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에는 하루에 세 쪽이었다.
그다음에는 하루에 한 쪽이었다.
그다음에는 하루에 한 단락이었다.
그다음에는 하루에 몇 줄이었다.
그즈음 그는 의식이 온전하지 않을 때가 많았다.
컴퓨터로 타이핑할 기력이 없어서 가족에게 구술했다.
그는 딱 한 쪽을 남겨두고 죽었다."
- 2016년 5월 25일, 시바타 모토유키
아가리에 가즈키의 조용한 위엄: <스토너> 번역에 관하여
팟캐스트 '이동진의 빨간 책방'을 자주 듣는다.
그가 추천하는 책은 자주 메모로 남긴다.
그 중 몇 권은 실제로 구매도 했다.
하지만 '위대한 개츠비' 말고는
추천받은 책 중 다 읽은 책은 손에 꼽을 정도다.
'스토너'가 그런 책이었다.
이 소설은 보통의 소설과 달랐다.
지극히 평범한 주인공의 일생을 다룬 소설인데
눈에 띌만 한 사건이 많지 않다.
가장 큰 사건인 대학 교수 시절의 불륜도
덤덤하게 서술하곤 지나가 버린다.
지루할 정도로 평범해서 당황스러울 정도다.
그래도 나는 이 소설을 끝까지 읽었다.
마치 무심코 들었던 바게뜨 빵을
마지막 한 조각까지 꼼꼼히 씹어먹는 느낌으로.
1965년 처음 출간된 이 책은
초판 2000권을 팔지 못하고 절판되었다 한다.
그런데 이 책의 불씨는 다시 살아났다.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으나
이 책을 번역한 일본 번역가의 이야기를
'퍼블리'의 지난 뉴스레터를 다시 읽다가
우연히 알게 되었다.
생의 마지막에 이 책을 발견한 작가는
딱 한 쪽을 남겨두고 세상을 떠났다 한다.
그는 왜 생의 마지막 모든 순간을
이 책을 번역하는데 모두 바친 것일까?
아마 책 속 주인공의 모습이
자신과 닮았다 여겼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누구나 사랑받기 원하지만
모두에게 사랑받는건 불가능하다.
여름밤의 불나방처럼 삶은 치열하지만
그래서 자신의 방식대로 살아가는 것이 쉽지 않지만
그래도 '스토너'처럼,
'스토너'를 쓴 작가처럼,
'스토너'를 번역한 번역가처럼
모두의 삶이 꼭 화려할 필요는 없다.
매 주어진 순간에 충실하고 최선을 다하는 것,
그런 평범함도 사랑받을 수 있다.
왜냐하면 우리 중 99퍼센트는
그렇게 평범한 삶을 살다 가니까.
그러니 조급해 말자.
스토너처럼.
묵묵이 오늘의 삶을 걸어가자.
마지막 한 페이지까기 꼭꼭 눌러 쓰자.
누군가 그 다음 페이지를 이어갈 것이니까.
그 순간을 충분히 누릴 수만 있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