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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월요일은 어떠신가요?

스몰 스텝 스케치 #13.

약 10여년 전 어느 월요일 오후, 나는 당시 회사의 상사에게 칼퇴근을 선언(정확히는간곡히 요청)했다. 다름아닌 서점에 가기 위해서였다. 토요일 오후부터 시작된 월요병에 시달리다 전쟁과도 같은 출근을 끝내고 나면 한 주를 모두 보낸듯한 피로감이몰려왔다. 자연스럽게 일의 효율도 떨어지고 집중도 어려웠다. 고민을 거듭하다 가장 좋아하는 책읽기를 나 자신에게 선물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에 이르렀다. 그 시간에 대한 기대가 어쩌면 월요일 아침의 공포를 이겨낼 힘을 줄 수 있지 않을까? 마침 사내 독서모임을 주도하고 있었기 때문에 설득이 그렇게 어렵지는 않았다.


물론 업무에 관한 구체적인 정보와 자료가 필요하기도 했다. 하지만 굳이 그 시간을 일과 연결시키고 싶지는 않았다. 그저 또 한 번의 일주일을 살아낼 새로운 힘을 얻고 싶었다. 더욱 솔직하게는 독서를 핑계로 동굴에 들어가 쉬고 싶었다. 여하튼 그 요청은 받아들여졌고 나는 그날 곧바로 강남에 있는 교보문고로 향했다. 6시 반쯤 도착한 후 간단히 저녁을 해결하고 9시 반 서점 문이 닫힐 때까지 숨도 쉬지 않고 책을 읽었다. 주로 서가의 모퉁이나 구석 자리에 앉아 미친 듯이 책을 읽었다.


내 영혼의 작은 쉼터, '교보문고'


이후 자기계발에서 시작한 책읽기는 심리, 경제경영, 소설 등으로 자연스럽게 범위를 넓혀갔다. 교보문고 특유의 엔딩 송이 들릴 때까지 책을 읽다보면 거짓말처럼 시간이 흘렀다. 그저 책을 읽었을 뿐인데도 이상한 만족감과 알수 없는 성취감이 월요일 밤 퇴근의 발걸음을 가볍게 만들었다. 그 시간만큼은 출근길과는 전혀 다른 내가 되어 있었다.


읽은 책들이 늘어나면서 자연스럽게 기록을시작했다. 읽은 책의 내용을 기록하기 시작했고, 서점에서 읽을만 하다 생각된 책들은 따로 구입해서 깊이 읽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내용 중 인상 깊은 구절들을 사내 메신저를 통해 직원들과 공유하기 시작했다. 신기한 것은 그 한 줄의 내용에 특별한 공감과 감동을 느낀 직원들이 메신저로 답하기 시작했다는 사실이다. 그 작은 피드백은 당연하게도 책읽기에 대한 불씨에 기름을 부어 주었다. 더많이, 더 깊이 읽을 명분을 주었기 때문이다.


이윽고 책에 대한 단순한 기록을 넘어 서평을 쓰기 시작했다. 그렇게 쓰기 시작한 서평이 온라인 서점의 매니저 눈에 띄기 시작했고, 서평이벤트에 응모하는 과정을 통해 수십 만원의 적립금을 받기에  이르렀다. 나는 그 적립금을 다시금 직원들에게 선물로 주었다. 웹사이트와 함께 출판사를 겸하고 있던 모회사의 직원들에게까지 자연스럽게내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했다. 읽을 책을 추천해달라는 직원이 생기기 시작했고, 서평을 기록한 네이버 블로그는 당시 해마다 선정하는 ‘네이버 후드’라는 최고의 블로거를 뽑는 최종 경쟁 후보로까지 오르게 되었다. 포탈 사이트에서 ‘오늘의 책’을 의뢰 받아 구본형씨가 쓴 ‘익숙한 것과의 결별’이나 짐 콜린스의 ‘좋은 기업에서 위대한 기업으로’의 서평을 쓰기도 했다. 하지만 거기에서 끝나지 않았다.


네이버 '오늘의 책'은 사라졌지만 그 때 쓴 부끄러운 글은 아직도 남아있다.


이윽고 대필 의뢰까지 받은 것이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책을 편집했던 편집장이 내게 다른 자자의 스토리텔링 의뢰를 정식으로 요청한 것이다. 계약을 하고 원고료를 받고 내 책은 아니지만 한 권의 책을 써냈다. 내 생전 미처 경험하지 못했던 어렵고 힘든 인고의 시간이었지만, 그리고 그 책은 베스트셀러는 커녕 이렇다할 주목을 받지 못하고 서점에서 사라졌지만, 내 안의 작은 가능성을 경험한 놀랍고 소중한 경험이기도 했다. 그리고 그 책의 저자였던 회사 대표로부터 입사 의뢰를 받았다. 해당분야의 경력이 전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입사가 가능했던 이유는 그 책 말고는 달리 설명할 길이 없다. 아마 그 때 그 책을 쓰지 않고 그 회사에 들어가지 않았다면 오늘의 나도 없었을 것이다. 브랜드에 관한 글을 쓰고 강의를 하고 컨설팅을 하는 지금의 내 모습은 당시의 나로써는 상상도 할 수 없는 놀라운 변화다. 그때의 내가 지금의 일을 할 수 있을 거라고는 나조차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다시금 그 날의 월요일로 돌아가 본다. 지금도 가장 편안하고 흐뭇하고 만족스러우며 행복한 일은 좋아하는 책을 붙들고 그 내용 속으로 깊이 빠져드는일이다. 나는 그때마다 책 속의 저자로부터 강의를 듣고 대화도 하고 새로운 인사이트를 얻기도 한다. 매번 그 책으로 구체적인 아웃풋을 만들어내는 것은 아니지만 그 시간을 통해 나는 몰입과 회복과 재충전을 경험한다. 그 때의 내가 서점에서 책을 읽는 일이 단순히 새로운 정보를 얻는 과정만은 아니었다는 뜻이다.


그 때 이후로 나는 그 시간을 일상의 ‘리추얼’로 변환시키기 시작했다. 매주를 시작하는 첫 날을 서점 가는 날로 못을 박아놓으니 회사와 집 모두의 암묵적 동의를 구할 수 있었다. 그렇게 읽은 책을 서평으로 기록을 남기기 시작했다. 내가 얻은 지식과 감동, 지혜를 매일 아침 동료들과 나누기 시작했다. 피드백이 돌아오니 중간에 멈출 수도 없었다. 더 좋은 내용을 나누기 위해 더 열심히 읽기 시작했다. 업무와는 크게 상관없는 일이었으나 ‘일’의 즐거움을 깨닫게 해주었다. 그 해 내가 읽은 책은 수백 권에 달했다. 그렇게 책에서 배운 지식들은 자연스럽게 업무에 녹아 들었다. 새로운 서비스를 기획하고 커뮤니티를 운영해야 하는 나로서는 꼭 필요한 ‘일’이었으나 그 일의 재미를 발견하게 된 건 놀라운 변화였다.


월요일엔... 그렇다고 한다.


매일, 매주하는 작은 시도가 어떤 변화를 이끌어내는지 알게 된 건 그 후로도 한참의 시간이 흐른 후였다. 하지만그 변화는 이미 차곡차곡 쌓이고 있었다. 내가 좋아하는 일이 무엇인지, 내가 잘하는 일은 무엇인지, 나를 일의 공포로부터 끌어내어 몰입과 성과의 즐거움으로 이끌어내는 힘이 무엇인지 본능적으로 인지하기 시작한 것이다. 새로운 생각과 지식을 향한 호기심, 그 지식을 나누는 과정의 소통, 두려움에 내몰리지 않고 도전으로 받아칠 줄 아는 나의 숨은 본능을 발견한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가능케 한 것은 매주, 그리고 매일 내가 좋아하고 잘 할 수 있으며, 나를 움직이는 힘(Driving Force)에 나의 노력과 시간을 투자한 일이었다. 나는 그것을 ‘스몰 스텝(Small Step)’이라고 부른다.


이 매거진을 통해 기록하는 글들은 그 날의경험 이후 약 10년 동안 반복해 온 아주 작고 사소한 실천에 관한 이야기이다. 그것은 진짜 내 모습을 발견하게 해주었다는 점에서 단순한 ‘습관’과 다르고,구체적인 성과를 이끌어낸다는 점에서 잠깐의 동기부여에 그치는 ‘자기계발서’와 다르다. 이 매거진은 놀랍고 대단한 유명인들의 성공 스토리나 전략 같은 것은 없다. 누구나 할 수 있는 아주 작은 일들을제안할 뿐이다. 게다가 매일의 출근길에서 언제고 만날 수 있는 아주 평범한 직장인의 이야기다. 하지만 바로 그 점이 이 매거진을 읽는 당신에게 위로와 용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저사람이 했다면 나는 더 잘할 수 있겠지. 그래서 더 많은 사람들에게 이 작고 사소한 반복의 경험이 만들어낸 도전과 용기의 이야기들을 전해줄 수 있었으면 좋겠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바로 이 '작은 일'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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