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설날, 부산으로 내려가는 7시간 동안 어느 과일 가게 대표님 생각으로 고민에 고민을 했었다. 그런데 오늘 스브연 실시간 온라인 컨설팅을 하다가 재미있는 아이디어를 얻었다. 사실 스몰 브랜드를 돕는답시고 이런 저런 글을 쓰고 있지만 나의 생각은 분명하다. 동네 과일 가게 하나 못 도우면서 브랜딩이고 마케팅이고 이런 말 하고 싶지 않다. 실전에서 통하지 않는 멋진 외국 사례 옮겨봐야 무슨 소용인가. 결국 브랜딩도 먹고 사는 문제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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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나온 아이디어의 핵심은 과일 가게의 '컨셉'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우리가 함께 상상한 과일 가게의 컨셉은 '과일 주치의'이다. 나는 가능하면 키엘처럼 의사 약사 비슷한 복장을 주인이 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과일을 파는게 아니라 과일을 처방하는 퍼포먼스를 했으면 한다. 각 과일의 특징을 이해해 (예들 들어서) 불면증에 고생하는 분에게는 참외를, 다이어트 하는 분에게는 수박을, 가벼운 감기가 있는 분에게는 사과를 처빙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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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골 손님은 전용 차트를 따로 만들어 그동안의 구매 이력을 기록한다. 그리고 어떤 과일을 살지 고민하는 손님에게 이번에는 포도를 한 번 사보라고 제안하는 것이다. 작년 비슷한 시기에 포도를 사갔다고 말하면서 말이다. 과일 포장은 약봉지를 흉내내보면 어떨까. 영수증은 처방전 비슷하게 디자인해도 좋겠다. 그리고 여기에 유머 한 방울을 더하는 것이다. 불면증 환자용 과일에는 '자두 자두 졸리네'라고 쓰고, 항상 피로에 시달리는 분들을 위한 체리에는 '채리 채리, 정신 채리'라고 쓰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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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마케팅이나 브랜딩 하면 무슨 거창한 이론을 꼭 이야기해야 하는 것처럼 설레발을 떠는 경우가 많다. 브랜드에 관련된 책 한 권 안 읽고도 브랜딩에 성공한 사람들을 나는 정말 많이 보아왔다. 오늘 위의 아이디어를 주신 최규상 대표는 20년 이상 '유머 편지'를 보내서 많게는 20만의 회원을 모은 분이기도 하다. 물론 지금도 매일 매일 뉴스레터를 보내고 온라인 매거진도 발행하고 계시다. 이런 분은 MBA 근처도 가보지 않은 분이지만 동네 과일 파는 할머니에게 위와 같은 멘트를 직접 써드려서 6배의 매출을 올려드리기도 했다. 과연 누가 진짜 전문가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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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사람들은 꼭 먹어봐야만 *과 된장을 구분할 수 있는 걸까. 무자본 무노동으로 부자가 될 수 있다고 꾀면 홀린 듯이 이들을 쫓아가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런데 정도를 걸으며 정석을 지키면 시대에 뒤쳐진 듯이 몰아붙이는게 요즘의 분위기 아니었나. 나는 투명하게 상도를 지키며 자신의 영역에서 우뚝 선 사람들을 더 많이 더 열정적으로 소개하고 싶다. 그리고 매일 고민만 하고 아무것도 시도하지 않은 채 실의에 빠진 소상공인, 자영업자, 1인 기업과 프리랜서들을 일으켜 세우고 싶다. 돈 안되는 고객들이 많지만 어쩌겠는가. 이런 일들을 할 때 가장 내가 나다워지는 것을, 흥분과 보람과 때로는 쾌감을 느끼는 것을.
p.s. 좀 더 세련되게 이야기하자면 '저팬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마케팅을 예로 들어보겠다. 이들은 연주 실황이 담긴 USB를 약봉지에 넣어 팔았다. 약봉지 겉면엔 '기분 좋게 잠들고 싶다면'이라는 처방전을 적어 넣었다. 이런 센스 넘치는 연주 실황이라면 나는 당장이라도 사겠다. 이게 마케팅이고 이게 브랜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