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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당에 사는 와이프 교회 친구 남편들의 이야기

1.


P씨는 교회에서 주차 안내를 하신다. 세상 인자하고 사람 좋아뵈는 인상을 한 이 분은 KT를 은퇴하셨다. 문제는 불명예 은퇴이신데다 회사 대출을 받으신 바람에 퇴직금으로 고작 두 달을 버티셨다고 한다. 참다 못한 와이프가 아파트를 내놓고 전세를 가자 하니 노발 대발 집안이 한 번 뒤집어졌다 한다. 시집 간 딸이야 그렇다고치고 나머지 두 아이를 데리고 작금의 집안 상황을 이야기하는 바람에 막내는 배탈까지 났다. 그럼에도 60대의 남편은 오라는 데가 없음에도 날마다 가족 단톡방에 미래의 계획을 올리신다 한다.


2.


두 번째 친구의 남편인 S씨는 학원을 하다가 최근에 정리를 했다고 한다. 그런데 정리한 후 남은 것은 2억의 빚 밖에 남은게 없다고 한다. 문제는 마지막 세 번째 남편인 L씨인데 친가의 도움을 받아 겨우 버스 한 대를 샀으나 결국 앞으로 벌고 뒤로 밑지는 과정을 반복한 끝에 사업을 접으셨다고 한다. 이렇게 세 명의 남편들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최근의 불황이 뼛속 깊이 전해진다. 아마도 나와 비슷한 연배(참고로 나는 50대 초반이다)일 이 분들의 두 번째 삶이 남의 일처럼 느껴지지 않는 것은 비단 나 뿐일까.


3.


문제는 남은 와이프 친구분들인데 저마다 아르바이트를 하겠다고 난리지만 어디 경험이 있을리 만무하지 않은가. 평생 좋은 남편 만나 천당 밑 분당에서 아파트까지 마련하고 사는 분들이지만 저마다 알바 자리를 알아보느라 두문 불출이다. 그러다 하루 종일 일해봐야 200만원인데 눈치 없는 한 친구분은 '200밖에 안돼?'라고 한 마디 했다가 온갖 핀잔을 들으셨다고 한다. 참고로 우리 와이프도 아이들 학원비에 보낸다고 부대찌개 집에서 점심 알바를 하는 중이다.


4.


내가 이 분들의 사례를 굳이 얘기하면서까지 말하고 싶었던 바는 지금의 4,50대들이 맞닿은 현실의 잔혹함 때문이다. 첫 번째 직장만 해도 대학을 다니며, 취준생으로 준비한 시절이 있었건만 지금이야 어디 그런가. 오직 직장에 충성하고 살림에 충실한 우리 세대들에겐 두 번째 생계를 이어갈 준비가 전무하다는 사실에 깜짝 놀라곤 한다. 국내 굴지의 대기업을 다니고 남부럽지 않은 삶을 살아온 이 분들은 과연 어떤 식으로 자신들의 세컨드 라이프를 준비하고 있을까.


5.


그나마 두 아이 학원비 정도는 대고 있는 나로써는 내심 감사하면서도 착잡한 마음을 감출 길이 없다. 다음 달을 기약할 수 없는 프리랜서의 삶을 7년 가까이 살아왔지만 여전히 삶도 사업도 쉽지가 않다. 그래도 내 이름을 걸고 내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곁에 있다는 건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최근에 막 시작한 '내 인생 첫 책 쓰기' 부트캠프가 즐겁고 보람되었던 이유도 아마 함께 길을 찾을 수 있는 동지가 생겼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굳이 브랜딩이란 말을 쓰지 않더라도 우리의 두 번째 인생은 회사가 아닌 '내 이름'을 걸고 답을 찾아야 한다. 부디 내가 하는 이 일이 이런 분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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