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주 한 캔으로 끝내는 하루

아침부터 몸살 기운이 있었다. 부랴부랴 아침 일정을 취소하고 누워 있자니 묘한 기분이 들었다. 110일간 달려온 글쓰기 여정이 무엇 때문이었나 다시 한 번 되묻게 된다. 쓰기 위해서 썼던가? 쓰다보니 써졌던가? 정말로 즐겁고 힘이 되어서 썼던 것인가? 컨디션이 조금 나쁘다고 오만 가지 생각이 드는데 나 스스로 생각해보아도 정말 신기했다. 하루쯤 생각을 정리하고 싶었지만 약속이 줄줄이다. 오후에는 이전 회사에서 짧은 기간 함께 일했던 인턴을 만났다. 스포츠 마케팅을을 꿈꾸던 그는 취업 준비생들을 위한 교육 기획일을 하고 있는 중이다.


그가 대뜸 자신의 '자기다움'이 뭔지 여전히 모르겠다는 어려운 주제를 꺼내 놓는다. 함께 일할 때 열띤 토론을 벌였던 주제이기도 하다. 나는 그가 스포츠 마케팅 자체를 좋아한 것인지, 아니면 그 뒤에 숨은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는 과정 자체에 끌린 것은 아닌지 그에게 되물었다. 어쩌면 지금의 일에서 성과를 내는건 후자 쪽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그러자 그가 뭔가 깨달았다는 듯 헛웃음을 짓는다. 우리는 취업 준비생을 위한 스몰 스텝 프로그램을 함께 기획해보기로 했다. 그를 떠나보내고 다지 분주하게 저녁에 있을 강의를 준비했다. 바로 이번에 출간한 '프랜차이즈를 이기는 스몰 브랜드의 힘'이라는 주제로 한 강의였다.



아담한 강의장이 마음에 쏙 들었다. 십여 명 정도의 신청자 중에는 익숙한 얼굴이 반 정도였다. 스몰 브랜드에 관한 외부 강의는 사실상 처음이라도 할 정도로 경험이 없었다. 하지만 왠지 모르게 마음이 편안했다. 책을 쓰기 위해 수백 번은 고민했던 주제다. 지난 3년 간 열심히 작은 브랜드를 찾아다녔다. 그 브랜드들에 대한 확신이 있었다. 브랜드를 쉽게 말할 자신도 있었다. 무려 10년 이상 고민하고 연구하고 글로 써왔던 주제다. 게다가 직접 가보고 실제로 경험한 이야기들이다.


무엇보다 나 자신이 하나의 브랜드가 되기 위해 고군분투했던 시간들이 있었다. 시계를 보지 않고 강의했다. 강의 주체인 출판사 편집자에게 말했던 대로 정확히 1시간 반 만에 강의는 끝이 났다. 그리고 경험으로 알 수 있었다. 그 짧지 않은 시간 청중의 눈빛은 내 시선을 떠나지 않았다. 브랜드란 어려운 주제를 재미있게 들어주는 그들을 보니 더욱 신이 났다. 강연 후의 날카로운 질문들도 인상 깊었다. 브랜드란 주제가 이렇게 사람들에게 재미있게 받아들여질 수 있다는게 신기했다. 나는 그 짧은 시간 동안 또 한 번 나다워지고 있었다.



돌아오는 길 나는 나도 모르고 휘파람을 불고 있었다. 물론 이곳에 옮길 수 없는 어려운 일들이 있었다. 컨디션만으로 따지만 올해 가운데 최악의 하루였다. 그런데 사람을 만나고 강연을 하면서 나는 다시 소나기를 맞은 여름날의 풀처럼 다시 한 번 일어설 수 있었다. 몸살 기운을 이겨내는 건 누워 쉬는 것만이 아니다. 나 자신의 한계에 다시 한 번 도전해보고 내게 힘을 주는 것들을 찾아나서야 한다. 어쩌면 그건 몸살 기운이 아니라 내 몸이 필요로 하는 에너지가 고갈되었음을 알리는 신호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모임이 커지고 출간하는 책의 수가 늘어날 수록 다양한 도전을 받는다. 당신은 말한 대로 살고 있는가, 책에 쓴 대로 실천하는가, 이런 질문을 받는 경우가 점점 늘어만 간다. 하지만 그건 나 스스로가 나에게 가장 많이 던지는 질문이다. 하지만 오늘의 나는 적어도 그 질문들에 대해 하루의 삶으로 온전히 대답할 수 있었다. 대화로, 강의로, 톡으로, 전화로... 나다움을 묻는 사람들의 의심과 도전들에 답해야 하는 하루였다. 적어도 나는 솔직하게 답했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리고 오늘이 가기 전에 쓰는 이 글도 그에 대한 대답이다. 나는 앞으로도 나답게 살아갈 것이다. 성장하고 경험할 것이다. 가능하면 그 일을 함께 해갈 것이다. 내가 오늘 그러했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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