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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석헌, 매일 두 쪽의 책을 읽는 사람

스몰스테퍼스를 만나다 - 첫 번째 이야기

평일 낮의 김포 공항은 다소 한가했다. 비행기 시간을 다시 확인했다. 약 1시간 정도의 시간이 남아 있었다. 그는 갑작스럽게 주어진 많은 시간이 다소 버겁다고 생각했다. 무엇부터 해야할지 알 수 없었다. '쇼생크 탈출'에 나오는 흑인 배우가 수십 년의 수감 생활을 마치고 나오던 그 장면이 떠올랐다. 그가 느낀 당혹감과 막막함이 이런 것은 아니었을까. 그는 어제의 일을 마치 방금 전 일어난 일처럼 기억할 수 있었다. 그는 막 회사에 사표를 던진 참이었다. 무려 10여 년간 다닌 회사였다. 아침 7시 출근과 11시 퇴근이 일상을 매일같이 반복했다. 밤 10시면 통닭과 탕수육을 먹으며 그 생활을 버텼다. 하지만 그 부담은 고스란히 몸으로 옮겨왔다. 80kg이던 체중이 어느덧 120kg을 넘어서고 있었다. 이대로는 안되겠다 싶었다. 살기 위해 사표를 낸 것인지도 모를 일이었다. 회사가 다시 그를 잡았다. 3개월의 유급 휴가를 받았다. 그는 일단 제주도 여행을 마음 먹었다. 그 첫날의 여행이 이제 막 시작되던 참이었다.

 

인생의 벼랑 끝에서 메모 독서를 만나다


다소 무료해진 그는 공항 서점에서 책 한 권을 집어 들었다. '독서 천재가 된 홍대리'라는 책이었다. 평소라면 마음의 여유가 없어서라도 읽지 않았을 책이었다. 그러나 그는 곧 책에 빠져들었다. 그리고 문득 그의 뇌리를 스친 생각. '이 책에서 한 말이 사실이라면, 나도 그렇게 살아보고 싶다.' 그런 생각이 자석처럼 그의 생각과 몸을 한꺼번에 붙들기 시작했다. 여행 기간 내내 그는 책에 빠져 살았다.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뿌듯한 만족감이 그를 행복하게 만들었다. 다시 서울로 돌아온지 한 달째 되던 날, 그는 두 번째 사표를 던지고 회사를 나섰다. 이번엔 회사가 1년의 휴가를 제안해왔다. 그러나 그는 흔들리지 않았다. 그는 바로 독서모임 부터 찾았다. 그가 가장 먼저 찾은 곳은 '삼천포'라는 이름의 독특한 독서 모임이었다. 책을 읽다보면 삼천포로 빠진다 해서 생긴 재미있는 이름이었다. 하지만 모임을 하고도 남는 내용이 없었다. 그는 미련없이 다른 모임을 찾았다. 그렇게 찾은 곳이 트레바리, 그 다음엔 성장판을 만났다. 거기서 그렇게 메모 독서를 배웠다. 이제 책은, 독서는, 그의 인생에 있어 빠질 수 없는 존재로 완전히 자리잡고 있었다.


 

"메모 독서를 하기 전까지는 24권의 책을 읽었어요. 아마 5월이 아니었나 싶어요. 그런데 메모 독서를 시작한 이후 그 해에만 100권이 넘는 책을 읽었죠. 책의 참맛을 알게 되었달까요. 시간을 내서 책을 읽기 시작했어요. TV나 영화 대신 독서를 했죠. 책의 내용을 옮겨 적으면서 나만의 글들이 나오기 시작했어요. 쓰고 싶다는 욕망이 다시 읽게 만들었어요. 그 욕망이 다시 더 깊은 독서로 이어지곤 했죠. 이제는 두꺼운 책이 두렵지 않습니다. 그래봐야 한 권의 책일 뿐이니까요."

 

이제 그의 책읽기는 이제 평범한 수준을 넘어서고 있었다. 그는 책 한 권을 모조리 필사하기도 했다. 80퍼센트의 내용을 필사한 책만 다섯 권에 달했다. 그렇게 읽고 에버노트에 메모한 책만 무려 261권에 이른다. 읽고 쓰는 모든 것이 그의 삶으로 축적되기 시작했다. '필사는 손으로 하는 명상'이라는 말을 그는 이해할 수 있었다. 그와 대화를 해본 사람은 누구나 알고 있을 것이다. 하나의 이야기가 시작되면 바쁘게 스마트폰을 검색하는 그의 모습을. 그리고 주제와 상황에 맞는 기막힌 구절을 꺼내놓을 때의 그의 뿌듯한 표정을. 그래서 생긴 그의 별명은 '명언 자판기'. 그래서 한 번은 이렇게 물은 적이 있었다. 왜 누군가는 책을 읽고 나서도 그대로인데, 당신은 그렇게 변할 수 있었느냐고.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던 그의 대답은 오래 걸리지 않았다.


 

"조급해하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요. 사람들은 빨리 책의 결론을 알고 싶어하거든요. 마음을 열지 않고 독서를 한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어떤 마음가짐으로 책을 대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독서를 경험하곤 해요. 독서는 인간관계와 같아요. 천천히 오랜 시간을 두고 만나봐야 하죠. 때로는 싸우기도 해야 해요. 제대로 읽었다면 바뀌지 않을 수 없어요. 읽고 말 것인가, 행동할 것인가. 제겐 그 실천의 방법이 '하루 두 쪽 읽기'인 셈이에요."


내 인생을 바꿔 놓은 두 쪽 읽기의 비밀


스몰 스텝엔 20여 개 남짓한 단톡방들이 있다. 그 중 가장 많은 사람이 참여한 단톡방 중 하나가 바로 '하루 두 쪽 읽기' 방이다. 이 방의 룰은 간단하다. 자신이 읽고 있는 책의 페이지를 사진으로 찍어 올려 인증하는 것이다. 그 후엔 읽은 책의 제목을 자신의 이름과 함께 리스트에 올린다. 매일 3,40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같은 방식으로 자신이 읽은 책을 인증한다. 자연스럽게 시너지가 난다. 때로는 경쟁으로, 때로는 자극으로, 함께 읽는 독서의 힘은 실로 어마어마하다. 두 쪽 읽기가 결코 두 쪽으로 끝나지 않기 때문이다. 책 한 권을 완독했다는 고백들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문득 ‘최대정지마찰력’을 가르쳐주시던 중학교 선생님이 설명이 기억이 난다. 선생님은 그 날 아무 말 없이 교탁에 힘을 주었다. 그리고 뭔가 알아낸게 없냐는 듯 우리를 바라보았었다. 그리고 몇 번을 반복하자 한 아이가 손을 들었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처음 힘을 줄 때가 가장 힘이 듭니다. 그 다음에 교탁이 쉽게 움직입니다.”

 

두 쪽 읽기를 이보다 더 잘 설명할 방법이 또 있을까? 하루 두 쪽의 책읽기는 바로 이 최대정지마찰력을 이겨내는 보이지 않는 힘이다. 두 쪽을 읽고 끝낼 수도 있다. 그러나 많은 경우 한 번 탄력을 받은 독서는 거기서 그치지 않는다. 이 뿐만이 아니다. 그는 두 쪽 읽기와 함께 매일 두 줄의 필사를 한다. 정약용은 자신이 읽은 책의 내용에 생각을 덧붙여 자신만의 독서 기록을 후세에 남겨 놓았다. 그것을 바로 '초서'라고 한다. 2018년 5월 24일 이후 무려 460일간, 그는 정약용처럼 독서의 흔적을 빼곡히 기록해왔다. 책은 도끼처럼 그의 생각을 부수었다. 그는 비로소 깨닫게 되었다. 세상이 그를 힘들게 한 것보다 자신이 스스로를 한계지어 왔다는 사실을. 그는 비로 '선택할 수 있는' 자유를 얻었다. 그간 반복해온 삶의 실수들을 하나씩 하나씩 바로 잡기 시작했다. 그래서 그는 스스로를 '오류'라고 부른다. 이 삶의 오류를 시작하는 방법이, 그에게는 바로 독서와 글쓰기였던 것이다.


 

"친구들이 모두 저보고 달라졌다고 말합니다. 말과 행동이 모두 달라졌다나요. 엄청 수다스러워졌죠. 대화의 주제가 달라지고, 사람을 만나는 만족도도 엄청 높아졌어요. 그렇게 책을 읽으면서 저 자신을 찾고 있어요. 같은 책을 읽어도 남이 찾지 못하는 명문장들을 찾을 수 있는 안목도 생겼구요. 무엇보다 저답게 살고 있어서 좋은 것 같아요. 예전에는 남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책을 읽었다면, 이젠 독서 그 자체가 유희가 되었달까요. 언젠가는 이런 경험을 담은 책 한 권을 꼭 쓰고 싶어요. 기회가 된다면 강연도 해보고 싶구요."

 

우리는 오랫동안 거대하고 대단한 것들에 열광해왔다. '2등은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다'는 광고는 우리나라 1등 회사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우리 모두의 동의에 의해 만들어진 말이다. 하지만 이제는 그 신화에 조금씩 금이 가고 있다. '최고'가 '전부'는 아니다라는 조그마한 반란들이 계속되고 있다. 이제 사람들은 '평범한' 사람들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정석헌님의 독서 경험이 인상 깊었던 건 그래서였다. 공감할 수 있는 실패, 공감할 수 있는 용기, 그 사람이 바로 내 옆에서 살아 숨쉬는 사람이라는 사실이 유명한 누군가의 이야기보다 더 큰 울림을 주었다. 그와 함께 스몰 스텝 모임을 함께 해온지도 어느 덧 1년을 바라보고 있다. 하지만 독서와 글쓰기를 이야기할 때의 홍조 띤 그 표정은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무엇이 그를 그토록 생기 넘치게 만들고 있을까. 그를 만나고 돌아오는 길, 문득 그가 읽어준 몽테뉴의 문장 하나가 떠올랐다. 책을 읽을 때, 독서를 이야기할 때, 함께 글쓰기를 고민할 때, 그리고 강연을 할 때, 그는 어느 때보다도 그다워지고 있었다. 그제서야 나는 고개를 끄덕일 수 있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경험은 자기가 저 자신임을 이해하는 것이다.'

- 몽테뉴, '위로하는 정신(p.113)' 중에서...





Small Tip 1) 내 생애 최고의 독서 문장 10가지

  

1. '너는 그림을 못 그려'라는 소리가 마음 속에서 들린다면 반드시 그림을 그려라. 그 소리가 잠잠해 질 것이다.

-빈센트 반 고흐

 

2. 인생은 한 권의 책과 같다. 어리석은 이는 그것을 마구 넘겨 버리지만 현명한 이는 열심히 읽는다. 단, 한 번밖에 인생을 읽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 상파울

 

3. 처음에는 도대체 '왜' 하냐고 물을 것이고, 나중에는 도대체 '어떻게' 해낸거냐고 물을 것이다.

어니스트 헤밍웨이

 

4. 위대한 성과는 소소한 일들이 모여 조금씩 이루어진 것이다.

-빈센트 반 고흐

 

5. 서두르지 말고 쉬지도 말라

괴테

 

6. 행동하는 자만이 배우기 마련이다

니체

 

7. 사람들은 세상을 바꾸겠다고 곧잘 얘기하지만, 어느 누구도 자기 자신을 바꿀 생각은 하지 않는다

레프 톨스토이

 

8. 삶이 레몬을 내밀거든, 당신은 레모네이드를 만들어라 

데일 카네기

 

9. 절대 후회하지 마라. 좋았다면 추억이고, 나빴다면 경험이다. 

캐롤터킹턴

 

10. 생각을 바꾸면 행동이 바뀌고, 행동을 바꾸면 습관이 바뀌고,  습관을 바꾸면 인격이 바뀌고,인격이 바뀌면 운명이 바뀐다. 

윌리엄 제임스





* 정석헌님과 매일 두 쪽의 책을 함께 읽고 싶다면...

(참여코드: 2page)


* 도대체 스몰 스텝이 뭔지 몹시 궁금해졌다면...

(참여코드: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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