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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1초의 기록, 평생 5시간의 행복

스몰 스텝 스케치 #10.

어떤 평범한 일본인이

매일 자신이 먹은 음식을 그림으로 그리기 시작했다.

조금 다른 점이 있다면 먹은 후의 기억으로만 그림을 그렸다는 것.

처음에는 다소 간단했던 그림들이

시간이 흐를수록 조금씩 정교해져갔다.

그림 실력이 늘어난 이유도 있겠으나

아마도 자신이 먹는 음식을

좀 더 자세히 관찰할 수 있었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그림들은 결국 한 권의 예쁜 책으로 묶여져 나왔다.


나는 그만큼의 그림 실력이 없는 대신

매일 한 편씩의 동영상을 찍고 있는 중이다.

하루에 단 1초씩,

그 날의 가장 기억하고 싶은 순간을

스마트폰의 영상으로 기록하기 시작했다.

('1 Second Everyday'란 앱의 힘을 빌어)

이 아이디어는 마침 스몰 스텝 중 하나인

TED 동영상 보기를 통해 알게 되었다.

씨저 커리야마라는 미국의 한 프로그래머가

매일 자신의 일상 중 1초를 동영상으로 찍은 후

강연을 통해 수 년간 이어지는 일상을 보여주는 강연이었다.

나도 꼭 한 번쯤은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던 적이 있던 차에

지인의 소개로 앱을 설치한 것이다.


오늘도 작업차 들른 동네의 커피숍에서

그 찰나의 순간을 앱에 담았다.

하루 한 장, 자신이 먹은 음식을 그리는 것과

하루에 1초, 자신의 소중한 순간을 영상으로 기록하는 것은

과연 우리 삶에 어떤 유익을 줄 수 있을까?

여러 형태의 사진과 기록이 쌓인 지금에 이르러서야

나는 그것이 '기록'이 가진 힘을 보여주는 것이며,

우리의 삶이 실은 '아주 작은 순간'의 합임을 깨닫게 해주는

아주 의미있는 하나의 '의식'임을 알 수 있었다.


매일 1초의 영상을 기록하는 '1 Second Everyday'


우리의 기억은 유한하다.

1년 전의 기억은 고사하고

한 주 전의 일도 제대로 기억하기 힘든 것이 우리다.

하지만 그 순간들은 그렇게 '잊혀질만한' 기억이었을까?

기억하지 않아도 그다지 상관없는 그저 '일상'일 뿐이었을까?


물론 그럴 수 있다.

우리의 기억력이 제한적인 것은

감당할 수 없는 수많은 기억의 짐으로부터

망각의 힘을 빌어 자유로워지는 것임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하루의 그 1초를 모아

1년이면 6분,

10년이면 1시간,

30년이면 3시간에 이르는 순간이나마 기억할 수 있다면

그로 인해 파생되는 수없이 많은 기억들이

어쩌면 우리의 삶을 더욱 풍성하게 해주지 않을지.


TED 영상의 주인공은 말한다.

기쁘고 축하할 만한 일들만을 기록하지는 않는다고.

아프고 힘든 순간들도 함께 기록한다고.

그리고 자신의 형수가 병원에 입원한 후

퇴원할 때까지의 1초들을 강연 내내 보여준다.

그 영상을 통해

나는 비로소 우리의 기억력이 가진 한계를

작은 스마트폰의 힘을 빌어 기록해가는 것이

어떤 의미를 지니는 것인지 알 수 있었다.

결국 우리의 일생도 그럴 것이므로.


영화 '블레이드 러너'는

인간과 기계를 구분하는 유일한 구분점이

다름아닌 '기억'과 '추억'에 있음을 보여준다.

우리는 무언가를 경험하고 기억할 때,

그리고 그것에 의미를 담고 추억할 수 있을 때 인간다워진다.

삶은 유한하고 기억 역시 제한적이지만

우리는 그 기억들을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공유하는 과정을 통해

그 유한함을 뛰어넘어 의미있는 삶을 살아갈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그 1초의 순간을 찾아 하루를 살아간다.

그런 기억을 만들기 위해서라도 좀 더 열심히 살아간다.

만약 이후 30년의 삶을 5시간의 기록 속에 담을 수 있다면

그곳엔 과연 어떤 추억들이 담길지 기분 좋은 상상을 이어가면서.

이럴 때 어울리는 한 마디,

카르 페 디엠,

여전히 우리의 삶은 그만한 가치가 있다고 믿어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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