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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 개의 빛나는 태양 앞에서, 스몰 스텝 1주년 모임

태풍이 온다고 했다. 비껴갔다. 비 올 확률이 80퍼센트라고 했다. 오지 않았다. 행사 당일은 원래 취소자가 많은 법이다. 하지만 스몰 스텝의 1주년 모임 당일, 새로운 신청자들이 줄을 이었다. 행사장 안은 열기로 후끈했다. 그 가운데서 내가 한 일은 10분 스피치가 전부였다. 다들 알아서 행사 기획을 하고, 알아서 비품과 간식을 준비하고, 알아서 행사를 진행하고, 알아서 뒷풀이 장소를 섭외하고, 알아서 정산까지 완벽하게 해냈다. 나는 행사 내내 맨 뒷편에 서서 이 모습을 바라보았다. 내가 그리던 모습이었다. 내가 바라는 것은 완벽한 조연이다. 화려한 주연 뒤에서 그를 돕고 응원하는 써포터의 역할이다. 오늘은 그런 꿈이 이뤄진 그런 날이었다.



대여섯 명의 사람들이 첫 오프 모임을 마치고 순남 씨레기에 갔었다. 1년 전의 일이었다. 나는 의무감 비슷한 심정으로 모임을 마친 후 빨리 집에 가려고 했다. 하지만 주최자가 빠질 수 없어 뒷풀이에 참석했다. 그 모임이 오늘 60여 명이 모인 정기 모임의 첫 시작이었다. 솔직히 나는 이렇게 화려하고, 요란하고, 시끌벅적한 모임을 좋아하지 않는다. 무려 서른 명 이상이 참석한 대규모 뒷풀이 장소에도 빠지고 싶었다. 하지만 지난 1년 동안 배우고 학습한 것이 있었다. 그것은 이들과 어울리고 대화하고 함께 공감하면 뜻하지 않은 새로운 기회들이 생긴다는 점이었다. 즉석에서 산책 단톡방을 만들겠다는 분들이 속출했다. 독립출판에 관한 아이디어를 주고 받았다. 끊임없이 싸인을 했다. 동네 분을 만났다. 이런 모임이 아니라면 만나지 못했을 기회와 사람들이 줄을 이었다. 그런 학습 효과가 마음껏 뒷풀이를 즐길 수 있게 도와주었다.



솔직히 어떤 일이 벌어질지 전혀 알지 못했다. 기획하는 모임을 두어 번 했으나 내 역할도 최소화했다. 그리고 모임 내내 내가 한 일은 뒷자리에 서서 감탄한 일이었다. 사람들이 홀린 듯이 자기 소개를 했다. 기가 막히게 20초에 맞추어 스몰 스텝을 향한 자신의 마음을 고백해주었다. 다섯 분의 스몰 스테퍼가 나와 간증?을 했다. 명언들이 줄을 이었다. 지난 1년 간 스몰 스텝을 실천해온 분들의 이야기는 재미 있고 살아 있었다. 이렇게 대단한 분들과 함께 스몰 스텝을 실천하고 있었다니. 고마움과 자랑스러움과 흐뭇함으로 만감이 교차했다. 행사 전반을 기획하고 진행한 희원님, 드레스를 입고 좌중을 압도한 윤정님, 토크쇼로 자리를 빛내 준 세환님과 길헌님, 궂은 일을 도맡해준 은미님, 훈남 외모로 손님을 맞아준 성봉쌤, 사진과 동영상 촬영으로 묵묵히 동분서주한 나코리님과 석헌님, 휴가 중에서 재정 관리를 담당해준 담이님, 운영진처럼 진행을 도와준 선진님, 그리고 19개 단톡방의 방장님들까지...



오래 살고 볼 일이다. 이 모든 일의 시작이 나로부터 비롯되었다는게 믿기지 않는다. 하지만 새로운 주인공의 탄생이 더 없이 흐뭇하기만 했다. 모임 내내 나의 생각은 다른 곳을 향해 있었다. 이 멋진 모임을 어떻게 더 업그레이드할 것인가. 그러기 위해 어떤 분들을 찾아가야 하는가. 여기 오신 분들을 어떻게 더 놀라운 주인공으로 만들 것인가. 이 생생한 자발적인 움직임들을 어떻게 그대로 이어갈 것인가. 그러기위해 내가 당장 할 수 있는 일은 도대체 무엇일까. 그러나 그것은 행복한 고민이었다. 내가 계획하고 의도하고 목표로 한 결과가 아니었기에 편안할 수 있었다. 내 역할은 이들이 마음껏 자신의 역량을 펼칠 판을 만들어 놓는 것이다. 더 대단한 주인공들의 탄생을 돕는 것이다. 그리고 2주년의 더 멋진 나눔들을 조용히 묵묵히 기대하는 것이다.



한 여름 밤의 꿈같은 일이었다. 그러나 아직 깨지 않은 꿈이다. 평범한 사람들이 비범해지고, 루저들이 위너가 되고, 우울한 하루가 가슴 벅찬 일상으로 변화하는 것, 지난 수 년간 내가 직접 경험하고 목도해온 일들이다. 수년 전 나는 혼자였다. 그러나 지금은 혼자가 아니다. 9명의 운영진과 60여 명의 1주년 모임 참가자와 500여 명의 단톡방 참여자들과 함께 꿈을 꾸는 중이다. 일상의 작은 실천을 통해 하루를 살아갈 힘을 얻고, 내 안의 욕구를 발견하며 자기다운 삶을 확장해가는 것. 100명의 사람들이 모이면 100개의 자기다움을 완성할 수 있는 곳. 이런 멋진 모임의 한 가운데서 미래를 본다. 도무지 상상할 수도 없다. 그래서 행복하다. 나는 더 나다워지고 그들이 더욱  빛났으면. 문득 '천 개의 빛나는 태양'이라는 소설 제목이 떠올랐다. 그랬다. 오늘은 60여 개의 태양이 이글이글 빛나고 타오르는, 그런 한 여름의 잊을 수 없는 멋진 오후였다.





* 이 모든 이야기의 시작, 스몰 스텝 단톡방



...그리고 못다한 이야기들, B컷 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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