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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스널 브랜딩, 나를 브랜딩한다는 것에 대하여...

그녀는 어느 평범한 목회자의 부인으로 살고 있었다. 모자라지도 과하지도 않은 삶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사랑하는 첫 아이의 눈이 이상하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처음에는 사시인줄 알았으나 정밀 검사 결과 뇌종양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오랜 수술이 끝나도 아이는 깨어나지 않았다. 그러다 삼일 후 기적적으로 깨어난 아이는 정상적인 삶을 살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그러나 그건 문제가 아니었다. 중요한건 아이가 살아있다는 사실이었다. 그녀는 더욱 더 헌신적으로 아이를 돌보았다.


지방과 서울을 오고 가는 삶이 계속되었다. 추운 겨울 가난한 사람들에게 자신의 오리털 파카를 벗어주고 올 정도의 남편 덕분에 여러 모양의 도움을 받았다. 그러나 안방의 잠자리보다 보조 침대가 익숙해진 그녀는 깊은 우울에 빠졌다. 결국 극단적인 선택을 했으나 '수면제는 아무리 먹어도 죽지 않는다'는 의사의 야단을 들을 뿐이었다. 다행히 방송 출연으로 인연이 있었던 의사 선생님이 그녀를 살렸다. 병원에서의 몇 달 동안 그 모든 짐으로부터 잠시나마 벗어날 수 있었던 그녀는 사랑하는 아이처럼 다시 일어섰다.


그렇게 어렵게 키운 아들은 이제 서른 세살이 되었고 일도 다닌다. 그러나 그녀의 소원은 여전히 아들보다 하루 더 사는 것이다. 그런 그녀에게 나는 물었다. 무엇을 할 때 가장 기쁘고 행복하냐고 말이다. 그러자 공부하고 연구하고 강의하는 삶을 살 때 가장 행복하다고 답했다. 그러나 지금은 그럴 수 없노라고 했다. 돌봐야 하는 아들과 가족,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의 그녀의 주변에 너무도 많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느 날 함께 일하던 지인 중 한 사람이 그녀에게 이렇게 물었다고 했다.


"그러면 선생님 자신은 누가 돌보죠?"


퍼스널 브랜딩에 관한 광범위한 오해가 있다. SNS에 조회수가 늘고, 수입이 늘고, 책을 쓰고, 강의를 하고, 티비에 나가는 것이 마치 성공적인 퍼스널 브랜딩인 양 잘못 알고 있는 사람들이 너무도 많다. 그러나 브랜딩은 그런게 아니다. 제품과 서비스, 혹은 그것을 제공하는 사람 자신이 타인인 소비자들에게 '가치'를 전달하는 과정이다. 그러나 퍼스널 브랜딩이라는 그 자신이 고객이 된다. 즉 나라는 사람의 욕구(가치)를 내가 채우는 과정이 바로 나를 브랜딩하는 과정의 첫 걸음이 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사랑하는 아들을 위한 헌신은 본능적인 것이다. 그러나 타인의 인정과 만족을 삶의 목표로 살아가는 사람들은 그 삶의 끝에서 허탈함을 만난다. 가족을 위해 헌신하고 희생했지만 외면받는 이 땅의 아빠들, 엄마들이 얼마나 많은가. 타인을 케어하느라 정작 그 자신은 번아웃을 겪는 사람들은 또 얼마나 많은가. 회사 역시 그들의 첫 번째 고객은 직원이라고 이해하고 내부 브랜딩을 한다. 그 결과 조직 문화가 나오고 그런 회사들에 MZ 세대들은 열광한다. 직원이 인정하는 회사는 자연스럽게 시장의 인정을 받기 마련이다.


타인을 위해 헌신하는 삶은 아름다운 것이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그 자신이 소모되는 삶이라면 그것은 옳지 않다. 지속가능하지 않기 때문이며, 도움을 받는 타인에게 잘못된 메시지를 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나는 그녀에게 솔직해지기를 요구했다. 그 누구도 아닌, 내가 가장 기쁘고 행복한 순간을 함께 찾아보자고 이야기했다. 사람을 좋아하고 배우기 좋아하고 성장하기 좋아하는 삶을 살아보자고 이야기했다. 자율성과 경제적 보상이 따르는 일을 찾아보자고 이야기했다. 그것이 바로 나답게 살아가는, 나를 '브랜딩'하는 첫 걸음이 될 것이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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