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이프가 말했다. 3분에 한 번은 빵빵 터져야 귀를 기울일 거라 했다. 재미 없으면 외면할 거라 했다. 따로 준비하지 않으면 힘들거라 했다. 하지만 내 생각은 달랐다. 어차피 우리가 알아야 할 모든 것은 중학교 때 배우지 않았던가. 그래서 강의 초반 나는 아이들에게 어른들에게 했던 내용과 똑같이 말할 거라 했다. 더하지도 빼지도 않을 거라 했다. 실제로 강의안은 토씨 하나 고치지 않았다. 이 정도는 충분히 이해할거라 믿었다. 스무 개의 눈이 반짝이며 내 말에 귀를 기울인다. 분당 근처 미금역에서도 차로 10분은 달려야 하는 거리, 그것도 산 속 깊은 곳에 위치한 이우중학교를 찾은 날은 내 맘도 모르고 햇살이 화사하게 빛나던 날이었다. 그래도 불안했던지 나는 페라로 로쉐 몇 개를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챙겨갔다. 다행히? 절반도 주지 못하고 도로 들고 왔다. 나눠줄 시간이 없을 만큼 열심히 들어주어서다. 세 번째 강연을 마친 둘째 날, 나는 집으로 돌아와 쓰러지듯 잠이 들었다.
왜 우리에겐 중학생이 무섭다는 편견이 생겨났을까? 나름의 이유는 있을 것이다. 아직은 철부지 같아 어른 무서운 줄 아는 초등학생, 이제는 완전히 자라서 어른을 대하는 기본적인 예의는 지키려는 고등학생 사이에서, 중학생은 어쩌면 질풍노도의 감정을 무기로 어쩌면 이런 편견을 만들어냈을지 모른다. 하지만 내가 만난 중학생들은 진지했다. 가끔 뜬금없는 대답을 해서 놀라긴 했지만 귀여운 수준이었다. 이우중학교라는 특수성도 한몫 했을 것이다. 주변에서는 아이들 잘 가르치기로, 교육 철학이 바로 선 학교로 이미 유명한 곳이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그 모든 선입견을 버리고 '사람 대 사람'으로 이야기하자고 제안했다. 다행히 그 전략은 통했던 듯 하다. 가르치지 않고 대화하려 했다. 말하기보다 들으려 했다. 질문을 해도 답하려 하지 않는 분위기 만큼 강연자를 당혹케 하는 장면이 또 있을까? 하지만 아이들은 답하기 보다 질문해주었다. 무려 1시간 40여 분 동안 쉬는 시간도 건너 뛰고 강연이 이어질 때도 있었다. 그들은 내 신입견 속 중학생들이 결코 아니었다.
첫 날의 강연을 들은 학생 중 하나는 방학 동안 지킬 스몰 스텝 10여 개를 빼곡히 적어 왔다. 강연자인 내게 직접 말해주고 싶다며 다른 반 교실을 직접 찾아왔다. 수화를 배우는 혜랑이는 책을 가져오지 않았다며 종이에 싸인을 받아갔다. 같은 학교에 있는 청각 장애인 친구에게 욕을 배우기 위해 시작한 수화라고 했다. 소통을 위해 배우냐고 물으니 단호하게 아니라고 말했다. 성취감 때문이라고 했다. 그 솔직함이 내 맘을 사로 잡았다. 자신의 욕구에 충실하고 목표가 선명한 이 친구는 미래에 어떤 사람으로 자라 있을까? 물론 복도에서 만난 친구들은 요란스럽고 들뜬 천방지축 같은 아이의 모습 그대로였다. 하지만 강연을 듣는 자세와 질문의 내용은 여느 어른의 모습과도 다르지 않았다. 세 번째 강연 마지막 10분은 마치 물아일체가 이건가 싶을 만큼의 엄청난 몰입도를 경험할 수 있었다. 중2를 대상으로 한 강연이 제일 어렵다는 말은 대체 누가 맨 먼저 말한 것일까.
물론 우리 집에도 중학생이 있다. 걸그룹 여자친구를 좋아하고 성우를 꿈꾸는 아이다. 집에서 돌아오면 언제나 거실에서 핸드폰을 들고 정체를 알 수 없는 춤을 추고 있다. 친구랑 새벽까지 보이스톡을 하고 숙제는 매번 내가 돌아오는 11시쯤 시작한다. 선생님에게 넌지시 이런 말을 했더니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며 이렇게 말씀하신다. 학교에서이 아이와 집에서의 아이는 완전히 다른 것이라고. 문득 몇 번은 아주 어른스러운 이야기를 해서 놀랐던 경험이 새삼 떠올라 고개를 끄덕였다. 아이들은 생각이 많다. 이미 초등학생 때 세 권의 교환 일기를 써본 경험이 있는 나다. 그때의 딸은 이미 노트 한 페이지를 빼곡히 채울만큼 고민도 많고 생각도 많은 아이였다. 그때의 경험을 이야기해주었더니 아이들이 어찌나 공감하던지 한참을 진도를 나가지 못하고 '그땐 심각했어요'를 연발할 수 밖에 없었다. 생각이 없어보인다고 실제로 그런 것이 아니다. 나도 중학생 시절 집과는 반대 방향의 버스를 타고 철학 책을 읽지 않았던가. 지금 생각해보면 웃을 만한 일들이 대부분이지만 말이다.
크리스마스 이브였다. 강연을 마치고 나오는 날은 미세 먼지도 심한 날이었다. 그래도 마음 만큼은 더할 나위 없이 상쾌했다. 대한민국의 모든 중학생들이 이 날 만난 학생들처럼 진지하고 열린 친구들일지는 모를 일이다. 그래도 한 가닥 희망은 얻고 간다. 내가 말하는 스몰 스텝이 아이들에게도 필요한 메시지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어서다. 공감과 소통의 폭이 이만큼 넓어졌다. 자신감도 생겼다. 세상 어디에서도 받을 수 없은 크리스마스 선물인 셈이다. 그리고 나도 아이들에게 '스몰 스텝'을 선물했다. 몇 명이나 받아주었을지 모르지만, 그래도 내겐 행복한 이틀이었다. 돌아오는 발걸음이 한없이 가벼운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