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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속 4km와 애플 슬라이서

스몰 스텝 스케치 #14.

주말에 읽을 책 한 권을 꺼내들었다.

도입부를 읽어보니 빨리 읽고 싶은 충동이 불일듯 솟아났다.

하지만 책의 분량은 대략 400페이지 가량,

갑자기 마음이 조급해진다.

이건 아니다 싶어 깊은 호흡을 하고

목차에서 보이는 흥미로운 챕터의 소제목 하나를 꺼내들었다.

대략 서너 페이지다.

훑듯이 빨리 읽은 후

다음 장으로 넘어가려는 욕망을 애써 누른채 다시 읽었다.

놀랍게도 처음 읽었을 때는 눈에 띄지 않던 이름과 내용이

몇 개씩이나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마음을 고쳐잡고 다시 읽는다.

처음 읽었을 때보다 더 깊은 생각에 빠져든다.

그렇게 서너 번을 읽은 후에 '워크플로위'에 필사를 시작했다.

그렇게 한 시간 가량 읽은 페이지는 스무 페이지를 넘지 않았다.

하지만 워크 플로위에 필사한 내용은 결코 적지 않았다.

그동안 주제에 접근하는 내 생각은 더욱 깊어졌다.

이전에 읽었던 일화와 책의 내용들,

그리고 내 경험이 생각 속에서 더해진 때문이었다.


이번 주 주말에 읽고 정리 중인 책, '타이탄의 도구들'


'애플 슬라이서'란 도구가 있다.

직접 보진 못했지만 사과를 조각내주는 도구였다.

문득 그 이름이 떠오른건

책읽기를 대하는 나의 조급증이

그와 닮아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왜 우리는 무언가 대상을 대하면

한 번에 끝장을 보려고 드는 것일까?

소설처럼 사건의 전개에 따라

주인공의 뒤를 쫓아야 하는 책이라면

정독과 완독이 당연히 중요하다.

하지만 일반적인 책들은 반드시 순서대로 읽을 필요가 없다.

그 말인즉은 책의 모든 내용을 숙지해야 하는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하지만 우리는 모든 책을 교과서처럼 순서대로,

그리고 완벽하게 '정복'하려고 든다.

그리고 앞 장만 밑줄과 손때가 빼곡한 영어, 수학 참고서처럼

결국 그 책에 질리거나 물린 채로 완독에 실패할 뿐 아니라

독서 자체에 실패하곤 한다.


그렇게 배워온 탓이다.

그렇게 살아온 탓이다.

목표에 눌려 과정을 즐기는 법을 배우지 않은 탓이다.

입시건 취업이건 인생은 모 아니면 도라는

잘못된 가르침에 오염된 탓이다.

그래서 인생의 모든 목표나 문제들을 한 번에 해결하려 든다.

그러다가 아무 것도 해결하지 못하는 좌절에 고꾸라지곤 한다.


'애플 슬라이서'는 이렇게 생겼다.


사람이 일반적으로 걷는 속도는 시속 4킬로미터 정도,

조금 빨리 걷는다면 대략 시속 5,6킬로미터 정도라고 한다.

하지만 우리는 버스나 지하철, 택시

혹은 자신의 차를 운전하는데 익숙해져 있다.

하루에 만 보를 걷기 위해 필요한 시간은 대략 1시간 반 정도,

(나처럼 10분에 1킬로미터, 1000보를 걷는다 가정할 때)

하지만 우리가 하루에 걷는 시간은 채 30분이나 될까.

그만큼 우리는 '빠른' 속도에 익숙해져 있다.

그래서 '느리게 걷는' 유익을 알지 못한다.

원래 우리가 움직이고 생각하게끔 설계되어진 속도가 있다면

그것은 아마도 시속 4킬로미터 정도로 설계되어진 것은 아닐까?

산책이 유익한 이유는 단지 건강 뿐만은 아니다.

스티브 잡스가 왜 그토록 산책에 매달렸는지 걸어보면 안다.

그것은 아마도 생각의 속도를 닮았기 때문일 것이다.

느리게 걷는 것이 아니다.

애초에 설계되어진 인간의 '원래 속도'로 걷고 생각하다보면

바쁘게 지나치느라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고,

생각지 못했던 것들이 떠오르게 된다.


왜 책 한 권을 단숨에 다 읽어야만 하는가?

왜 사과 하나를 한 번에 삼키려들지는 않으면서

왜 우리는 매사 모든 것에 그렇게 조급증을 내어야 하나?

서너 페이지의 문장 하나는 결코 몇 분만에 쓰여지지 않았다.

작가가 그 한 장을 완성하기 위해 들인 시간은 최소 며칠, 몇 달

혹은 몇 년의 시간이 걸렸을지도 모를 일이다.

어쩌면 그 사람의 평생이 녹아든 생각이

단 몇 줄의 문장으로 담겨져 있을 수도 있다.

그런데 왜 우리는 그렇게 급하게 읽어대고

또 잊어버리는 실수를 반복하고 있는 것일까.


'나 혼자 산다'의 김슬기, 오직 한 가지 일에만 집중했다


어느 배우가 리얼리티 프로그램에 나온 장면을 유심히 본 적이 있었다.

그녀는 아침에 일어나 아무 없는 집안에서 가장 먼저 기도를 했다.

그리고 해독 주스와 간단한 밥과 반찬으로 식사를 했다.

운동을 했다.

특이한 것은 그 동안 TV와 스마트폰을

단 한 번도 보지 않았다는 것이다.

오로지 자신이 하는 운동, 자신이 먹는 주스,

자신이 먹는 밥에만 집중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모든 모습이 다른 출연자를 비롯한 나를 당황하게 했었다.

물론 그것은 저마다의 살아가는 삶의 방식일지 모른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하게 짚어볼 생각이 있다.

우리는 너무 분주하게 살아간다.

한꺼번에 너무 많은 일을 한 번에 해내려 한다.

그것은 분명 욕심이다.

그것이 우리의 일상과 건강과 삶을 무너뜨린다.

TV나 스마트폰이 해롭다는 말이 아니다.

그것을 볼 때면 그것에만 집중해야

그것으로부터 무언가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책 한 권을 모조리 읽고

완전히 이해해야 한다는 조급증에서 자유로워진 어느 순간부터

나의 책 읽기는 좀 더 가벼워졌다.

한 장을 읽어도 제대로 읽다보니 생각의 지평이 더 넓어졌다.

단 하나의 문장을 통해 이전에 읽었던 사람이 떠오르고 책이 떠오르고

그제서야 나만의 독특한 생각이 자리를 잡는다.

그러면 그 내용을 글로 옮겨 쓴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것처럼.


나는 매일 관심있는 기사를 '포켓'에 스크랩한다. 나의 '글창고' 중 하나인 셈이다.


에버노트에 작성 중인 '스몰스텝 다이어리'에는

그동안 그렇게 모아놓은 생각의 조각들이 빼곡하게 담겨 있다.

그것은 문장이기도 하고, 강연이기도 하고,

싯구이기도 하고, 명언이기도 하고,

영화대사이기도 하고 노래 가사이기도 하다.

책과 영화, 다큐멘터리, 방송 프로그램, 신문 사설, 블로그...

그 출처와 모양도 제각각이다.

하지만 어느 순간 촉발된 하나의 생각이

이 모든 것들의 어느 하나와 연결되면서 폭발이 일어난다.

누군가의 글쓰기 실력이 궁금하다면

그 사람의 '글창고'를 보여달라던 누군가의 말이 떠오른다.

나는 아직 그 지경에까지 이르지 못했지만,

그렇게 되려면 아직도 많은 시간이 걸리리란 것을 잘 알고 있지만

이 사실 만큼은 분명한 '진리'라고 말할 수 있다.

전혀 새로운 자신만의 생각은

오랫동안 묵혀든 다른 이들의 지혜와 연결되는 과정을 통해 온다.

그 길에 지름길은 없으며,

혹 있다 해도 지속할 수 없다.


주말 오후에 책 한 권을 꺼내들었다.

그렇게 몇 페이지를 읽고 이 글을 쓰고 있는 중이다.

오랫동안 해왔던 나의 생각과 닮아 행복하고 충만한 기분이 든다.

그리고 그 생각을 옮겨쓰는 지금이 뿌듯하기 그지없다.

이렇게 내딛는 그 작은 한 발(스몰스텝)이 정말로 흐뭇한 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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