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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가 힘들다고 말하는 당신에게, 나코리의 이중 생활

나는 아직도 그의 이름을 모른다. 필명은 나코리. 그를 언제 처음 만났는지도 확실치 않다. 그는 그만큼 평범했다. 그에 대해 관심을 가진 건 영화를 추천한 블로그 글 때문이었다. 고마츠 나나가 나오는 두 편의 영화를 소개했다. 직접 보니 아재를 위한 감성 폭발의 영화였다. 이후로 나는 고마츠 나나의 숨은 팬이 되었다. 관련된 영화와 소설까지 사 볼 정도로. 적지 않은 나이의 이 남자가 궁금해졌다. 그런 그를 '사람책'이라는 행사에서 만났다. 혼자서 기획과 모객을 모두 담당한 행사였다. 영화적 감상과는 또 다른 모습이었다. 놀랍게도 강연장이 가득찰 정도로 뜨거운 모임이었다. 첫 번째의 행사 성공으로 앵콜 요청으로 이어졌다고 했다. 지극히 평범한 사람들의 15분 간의 이야기. 하나의 주제를 다루는 다섯 개의 다른 이야기. 이 모두가 한 개인의 기획으로 이뤄진 것이라고? 믿을 수 없어서 그의 블로그를 다시 찾았다. 빼곡히 쌓인 그의 글들을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모임 참여를 원하는 수십 개의 댓글들이 빼곡했다. 사람들이 모인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나코리'란 이름은 이미 '브랜딩'되어 있었다.



어느 화창한 초여름의 어느 날, 선릉역 인근에서 그를 다시 만났다. 이번에는 스타트업 얼라이언스에서 열리는 커피 모임에서였다. 다양한 스타트업들이 자신의 비즈니스를 소개하는 정기 프로그램이었다. 스몰 스텝이 인연이 되어 운영진으로 만난 이후의 일이었다. 함께 아침을 먹으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알고보니 그는 대기업 전략기획실에서 일하는 중이라고 했다. 그제서야 탁월한 기획력의 실체를 만나는 기분이었다. 그리고 지금은 휴직 중이라고 했다. 그런데도 1인 기업으로 일하는 나보다 몇 배는 바빠보였다. 사내 강사로 강의를 시작했다고 했다. 직장을 다닐 때는 연차가 부족할 정도로 강의를 다녔다. 강의 대상도 다양했다. 일반 회사원을 향한 강의도 있었지만, 아이들을 위한 독서모임도 하고 있었다. 조만간 회사를 나올 것 같아 넌지시 그에게 물어보았다. 그러자 확신에 찬 답이 돌아왔다.


"저는 정년퇴직이 목표입니다."


회사를 다니는 사람은 누구나 퇴사를 꿈꾼다. 퇴사한 사람들은 월급을 갈망한다. 회사 안은 감옥이다. 그러나 회사 밖은 지옥이다. 이렇듯 차악을 선택해야 하는게 우리의 현실이라면, 나코리란 사람의 이중 생활을 훔쳐보는 건 어떨까? 회사 안에서도 인정받는 그다. 전략기획실 근무가 아무에게나 주어지는 기회란 것쯤은 모두가 잘 안다. 그럼에도 그는 회사에 의존하지 않았다. 회사 생활의 생리를 꿰뚫고 있었다. 그가 최근에 쓴 브런치 글은 그런 회사 생활의 명과 암을 선명하게 보여주고 있었다. 회사 안의 동물원 같은 생존 방식에 관한 그의 글은  생생하다 못해 섬뜩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그는 회사 밖의 현실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퇴사는 결코 낭만적인 선택일 수 없다. 감옥에서 지옥으로 향하는 지름길이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다니는 거대한 회사에 의존하지도 않았다. 다양한 강의 경험은 그 절실함이 만들어낸 일종의 솔루션이었다. 회사 안에서 회사 밖의 자유를 지향하는 삶, 회사의 명함에 의존하지 않고 자신의 능력으로 개척하는 삶, 그런 도전적인 삶을 향한 의지의 결과였다. 그는 감옥과 지옥 사이 어딘가의 자유지대를 여행하는 노마드의 삶을 살고 있었다.



나는 솔직히 그의 삶이 부럽다. 회사 안의 안정과 회사 밖의 자유를 동시에 누리고 있으니 말이다. 나는 왜 회사를 다닐 때 그와 같은 깨달음을 얻지 못했던 것일까 후회한 적도 있다. 그때는 생존이 전부였고, 살아남는게 전부였고, 월급이 전부였다. 회사 밖을 나오는 순간 인생의 루저가 될 것 같았다. 그러나 그 절박함을 성과로 이어가지 못했다. 하지만 회사에 목을 메는 사람은 회사에 필요치 않은 존재다. 진짜 회사가 필요로 하는 사람은 언제든 회사를 떠날 수 있는 '차별화'된 사람이다. 그러나 그런 사람을 만나기란 또 얼마나 어려운가. 회사 안에서 인정받기 위해 가족과 건강과 자신의 인생 모두를 거는 사람을 숱하게 보아왔다. 그러나 그런 사람일수록 회사를 나오는 순간 'Nothing'이 된다. 명함이 사라지는 순간 평범해진다. 아마 나코리는 그런 모습을 여러 번 보았을 것이다. 그리고 나름대로의 생존법을 찾았을 것이다. 그 모습이 지금의 '나코리'란 이름을 만들어냈을 것이다.


그가 찍는 사진은 언제나 따뜻하다.


그는 정년퇴직이 목표라고 했다. 그런데 나는 이 말을 조금 다르게 해석하는 중이다. 그는 회사에서 살아남는 것을 최종의 목표로 삼는 사람이 아니다. 오히려 사이드잡의 화려한 유혹에 넘어가지 않기 위해 애쓰고 있는 중이다. 그것이 일반 회사원들과 그를 구분짓게 한다. 그것이 어쩌면 그의 삶에 넘치는 활력의 원천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회사 안의 안정과 회사 밖의 자유를 동시에 누리는 나코리의 이중 생활은, 어쩌면 매주 월요일 아침마다 퇴사를 꿈꾸는 당신에게 제 3의 선택지를 선물할지도 모른다. 그러니 그의 이중 생활에 주목해보자. 그가 하는 활동 등을 따라가보자. 감옥과 지옥 사이를 넘나드는 그의 여정을 함께해보자. 어쩌면 당신도 그처럼, 가장 자기다운 삶이 선물하는 '차별화'라는 무기를 갖게 될지도 모른다. 차악만을 선택할 수 있는 시대에 최선의 삶을 쟁취하는, 놀라운 삶의 모멘텀에 서게 될지도 모른다. 그의 이중 생활은 그래서 무죄다.




* 나코리의 이중 생활


* 나코리가 궁금해졌다면...


* 나코리의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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