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그만 사탕가게를 하는 위그든씨 앞에 어느 날 한 아이가 찾아온다. 형형색색의 사탕을 신중하게 고르고 또 고른 아이는, 위그든씨 앞에 소중하게 종이로 둘러싼 버찌씨 몇 개를 내 놓는다. 위그든씨의 눈가가 알듯 모를듯 움찔한다. 아마 그 짧은 시간, 위그든씨는 이 상황을 이해하고 그에 맞게 대응하기 위해 엄청나게 많은 힘을 쏟았을 것이다. 이 아이가 왜 버찌씨를 내밀고 있는가. 그것도 진짜 돈을 다루듯 소중하게. 어쩌면 이 아이에겐 버찌씨가 돈과 같은 역할을 하는 것일지도 모르겠구나... 그렇게 잠깐의 시간이 흐른 후 위그든씨가 아이에게 이렇게 얘기한다.
"얘야, 돈이 너무 많구나. 여기 잔돈도 받아가렴."
나는 이 이야기를 내가 진행하는 글쓰기 교실 '쓰닮쓰담(쓰고 닮아가고, 쓰고 담아가는)'에서 들었다. 기억에 어렴풋이 남아 있던 이야기였다. 어린 마음에도 '이건 뭐지?'라는 의문을 품었던 기억이 난다. 함께 글쓰기를 공부하는 선아님은 이렇게 상대방을 '이해'하고 '존중'하는 삶을 살고 싶다고 했다. 가슴 뭉클한 감동이 찾아왔다. '존중'이라는 단어를 이렇게 생생하게 배워본 적이 있을까 싶었다. 어차피 돈이란 것도 그 자체로는 그만한 가치를 지니지 못한다. 화폐란 약속이다. 서로가 그에 상응하는 댓가를 지불하겠다는 약속을 지킨다면 버찌씨가 돈의 역할을 못할 것도 없다. 기억 저 먼 곳에 숨어 있던 위그든씨가 그렇게 내게로 다가왔다. '가치'있는 삶이란 이런 것이겠구나 싶었다.
성재님은 과거의 직장으로부터 연봉 2억의 제안을 거절한 이야기를 들려 주었다. 보통의 사람으로선 이해할 수 없는 결정이었다. 그러나 그의 선택은 단호했다. 그는 과거의 삶을 되풀이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돈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고 했다. 그에겐 '소통'하는 삶이 부유한 삶보다 더 소중한 가치였다. 돈을 벌기 위해 가족, 친구, 지인과의 진정한 소통을 방해받는 삶을 살고 싶지 않다고 했다. 그러면서 나는 스스로에게 되물어 보았다. 지금의 삶을 2억의 연봉과 바꿀 수 있을까. 나도 같은 결정을 할 수 있을지 차마 장담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세 시간의 글쓰기 모임을 마치고 토욜님과 함께 전주로 내려갔다. 점심도 대충 떼우고 부리나케 달려간 시간은 오후 5시. 2시에 시작된 모임은 이미 세 시간을 지나 있었다. 그러나 '스몰 스텝'이라는 이유로 모인 이들은 미동도 없이 1시간 가까운 내 강의를 들어 주었다. 뒷풀이는 2차까지 갔다. 아침 10시 공주에서 오신 분은 아마도 12시간을 우리 모임과 함께 한 셈일 것이다. 무엇이 이들을 주말의 소중한 황금 시간과 맞바꾸어가며 이 모임에 오게 만들었을까. 이들을 여기까지 데려온? 열정의 근원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나는 그것을 강연에서 'Driving Force'라는 이름으로 설명해주었다. 우리가 추구하는 '가치'이자 선한 영향력이라고 말했다. 오전의 글쓰기 강의와 오후의 스몰 스텝 강의가 이렇게 만나고 있었다.
인생 뭐 별거 있냐며 사는 삶이 쿨해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삶은 그렇게 가볍게 다룰 선물이 아니다. 우리는 각자 다르게 태어났고, 그 삶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고 믿는다. 자기답게 산다는 것은 자신을 움직이는 삶의 동력을 찾아가는 것이다. 그 에너지를 선한 영향력으로 주변 사람에게 환원하는 것이다. 위그든씨가 그랬던 것처럼, 성재님이 그랬던 것처럼, 스몰 스텝 전주 모임에 참여했던 이들처럼, 우리는 저마다 소중하게 여기는 '가치'를 좇아 살아갈 수 있어야 한다. 이런 삶을 살아갈 때 자칫 추상적일 수 있었던 '존중'과 '소통'이라는 가치가 선명하게 되살아난다. 나는 이것이 진짜 '자기답게' 살아가는 것임을 다시 한 번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좋은 삶이란 어떤 것일까? 꼭 크고 대단한 성공과 성취를 거두는 삶이어야 할까? 누군가에게는 그것 자체가 가치있는 삶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이 날 만난 사람들은 조금 다른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매일 조금씩 변화하는 삶, 자신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에 열중하는 삶, 어떻게 하면 나답게 살아갈 수 있을지 고민하는 삶, 그런 사람들을 함께 만나 에너지를 주고 받는 삶... 나는 그런 삶의 원형들을 매일 만나며 그 다음 날 쓸 글감들을 마련한다. 그래서 지금이 좋다. 이 순간들이 소중하다. 내게 중요한 '소통'이란 가치도 이런 방식으로 현실이 된다. 확신을 가지고 글을 쓰고 말로 전할 수 있다. 이 모든 설명을 '쓰닮쓰담'을 함께 하고 있는 김주미 대표님이 해주었다. 나는 이 말을 오래도록 기억하기로 했다. 자기답게 살아가는 사람이 아니면 결코 할 수 없는 말이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내가 결정한 단어의 정의가 내 삶의 질을 결정한다."
* 이 멋진 '스몰 스텝' 모임을 함께 하고 싶으시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