜주는 든든한 나의 스몰스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