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확히 130일째, 천 일의 글쓰기를 선언한지 넉 달 하고도 열흘이 지났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 하지만 이 글쓰기 여정을 시작한 사람들이 나 말고도 적지 않다. 무려 일흔 명의 사람들이 '황홀한 글감옥'이란 이름으로 모여 함께 글을 쓴다. 하지만 문득 '함께' 쓴다라는 말이 조금 부끄럽게 느껴진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새벽마다 '내 글'을 쓰느라 그들의 글을 읽지 못해서다. 어제 글을 쓴 사람의 수는 모두 서른 세명, 오늘은 글도 잘 안써지고 해서 그들의 글을 모두 한땀 한땀 읽었다. 지난 송년회로 얼굴을 알게 된 사람들도 많아서인지 왠지 친근한 글들이었다. 책으로 치자면 33페이지나 되는 글들을 한 시간에 걸쳐 읽는다. 그들의 사는 모습이 자연스럽게 그려진다. 웃음과 감동의 글도 있고 정보로 가득한, 혹은 일상의 조각들이 민낯을 하고 내 눈에 들어온다. 댓글까지는 아니더라도 틈틈이 '좋아요'를 누른다. 대부분 네이버 블로그이고 간간이 브런치가 보인다. 그러면서 다시 한 번 드는 의문 한 가지, 왜 이들은 이렇게 기어이 글이란 것을 쓰려고 하는 것일까?
"요즘엔 아침부터 오늘의 글쓰기는 무얼 할까?
생각하다 보면 어떤 일이나 사물에 관심이 많아지고
생각도 깊어지는 것 같다"
내년이면 정년 퇴임을 앞둔 형순님의 글을 읽다가 문득 그 이유 한 가지를 발견할 수 있었다.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 지방 어딘가에서 올라오신 형순님은 내년이면 정년을 맞는 학교 선생님이셨다. 넘치는 에너지와 함께 통크게도 백화점 상품권을 선물로 들고 오신 멋진 누님(이렇게 부르는 걸 용서하세요), 이 분의 말대로 글쓰기의 가장 큰 유익 중 하나는 주변의 사람이나 사물, 사건을 전과는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게 된다는 것이다. 글을 쓰지 않았으면 그냥 흘려버릴 일들을 하나씩 떠올리게 된다. 그리고 그것이 가진 의미를 입안의 사탕을 녹이듯 음미하게 된다. 삶을 제대로 살아간다는 것은 그런 것이 아닐지. 평소라면 지나쳤을 일들이 내 안에서 재해석의 과정을 거친다. 그 사람은 왜 그랬을까? 그 일은 어떻게 해석해야 하지? 하다못해 물건을 하나 사도 그건 정말 필요했을까를 곱씹어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비로소 깨닫게 된다. 살아온 어떤 날도 나름의 의미와 가치로 가득하다는 것을.
서른 세명의 글을 모두 읽다보면 나 역시 그들처럼 더 열심히 살고 싶어진다. 말그미님이 끓인 팥죽이 먹고 싶어진다. 액터정님이 강추하는 양꼬치집을 찾아가고 싶어진다. 온맘님의 따님이 만든 김치찜은 대체 어떤 맛일지 궁금해지고, 천 일의 글쓰기를 막 시작한 하소비님을 보며 안쓰러운? 마음을 가지게 된다. 효원님이 집어든 '죽은 시인의 사회'를 나 역시 다시 보고 싶어진다. 빨래를 개다 말고 글쓰는 선진님에 깊이 공감하다가도, 좋은 아빠가 되기 위해 매일 브런치를 쓰는 성권님의 열심에 괜히 부끄러워진다. 하루 아침에 33개의 삶을 함께 살아낸 기분이라면 지나친 비약일까? 이번 크리스마스는 어머니와 함께 하겠다는 선아님의 글을 보고 오늘이 이브임을 다시 한 번 깨닫게 된다. 밀린 일이나 하는 날로 생각했던 내가 새삼 부끄러워지는 오늘이다. 맥도날드에서 환하게 웃고 있는 은실님의 아이들을 보며 내일 하루는 맛있는 걸 먹으러 가야지 하는 생각에 주섬 주섬 검색을 시작한다. 어디서 뭘 먹으면 와이프와 아이들이 행복해할까? 내일은 이들의 행복한 크리스마스로 황홀한 글감옥이 더욱 황홀해지기를. 그리고 당신을 위해 던지는 나지막한 인사 한 마디.
"메리 크리스마스,
세상에 다시 없을 만큼 즐겁고 행복한 성탄 되세요~!"
* 매일 매일 함께 글쓰는 '황홀한 글감옥'으로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