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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마터면 열심히 달릴 뻔 했다


1.


어제도 6km를 50분에 뛰었다. 1km를 7분 40초 대에 달렸으니 엄청 천천히 뛴 셈이다. 이렇게 달리면 크게 숨이 가쁘지도 않고 생각만큼 힘들지도 않다. 가끔씩 공원 저수지의 풍경을 돌아볼 여유도 생긴다. 이렇게 힘든 레이스를 달리면 나는 운동을 권한 친구가 있는 카톡에 기록을 남기곤 한다. 여러가지 조언, 친구 말대로라면 당근과 채찍을 동시에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 석 달, 나는 행복하게 달렸다. 그런데 한 가지 문제가 생겼다.


2.


친구가 운동을 독려하는 사람들 중에는 친구 와이프도 있었다. 함께 단톡방에서 수다를 떠는 친구들도 있었다. 그런데 이들이 운동의 독려 명단에 합류하면서 작은 문제가 생겼다. 친구가 수시로 그들과 나를 비교하기 시작한 것이다. 참고로 친구 와이프는 나보다 늦게 시작했음에도 10km를 가뿐히 완주했다. 그후로 친구는 매번 그들과 나를 비교하기 시작했다. 나의 운동을 독려하기 위함이지만 어느 순간 나는 내 기록을 공유하지 않게 되어버렸다. 아, 나는 왜 이렇게 좀생이란 말인가.


3.


사실 달리기의 즐거움은 비교에서 오는게 아니었다. 나는 달리는 내내 여러 명의 러너들로부터 추월을 당한다. 그러고도 기분 나쁘지 않았던 것은 그들이 나의 경쟁 상대가 아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나보다 늦게 시작한 친구의 페이스가 1분이나 빠르다고 매번 상기시킬 때면 달리고 싶은 마음이 뚝 떨어지곤 했다. 친구의 의도가 꼭 그것만은 아니란건 안다. 하지만 듣는 나는 기분이 나쁜걸 어쩌란 말인가. 그냥 나는 평생 나의 속도로 오래 달리고 싶을 뿐이다. 전문가들에 의하면 매일 40분 정도 달리는 것이 건강에 가장 좋다고 한다. 그 정도에 만족하는걸 왜 그 친구는 이해하지 못하는 것일까?


4.


30만부가 팔려 개정판이 나온 책이 있다. 바로 '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했다'란 책이다. 이 책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남들과 발을 맞추지 않으니 비교하지 않게 되고, 내 삶이 그렇게 나쁘지 않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내 삶은 소소한 즐거움으로 가득했다. 그때의 즐거움이 나를 움직이게 했다. 기꺼이 목표와 정해진 길을 벗어나 다른 길을 가게 만들었다. 그 움직임의 결과물이 바로 이 책이다."


5.


다시 한 번 생각해본다. 내가 왜 굳이 7분 대가 아닌 6분 대에 뛰어야 할까? 왜 10km를 완주해야 할까? 왜 1시간 10분 대에 10km를 달려야만 할까? 좀 더 빨리 뛰면 더 건강해지는 것일까? 그러나 나는 친구에게 이런 이야기를 할 생각이 없다. 툭하면 하루에 20km를 뛰고, 헬스장에서 시간이 다 되어 쫓겨날 때까지 운동을 하고, 골프를 하면 손바닥이 까일 정도로 수백 번 공을 때려야 하는 친구에게 '하마터면 열심히 운동할 뻔 했다'고 말하면 얼마나 허탈해하고 어이없어 하겠는가.


6.


한 번은 친구에게 내 스타일대로 달리겠다고 했다고 당차게 욕을 먹었다. 아직 스타일을 말할 실력이 아니라는 것이다. 사실 어느 분야나 전문적인 수준이 있게 마련이고 친구가 그렇게 말하는 것도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이제 막 글쓰기를 배운 친구가 이제 자기 스타일대로 쓰겠다고 하면 나도 어이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친구의 지도 편달에 따라 10km를 뛰고 하프 마라톤에 반드시 나가야 하는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나는 해질녘 율동 공원에 나가 40분에 5km를 뛰는 것으로 만족하기 때문이다.


7.


"어떻게 사는 것이 맞는지는 나도 모른다. 정답도 없다. 그저 많은 사람이 주변에 깔린 운을 놓치지 않고 지금을 즐기며 살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적어도 나는 운 좋은 사람으로 살기를 ‘선택’했다. 그리고 이 책을 읽을 독자들의 삶이 행운으로 가득하길 바란다." 나는 위에 소개한 책의 저자가 한 이 말을 곱씹어 본다. 인생에 정답이 어디 있겠는가. 운동도 글쓰기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우리는 '선택'을 해야 한다. 내가 맞는 운동을, 내게 맞는 글쓰기를, 내게 맞는 삶을. 그리고 그 선택에 책임을 지는 것, 그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삶을 살아가는 올바른 태도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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