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 시험을 치르던 날이었다. 그의 모의 고사 성적은 전국 30등. 서울대 치대를 가고 싶었던 그는 죽을 힘을 다해 공부를 했다. 마지막 관문만이 남은 날이었다. 점심을 먹고 영어 시험을 치렀다. 그리고 거짓말처럼 잠이 들었다. 깨어나보니 영어 시험은 끝나 있었다. 그해 10월 발병한 당뇨병으로 인한 증상 중 하나였다. 원하는 대학을 갈 수 없었다. 허탈감이 밀려들었다. 다시 수능을 준비할 마음이 사라져 버렸다. 그 대신 그는 대학 생활 내내 과외를 했다. 허탈함을 달래기 위해 노래방을 섭렵했다. 그 노래방 모임에서 지금의 아내를 기적처럼 만났다. 그의 삶에 또 다른 삶이 더해졌다. 불행이 행복으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삶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365일 중 364일을 아내와 만났다. 서점과 카페를 오가는 데이트가 계속되었다. 군 입대를 한 후 휴가를 나오던 날, 지금의 그의 아내가 루푸스 초기 진단을 받았다. 조그만 병원의 의사가 레지던트 생활 중 단 한 번 보았던 사진이 그녀를 구했다. 물론 지금도 조금만 이상하면 병원에 가야 한다. 불행을 하나 더하기 보다, 행복을 하나 더하기 위한 결단이 필요했다. 두 사람은 복잡한 서울을 떠나 익산으로 내려갔다. 8개월 간 마음껏 쉬었다. 그리고 생활비를 벌기 위해 생업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익산은 아무리 열심히 해도 생활이 어려웠다. 전주로 올라와 아이들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구름떼처럼 아이들이 몰려 들었다. 수학을 가르쳤다. 거기에 대해 공부의 습관을 가르쳤다. 플래너를 만들어 아이들에게 나눠주었다. 낯선 곳에서의 또 한 번의 삶이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이런 송사장(본명 송길헌)을 만난 건 두 번째인가 세 번째의 스몰 스텝 모임에서였다. 특이하게도? 그는 모든 모임에 아내를 데리고 왔다. 원래 그랬던 것처럼 두 사람의 모습은 자연스러웠다. 궁금증이 일었으나 자세하게 묻지는 않았다. 몇 번의 만남 후 그의 강연을 들었다. 무엇이 중요한지 아는 삶, 자신의 인연에 최선을 다하는 삶, 자신의 업에서 스몰 스텝을 실천하는 삶, 그리고 그가 아끼는 다양한 문구들에 대한 호기심까지. 그는 지금 좋은 문장을 나누는 '고고고방'과 하루 하나의 수학문제를 푸는 '매스스텝방'을 동시에 운영 중이다. 하루는 그가 빼곡히 적힌 자신의 노트를 보여주었다. 그가 이루고 싶은 꿈들이 잔뜩 적혀 있었다. 그에게 노트와 플래너는 단순한 '기록'이 아니었다. 언젠가 도래할 '현실'이었다. 시골에서 도약을 꿈꾸는 제갈량의 포부처럼, 그의 꿈은 생각보다 크고 원대해보였다. 하지만 그는 서두르지 않았다. 한발 한발 차곡 차곡, 자신만의 걸음을 걷고 있었다.
그는 지금 수학 학원의 원장님이다. 단순한 수학 풀이법을 넘어 수능에 필요한 공부법을 가르친다. 그의 꿈은 바로 그 지점의 연장선상에 있다. 아카데미 힐즈와 츠타야를 섞어 놓은 곳, 언젠가 그가 이루고 싶은 꿈이자 도래하지 않은 현실이다. 여전히 그를 괴롭히는 병이 삶에 족쇄를 채웠다면, 그 고리를 끊어내기 위한 방법으로 미래를 계획한다. 자신의 경험과 지식을 나누고 싶은 사람들이 언제라도 강의를 할 수 있는 곳, 그 강의를 누구나 언제라도 들을 수 있는 곳. 그 꿈을 이루기 위해 그는 지금도 노트를 쓴다. 그림을 그린다. 아이들을 가르친다. 매일 좋은 문장을 나누는 '고고고방'과 하루 하나의 수학문제를 푸는 '매스 스텝'을 운영한다. 나는 지금 그런 그와 함께 그림을 그리고 있다. 그의 꿈과 나의 경험이 만나는 지점에 있을 그 무언가를 찾아서. 나는 그의 삶에 더해질 또 한 번의 더하기가 궁금해진다. 아마도 그 결과는 '둘'이 아닐 것이다. 지금의 아내가 그에게 '더하기 하나' 이상의 존재가 되어 있는 것처럼. 그의 계산법은 무한대이다. 그 계산의 끝을 함께 바라보고 싶다.
* 송사장과 함께하는 필사 '고고고' (참여코드: gogogo)
* 매일 매일 수학문제를 푸는 신비한 사람들이 있다 '매스 스텝' (참여코드: mat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