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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닭가슴살 시장'의 진짜 지형도를 알려줄께

닭가슴살은 한때 ‘운동하는 사람들의 전유물’이었다. 헬스장 락커룸 안에서, 다이어트를 결심한 사람들의 식단표 속에서, 늘 비슷한 위치를 차지하던 음식. 퍽퍽하고 심심했지만, 그래도 몸에 좋다는 이유 하나로 꾸역꾸역 삼켰던 그 고단백 식재료. 그러나 지금 닭가슴살은 전혀 다른 길 위에 서 있다. 단백질이 아닌 ‘라이프스타일’을 이야기하는 시장이 된 것이다.


몇 년 전만 해도 닭가슴살은 ‘다이어트 식단’이라는 좁은 틀에 갇혀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퇴근 후 가볍게 한 끼를 해결하고 싶은 사람, 늦은 밤 배달 대신 ‘나를 덜 무겁게’ 챙기고 싶은 사람, 바쁜 일상 속에서도 건강을 놓치고 싶지 않은 사람들까지 닭가슴살을 찾는다. 이 변화의 배경에는 ‘건강’과 ‘간편함’을 동시에 원하는 시대의 욕망이 있다.


닭가슴살 시장은 이미 거대한 산업으로 성장했다. 2017년 1,700억 원대였던 가공 닭고기 시장은 2020년 3,000억 원을 넘어섰고, 지금은 4,000억 원대를 바라본다. 예전에는 운동선수나 다이어터가 소비의 중심이었지만, 이제는 40~50대 중년층도 닭가슴살을 즐긴다. 단백질은 더 이상 근육을 위한 것이 아니라, ‘삶의 기본 체력’을 위한 영양소가 된 셈이다.


맛의 세계도 달라졌다. 한때 “닭가슴살은 맛이 없다”는 말이 상식처럼 여겨졌지만, 지금은 소스맛, 훈제향, 마라맛, 심지어 스테이크 형태까지 다양하다. ‘맛있게 건강한 음식’이 새로운 기준이 된 것이다. 냉동에서 냉장, 그리고 이제는 실온 제품으로, 삶의 속도에 맞춘 진화도 빠르다. 전자레인지 2분, 에어프라이어 5분이면 완성되는 식사. 편의점에서, 택배로, 심지어 정기구독으로. 닭가슴살은 어느새 ‘운동식’이 아니라 ‘하루의 루틴’이 되었다.


이 시장의 중심에는 두 부류가 있다. 하나는 하림 같은 대기업, 또 하나는 온라인 중심의 신생 브랜드들이다. 대기업은 유통망과 신뢰를 무기로 삼고, 신생 브랜드는 맛과 디자인, 스토리로 소비자를 끌어당긴다. 제품의 본질은 같지만, 그 ‘경험’을 다르게 만든다. 어떤 브랜드는 “닭가슴살은 식사다”라고 말하고, 또 어떤 브랜드는 “닭가슴살은 간식처럼 즐길 수 있다”고 제안한다. 같은 단백질이지만, 전혀 다른 라이프스타일을 판다.


이 시장의 흥미로운 점은 경쟁이 ‘닭’ 안에서 벌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누가 더 부드러운 식감을 구현하는가, 누가 더 맛있는 소스를 입히는가, 누가 더 오래 보관할 수 있는 형태를 개발하는가. 닭가슴살은 단순한 식재료가 아니라, 기술과 감각이 만나는 새로운 실험장이 되었다. 그리고 그 경쟁의 결과물은 소비자의 선택 폭을 넓혔다.


하지만 여전히 넘어야 할 산은 있다. 첫째, 닭가슴살 하면 떠오르는 퍽퍽한 이미지. 둘째, 가격 경쟁의 늪. 셋째, 브랜드 간 차별화의 부재. 이제는 ‘단백질이 많다’는 문장 하나로는 팔리지 않는다. 사람들은 더 구체적인 이유를 원한다. 맛, 디자인, 편의성, 그리고 감정적인 이유까지. “이걸 먹을 때 나 자신을 돌보는 느낌이 든다.” 그 문장이 브랜드의 생존 조건이 되고 있다.


닭가슴살 시장을 보면, 현대인의 식문화가 얼마나 변화했는지를 알 수 있다. 과거엔 ‘배를 채우는 것’이 식사의 목적이었다면, 이제는 ‘나를 관리하는 것’이 목적이다. 닭가슴살은 그 전환의 상징이다. 단백질의 숫자가 아니라, 스스로를 챙기는 태도의 언어가 된 것이다.


외식업 관점에서 보면 이건 하나의 힌트다. 단일 메뉴의 힘, 즉 ‘닭가슴살 하나로도 브랜드가 된다’는 사실이다. 결국 중요한 건 메뉴가 아니라 메시지다. “건강하게, 간편하게, 나답게.” 그 세 단어가 닭가슴살 시장을 이끌고 있고, 앞으로도 그 방향은 바뀌지 않을 것이다.


닭가슴살은 더 이상 단순한 단백질이 아니다. 그것은 자기 돌봄의 방식이며, 불안을 이기는 구조다. 누군가에게는 다이어트의 수단이지만, 누군가에게는 하루를 정돈하는 루틴이다. 이 작은 흰 살코기 하나가 오늘날의 삶을 이렇게 또렷하게 반영하고 있다는 사실— 그게 바로 지금 닭가슴살 시장의 진짜 지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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