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밀리터리 덕후다. 전쟁 이야기와 무기 이야기들을 무척이나 좋아한다. 주로 유튜브를 통해 관련 정보를 얻는다. 샤를세환, 건들건들, 허준의 건담 등을 즐겨 본다. 요즘은 에어소프트건에 빠져 벌써 여러 자루를 샀다. 머나 먼 사격장을 찾아 혼자 총 쏘러 간 적도 여러 번이다. 한 번은 4시간 이상 무아지경으로 사격을 하고 온 적도 있다.
어린 시절 우연히 보았던 육사 생도들의 교과서를 보고 흥분했던 기억이 새롭다. 전 세계 전쟁의 전략을 다양한 그림으로 정리해놓은 책이었다. 그러니 전쟁 영화를 좋아하는 건 당연한 건지도 모른다. 라이언 일병 구하기, 밴드 오브 브라더스, 퓨리, 알렉산더 등의 영화는 잊을만 하면 다시 본다. 그런데 문득 궁금해진다. 나는 왜 이런 밀리터리 콘텐츠에 열광하는 것일까?
나는 어릴 때 전쟁 놀이를 하면서도 동네 지도를 그렸다. 그 지도를 보고 약점을 찾아 공격하는게 그렇게 재밌을 수 없었다. 그렇다고 작전대로 되는 경우는 거의 없었으나 보통의 아이들과 달랐던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그러니 공부도 일도 계획대로 하는 것에 익숙했다. 그러나 그럴수록 계획대로 되는 일이 없다는 것을 빨리 깨닫는 데에도 도움이 되었다. 그래서 나는 어느 순간 '다른' 삶을 살기 시작했다. 일단 일을 벌이는 '나답지 않은' 삶을 살기 시작한 것이다.
스몰 스텝이 대표적인 사례다. 어느 순간부터 계획하고 준비하는 것에 너무 많은 힘을 쏟지 않기로 했다. 일단 저지르로고 보는 편을 택하기 시작했다. 일상에서도, 일에서도 작은 도전을 감행하기로 했다. 그러자 내 일과 삶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지금도 나는 오랜 고민 없이 일을 벌리길 좋아한다. 그리고 적지 않은 경우 그런 시도를 좋은 결과를 만들었다. 그러나 부작용도 함께 생기기 시작했다.
최근 들어 '스브연' 활동을 함께 하는 운영진들로부터 야단을 맞았다. 너무 자주 가볍게 시작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지속하지 못한다는 핀잔도 들었다. 안되면 그만인 일들을 벌이다 보니 주변 사람들이 피곤해지기 시작했다. 모임에 참여하는 사람들 역시 혼란스러워하기 시작했다. 계획도, 약속도 자주 바뀌니 신뢰에도 문제가 생긴다고 했다. 그래서 요즘의 나는 새로운 일을 벌이기 보다 이미 시작한 일을 마무리하는데 힘을 쏟고 있는 중이다.
이렇듯 '나를 아는 일'은 결코 쉽지 않은 시행 착오를 거치기 마련이다. 원래의 나는 꼼꼼하고 집요한 구석이 있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 틀을 벗고 나왔을 때 아주 작은 성공을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지금의 나는 다시 한 번 그 틀을 벗고 나오려 애쓰고 있다. 스몰 스텝으로 시작한 일을 빅 워크로 천천히 걷는 연습을 하고 있는 중이다. 나는 이것이 나를 발견하고 브랜딩하는 중요한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스스로를 너무 규정 짓는 MBTI와 애니어그램을 깊이 신뢰하지 않는다. 정말로 나를 '발견'했다고 느낄 때는 늘 나 자신을 뛰어넘는 경험을 했을 때였다. 몸무게 50킬로그램도 되지 않는 몸으로 군대를 갔다. 그리고 180여명의 훈련병들 중에서 사단장 표창을 받았다. 최근 세바시에 나온 내 모습을 뒤늦게 보신 장모님이 깜짝 놀라 내게 전화를 해오셨다. 내가 그런 사람인줄 꿈에도 모르셨다고 했다.
그러니 나를 '발견'하는 일에 매몰되지 말자. 그런 나를 뛰어넘는 시도를 게을리 하지 말자. 나는 가장 나다울 때가 나답지 않은 일에 도전할 때라고 생각한다. 언제까지 스몰 스텝으로만 걸을 수는 없다. 때로는 빅 워크, 빅 점프를 해야 할 때도 있다. 그러나 한 가지 변함없는 사실이 있다. 그건 결국 나 자신의 참 모습을 직면하는 일에서 시작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그 무엇이라도 내가 좋아하는 것들에 '질문'을 던져보자. 그것이 당신을 브랜딩하는 첫 걸음이 될 것이라 확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