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리사의 꿈

수서행 마지막 열차는 10시 47분에 있었다. 천안시 외곽에 위치한 어느 식당 본사에서 길을 나섰다. 새로운 프로젝트를 도모하던 분들과 함께 멋진 식사와 담소를 나누던 참이었다. 마침 술을 하지 않으시던 요리사분이 데려다주겠다며 함께 차에 올랐다. 두 번째 만남이었지만 눈 인사만 나눈 사이였다. 그런 그가 다짜고짜 자신의 꿈을 이야기했다. 그 오랜 회의에도 이렇다할 말을 하지 않으시던 분이라 반갑고 흥미로웠다. 그의 꿈은 이랬다. 돈을 벌어 자신의 요트를 산 후에, 정말 좋아하는 사람들 앞에서 참치 한 마리를 해체하며 파티를 즐기고 싶다고 했다. 한 번도 타보지 않은 사진 속 요트 위에 오른 내 모습이 연상되었다. 마침 참치 머리를 해체하는 진귀한 광경을 보고 온 후라 그 상상은 더욱 생생했다. 그러나 그는 꿈을 바꾸었다고 했다. '언젠가'가 아닌 '조만간' 그 꿈을 실행해보고 싶다 했다. 마음만 먹고 주저하느라 꿈을 놓치지 않겠다는 간절한 바램처럼 들렸다. 이 날 저녁의 만찬은 요리사의 꿈을 실행하기 위한 예행연습이었는지 모른다.



스티브 잡스는 말년에 요트 하나를 주문했다. 온갖 최첨단 기술이 접목된 최고의 요트였다. 하지만 그는 결국 요트의 완성을 보지 못했다. 우리 모두가 알다시피 생각보다 너무 일찍 세상을 떠났다. 그가 짓던 새로운 애플 사옥에도 그는 갈 수 없었다. 그 많은 돈으로 살 수 없었던 그의 소중한 꿈이 아침 이슬처럼 흔적도 없이 사라진 것이다. 나는 이 요리사분의 마음을, 각오를 그래서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다. 그래서 천안아산역으로 가던 길의 그 짧은 대화는 즐겁고 행복했다. 그 자리에 나도 초대를 받고 싶었다. 가능하면 가족들도 함께하고 싶었다. 그의 생생하고 소중한 꿈에 나도 동참하고 싶었다. 그리고 돌아오는 길에 곰곰히 생각해 보았다. 내가 바라는 꿈은 어떤 것인가, 요리사의 꿈처럼 구체적인가, 혼자만이 아닌 누군가와 함께 하는 꿈인가, 언젠가가 아닌 조만간, 어쩌면 내일이라도 이룰 수 있는 그런 꿈일 수는 없는가.



분당으로 올라오니 택시가 잡히지 않았다. 분당에는 온통 서울 택시들만 가득했다. 카카오 택시도 소용없었다. 부득불 전화를 걸어 와이프를 깨웠다. 별 말 없이 차를 몰고 나온 와이프의 차에 지친 몸을 실었다. 그 날의 식사가 떠오른 건 바로 그때였다. 멀고 먼 어느 날에 대단한 무엇을 주고 싶어하는 건 스티브 잡스의 꿈이다. 당장 내일이라도 가족과 함께 즐길 수 있는 식사는 요리사의 꿈이다. 삶을 관통하는 한 가지 키워드는 고통이다. 누구에게도 예외는 없다. 그 고통을 직시하는 사람만이 비로소 진정한 행복을 제대로 말할 수 있다. 매일 바쁘다는 이유로 유예된 꿈을 끌어오고 싶었다. 나 혼자만의 공상이 아닌 함께 하는 꿈으로 바꿀 필요가 있었다. 행복이 강도가 아니라 빈도라면, 나의 꿈은 돈을 벌고 안정을 찾은 후에야 얻을 수 있는 어려운 것만은 아니지 않을까. 수 년간 실천해온 스몰 스텝이 그랬던 것처럼, 이제 나도 요리사가 되어 가족과 지인들을 위한 참치 해체 쇼를 준비해야겠다. 그것도 먼 미래가 아닌 내일 혹은 이번 주말에. 최근에 알게 된 고깃집 리스트를 정리해보아야겠다. 좀 비싼 집이라도 함께 가야겠다. 나는 그렇게 요리사의 꿈을 안고 집으로 돌아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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