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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세계, 나의 세계 그리고 당신의 세계

1.


어머니는 늘 서운한 일과 화로 가득하다. 세 자식들 저마다 손 벌리고 살지 않을만큼은 살고 있고, 풍족하진 않아도 세 남매가 용돈이며 병원비며 밀린 적이 없는데도 늘 무언가로 속이 상해 계신다. 그동안은 그냥 '나이가 들면 애가 된다'는 속담 정도로 무마해왔는데, 최근에야 그 작은 비밀을 하나 알게 되었다. 그건 우리 어머니가 자신만의 세계를 만들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2.


이게 무슨 말인가. 그렇다. 생계를 잇고 생존하는 것이 미덕이던 시절 이런 말은 사치였다. 나는 어머니가 옷장 속에 숨겨 놓으신 100만원을 찾지 못해 엉엉 우시던 장면을 또렷이 기억한다. 그리고 바로 그 옷장에서 돈을 다시 찾고 안도하시전 모습도 잊지 않고 있다. 그때는 그랬다. 그러나 칠순을 훌쩍 넘겨 팔순을 바라보는 어머니에게는 자기 세계가 없다. 그래서 항상 누군가와 비교하며 때로는 자식과 며느리조차 질투하신다.


3.


어머니는 자기에게 말없이 해외 여행이나 캠핑을 다니는 막내가 늘 못마땅하다. 최근에 호주 여행을 다녀온 막내에게 할 얘기를 어머니는 내게 하신다. 호주를 못 가서가 아니라 얘기도 없이 다녀오는게 속상하다고. 그런데 어머니. 믹내에겐 막내 가족만의 세계가 있는 거랍니다. 같이 가셔도 불편하실 거에요. 그러면서 손자 입시 실패로 취소된 제주도 여행을 연말에 꼭 가자고 말씀드린다. 하지만 그때 뿐이고 이번에는 늘 마치 자기가 어른인양 잔소리하는 둘째의 남편, 사위 욕을 하신다. 참고로 그 사위는 첫째인 나보다도 나이 많다. 그러니 쓸데없는 잔소리도 많을 수 밖에.


4.


그러니 이 모든 잔물결에 어머니는 늘 흔들리신다. 같은 아파트 이층 집 할머니와 교회의 친구들과 600만원짜리 육각금장?을 파는 다단계 회사의 직원들 말에 휘둘리신다. 그러나 나는 그런 어머니를 원망할 수 없다. 어머니의 젊은 시절엔 자기 세계를 배울 시간도 여유도 없었다. 그저 술과 사람과 노래를 좋아하셨던, 그러나 평생 생활고에 시달렸던 아버지에 대한 원망으로 점철된 애달픈 삶이 있었을 뿐이다.


5.


그러므로 나는 우리의 삶에는 각자 우리의 세계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누군가의 조언이나 잔소리에 쉽게 휘둘리지 않는, 자신만의 삶의 방식으로 꿋꿋이 자신의 세계를 만들어가는, 자신의 언어로 자신의 세계가 가진 매력을 발산할 수 있는 그런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그래야만 어머니가 어쩔 수 없이 견뎌야만 했던 우울의 삶을 넘어설 수 있다고 믿는다. 그래야만 어머니의 뜬금없는 분노와 우울과 화의 잔소리를 이겨낼 수 있다. 그래야만 어머니의 뜬금없는 전화를 망설이지 않고 받을 수 있다. 그래서 우리 모두에겐 각자의 세계가 필요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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