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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 기타, 그리고 계원예고

그건 우연이었다. 아들에게 그런 재능이 있는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만일 오지랖 넓은 와이프가 '뭘 좋아할지 몰라' 다 시켜보는 무모한 도전을 하지 않았다면, 몰랐을 것이다. 아들에게 음악적 재능과 관심과 열정이 숨어있을 줄 말이다. 태권도도, 축구도, 농구도 아니었다. 어느 날 그룹으로 기타를 가르칠 때만 해도 와이프의 이러한 열정이 끝나가는 줄로만 알았다. 우리 집안이나 외가 쪽이나 음악적 재능이나 직업을 가진 사람은 전혀 없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룹으로 시작한 과외가 하나둘 떨어져나가기 시작하다가 결국 아들만 남았을 때는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해가 가고 또 다른 해가 지나 3년이 지나자 아들의 기타는 세 대가 되었다. 통기타, 클래식 기타, 이윽고 전자 기타까지. 그런 아들이 바로 오늘 계원예고에 입학했다. 아들 표현으로는 '꼴지'라 할 수 있는 '추가합격'의 영광으로. 나는 이제서야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 사람에겐 누구나 나름의 Driving Force를 타고 난다고.


웬 호들갑이냐고. 예고에 합격한 일이 그렇게 대단한 일이냐고. 그런데 그게 그렇지가 않다. 아들은 올초 학교에서의 어려운 일로 1년간 대안학교를 다녔다. 힘든 1년이었다. 그 와중에도 아내가 아들의 기타 과외를 끊지 않은 이유는 단 한가지였다. 세상에서 어려운 일을 만날 때마다 스스로를 지킬 수 있는 무언가 하나가 있어야 한다고 했다. 그게 아들에게는 기타라고 했다. 그래서 영어 과외의 두 세배 가까운 기타 학원을 끊지 못했다. 와이프는 아들과 자주 버클리 음대의 꿈을 이야기했다. 나는 당장 고등학교 진학도 어려울 아들을 진심으로 걱정했다. 대안학교를 다닌 이유로 아들의 내신 성적은 곤두박질쳤기 때문이다. 그 와중에도 와이프와 아들은 꿈을 꺽지 않았다. 나는 그럴 때마다 속으로 두 사람을 타박했다. 꿈같은 소리라 생각했다. 그래서 서실음(서울실용음악학교)와 계원예고를 연달아 떨어질 때만 해도 당연한 일로 여겼다. 하지만 당연하지 않았다. 아들은 그 어려운 1년을 기타 하나로 견뎌내며 결국 사고를 쳤다. 누가 봐도 근사한 사고다. 중3 내신의 All E임에도 불구하고 아들은 실기 실력 하나로 예고에 입학했다. 아빠인 내가 가장 놀랐다.


아들은 기타를 칠 때 가장 생기 넘쳤다. 살아있는 것 같았다.


사람에겐 누구나 '살아있음'을 느끼는 무언가를 가지고 태어난다고 말해왔다. 그것은 사람마다 다르며, 그것이 가장 자기답게 살아가는 솔루션임을 역설해왔다. 내게는 그게 글쓰기이고 말하기이다. 내가 자신있는 주제라면 글과 말로 사람들과 소통하는 시간이 가장 즐겁다. 그리 사교적이지 않은 내가 수없이 많은 강연과 모임을 연달아 지속하는 이유는 그 한 가지 이유 때문이다. 나는 그때 '살아있음'을 느낀다. 그것을 나는 'Driving Force'라고 부른다. 와이프에겐 그것이 '약한 자를 돕는 일'이다. 무려 10년 째 보육원의 한 아이를 후원하고 있다. 그래서 두 번의 방학과 때로는 명절까지, 심지어는 가족사진까지 함께 찍는 돈독한 관계를 이어오고 있다. 그런 아내가 아들에게 쏟는 관심의 9할은 '아들의 행복'이었다. 공부를 못해도 좋으니, 스스로 행복한 순간을 만들어내는 일에 온 정성과 힘을 쏟았다. 어려운 형편에도, 때마다 나와 싸우면서도 기어이 학원을 보내는 바로 그 때문이었다. 아들의 숨은 'Driving Force'를 발굴해낸 공의 10할은 와이프다. 나는 그런 와이플를 말릴지 않았을 뿐 발 벗고 나서서 도우지 못했다. 그것이 오늘의 기쁨에 단 하나 걸리는 일이다.


교육이란 무엇일까? 좋은 학교를 좋은 성적으로 보내는 일일까? 그렇게 좋은 학교를 나와 좋은 직장을 들어가는 일일까? 그런 조건으로 좋은 배우자를 만나 '남들보다' 혹은 '남들만큼' 살아가는 일일까? 그런 관점에서라면 아내의 선택과 도전은 무모했다. 가정사이므로 자세히 밝힐 수 없으나 아들의 지난 1년은 가슴 내려앉는 일들로 가득했다. 평범하게 학교 다니는 아이들을 가장 부러워할 만큼 힘든 1년이었다. 그런데 그런 아들의 1년을 지켜준 건 다름아닌 기타였다. 그 기타로부터 시작한 아들의 진로 찾기가 오늘의 결과를 만들었기에 더욱 놀랍다. 평범한 중학생 아이 하나도, 스스로를 '살아있게' 만드는 무언가를 만난는 순간, (우리만의) 작은 기적을 만들어내었으니 말이다.


스몰 스텝은 '살아있음'에 관한 것이다. 일상에서 가슴 뛰는 순간을 세밀하게 만들어가는 일이다. 만일 아들이 기타를 잡지 못했다면, 엄마의 오지랖에 이끌려 그룹 레슨을 받은 날이 없었다면, 아들을 지킬 수 있는 소중한 무언가가 기타일 줄은 꿈에도 알지 못했을 것이다. 그것이 아들의 힘든 시간을 이겨내게 할 줄은 우리 중 어느 누구도 알지 못했으니까 말이다. 그러니 우리는 애타게 찾아야 한다. 그것이 아무리 작고 사소하고 엉뚱해 보이는 일이라 할지라도, 허물어지기 쉬운 우리의 일상과 일생을 지켜줄 무언가를 찾을 의무가 우리에겐 있다. 그러나 그것은 쉽게 찾을 수 없다. 두 눈을 부릅떠야 한다. 무엇을 할 때 가장 즐겁고, 행복하며, 가슴 뛰게 만드는지를 좀 더 열심히 찾아야 한다. 그것이 돈이 안된다고, 생산적이지 못하다고, 남의 이목에 거슬른다고 멈추는 일은 없어야 한다. 결국 그것이 인생의 가장 힘든 순간에 새 힘을 줄 것이기에, 언제 찾아올지 모를 고통 속에서도 삶을 붙잡아야 할 이유를 줄 것이기에. 우리는 우리만의 Driving Force를 찾아야 한다. 지금 내가 이 글을 굳이 쓰는 것처럼. 내가 이 순간 살아있다고 느끼고 있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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