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 입이 방정이다. 글쓰기가 쉽다고 말하자마자 다시 글쓰기가 어려워졌다. 80일 간의 세계일주는 아니어도, 비슷한 기간 동안 매일 글을 썼다. 점차 사람들이 알아보기 시작한다. 대단하다며 추켜세운다. 그래서 주제 넘게도 이렇게 말한 적도 있었다. 글쓰기가 가장 쉬웠다고. 그런데 바로 그 다음 날 글감이 떠오르지 않았다. 하루 종일 고민을 했다. 그래도 명쾌한 글감은 떠오르지 않았다. 오늘 새벽도 그랬다. 모기 소리에 잠을 깨면서 이런 생각부터 했다. 새벽의 모기 사냥... 이런 제목의 글을 써보면 어떨까 하고. 딱히 어떤 주제로 쓸 것인지조차 생각하지 않은 채로. 결국 모기는 잡았다. 그리고 이렇게 책상 앞에 앉았다. 광활한 모래 사막에 위에 홀로 선 기분이다. 무얼 쓸지 고민하는 나를 쓰기로 했다.
대부분의 작가들은 영감을 기다리지 않는다. 그런 일이 없지는 않다. 하지만 '기적'처럼 일어난다. 하지만 첫 책의 엄청난 성공은 두 번째 책을 가로막는 가장 큰 장애물이 될 뿐이다. 내가 아는 작가들은 '매일' 글을 쓰는 사람이다. 공무원처럼 의무적으로 시간을 지켜 글을 쓰는 사람들이다. 끼니가 되면 밥을 챙겨 먹듯이, 해가 뜨면 눈을 뜨고 밤이 오면 잠을 자는 것처럼, 그렇게 매일 시간을 지켜 글을 쓰는 사람들이 많았다. 하물며 프로들도 그렇게 글을 쓰고 있을진대, 글쓰기가 가장 쉬웠다니, 재미있었다니, 천인공노할 일이다. 그래서 오늘 새벽 그 죗값?을 치르고 있다. 무얼 써야 할 지 도무지 생각나지 않았다. 떠오르는 건 쓰레기 같은 생각들이었다. 나는 그렇게 다시 겸손해지고 있는 중이다.
그래도 나는 글쓰기가 좋다. 하루를 시작하는 의식으로 이만한 것을 찾지 못했다. 매일 글을 써보면 알게 된다. 글감이 부족할 일은 없다는 것을. 하지만 그 글감에 의미를 부여하는 일은 또 다른 일임을. 한 인간의 '다름'을 결정하는 것은 '자극'에 따른 '반응'이다. 같은 일을 겪고도 사람들은 각기 다르게 반응하곤 한다. 똑같은 힘든 일을 겪어도 주저 앉는 사람과, 더 힘차게 달리려고 신발끈을 고쳐매는 사람으로 나뉘게 마련이다. 매일 글을 쓰면 알게 된다. 모든 만남은, 일상의 크고 작은 일들은, 그것을 해석하는 사람에 의해 전혀 다른 의미를 가지게 된다는 사실을. 이 새벽에 한 편의 글을 쓴다. 하루를 돌아본다. 글쓰는 나를 지켜본다. 마음이 가라앉는다. 꼭 필요한 생각들만 남는다. 나는 그제야 글쓰기의 이유를 발견한다. 잘 쓰지 않아도 된다. 매일 쓰는 것으로도 충분하다. 글을 쓰는 지금의 나는 살아 있다. 하루를 살아갈 용기를 얻는다. 나는 그것으로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