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장순, '기획자의 습관'
이 책을 읽고 맨 먼저 한 일은 '매트릭스'를 다운받는 일이었다. 저자는 이 영화를 열 번 보았다고 했다. 두어 번 정도 본게 전부인 나로서는 열 번 본 이유보다 관점이 궁금했다. 좋은 책은 읽을 때 마다 새로운 생각을 던져주게 마련이다. 시간이 없다는 건 핑계다. 사랑하는 사람이 생겼는데 시간이 없어 못 만난다면 그건 '사랑하지 않는'거다. 잠을 줄여서라도, 비행기를 타고서라도 날아가 만나는 것이 사랑이니까.
뜬금없이 영화로 책 소개를 시작한 것은 이 책의 흐름이 그렇기 때문이다. 처음에 몇 장을 보면 '어렵게' 느껴진다. 단어의 의미와 원래의 뜻에 집착하는 저자의 '강박(좋은 의미의)'은 살짝 비켜갈 필요가 있다. 그렇게 길지 않은 수풀 몇 개를 헤집고 나가면 이윽고 고요한 호수를 닮은 그의 생각이 수줍게 그 모습을 드러낸다. 그리고 늘 궁금했던, '그는 어떻게 생각하고 일하는가'와 더불어 '어떻게 살아가는가'가 드러난다. 이 사람은 그런 정도의 '매력'을 풍길 줄 아는 사람이다.
나는 이 사람을 안다고 하기도, 모른다 하기도 그런 사이다. 딱 한 번 만나 깊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인터뷰'를 핑계대고 만나고 싶은 사람을 만나는 그런 자리였다. 그리고 이 사람이 단 한 줄의 카피를 쓰기 위해 얼마나 고심하는 사람인지를 알아차렸다. 그 후 몇 번이나 일방적인 구애를 보냈으나 아직도 다시 만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그의 책, '본질의 발견'은 여러 번 읽었다. 일이 막힐 때는 그의 책을 정독했다. 그리고 적지 않은 도움을 받았다. 강물이 흐릴 때는 그 강을 따라 상류로 올라가면 된다. 강물의 시작점은 언제나 맑기 때문이다. 무엇이든 본질은 닿아 있기 때문이다.
그의 말대로 우리는 누구나 '기획'을 하며 살아간다. 다소 '본질'에 집착했던 전작에 비하면 이 책은 뒤로 갈수록 쉽게 읽히는 편안한 에세이에 가깝다. 그러나 그가 지속해온 '작은 반복'의 힘은 묵직한 직구처럼 가슴팍을 파고 들어온다. 오랫동안 브랜딩과 마케팅을 고민해온 사람들에겐 매우 아플 수도 있다. 그만큼 고민하지 않고 쉽게 일해왔다면 반성할 필요도 있다. 하지만 '자신의 삶'을 어떻게든 '기획'해내야 하는 사람에게는 이만큼 좋은 '습관'의 가이드도 없다.
아무튼, 신은 불공평해서 그에게 큰 키와 쿨한 외모, 깊이 있는 사고력과 더불어 두 아이까지 주신 모양이다. 그러나 정작 그의 관심사는 아주 깊고 먼 다른 곳을 향하고 있는 것 같아 괜한 안심이 든다. 성공사례 몇 개를 가지고 강의나 다니는 사람은 아님을 알기 때문이다. 페북에 논문과도 같은 글을 하나 올리면 그곳은 곧바로 토론의 장이 되는 사람은 흔치 않다. 이런 '젊은 브랜더'들이 있다면 우리도 머지 않아 멋진 브랜드들이 부흥하는 현장을 목도할 수 있을지도. 그 물가에서 발이나 담그며 토닥거리는 내가 심호흡을 하는 이유는 따로 있다. 에세이도 이 정도일진데, 작정하고 쓰고 있다는 또 다른 책은 또 얼마나 받아내기 어려울지...
그러나 괜찮다. 모두가 오타니일 필요는 없다.
게임은 게임대로 누리고, 나는 나대로 공을 던져야지.
그리고 틈 나는대로 그의 습관을 흉내내야지.
어차피 그가 정말 말하고 싶었던 것은 #스몰스텝 일거야.
아주 작지만 사소한 습관의 만드는 놀라운 결과들을.
그런 위안의 마음을 가지고의 그의 책의 마지막 장을 덮었다.
p.s. 물론 진짜 리뷰는 아직 쓰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