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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 도구의 끝판왕, 스크리브너

툴툴(Tool)대는 글쓰기 #04.

글 쓰는 툴은 워드나 아래한글이 전부인줄 아는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이 두 프로그램을 거의 쓰지 않는다. 모든 글을 다 완성한 후 원고를 보낼 때가 되어서야 비로소 워드 작업을 시작하곤 한다. 물론 짧은 글을 쓸 때는 그 어떤 프로그램이건 큰 상관이 없다. 문제는 책이나 긴 글을 쓸 때다. 일필휘지로 한 편의 글을 완성하는 천재나 달인이 아니라면, 우리가 가장 많이 하는 작업은 썼다가 지우고 위치를 옮기는 것이다. 어제 썼던 글을 이어 쓰려면 좋든 싫든 앞의 글을 다시 모두 읽어야 한다. 그래야 그 흐름을 이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면 매끄럽지 않은 구성이 눈에 띄기 마련이고, 그 때는 이 단락 저 단락을 오가며 위치를 바꿀 필요가 필연적으로 생기게 된다. 이 때 워드 프로그램을 쓰는 것은 거의 미친 짓에 가깝다. 많게는 수 백 페이지 가까운 글을 한 눈에 보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화면을 스크롤하다가 하루가 다 간다. 이 단락을 카피해서 다른 곳으로 옮기다가 길을 잃고 헤매기도 한다. 그때 필요한 것이 바로 스크리브너와 같은 프로그램이다.



스크리브너의 화면 구성은 일반적인 책의 목차 구성을 닮아 있다. 즉 스크롤 없이 자유롭게 글의 부분 부분을 왕래하면서 구성을 바꿀 수 있다. 이 프로그램의 숨은 기능은 무궁무진하지만, 나는 지금까지 세 권의 내 책을 포함해 다른 회사의 작업까지 모두 이 프로그램을 사용해왔다. 한 편의 짧은 칼럼이 아닌 책과 같이 긴 글을 쓸 때는 자유로운 글의 이동이 필수적이다. 수시로 구성을 바꿔야 할 일이 생기기 때문이다. 스크리브너는 이런 작업을 할 때 가장 훌륭한 도구가 된다. 1부 2장의 글을 3부 4장으로 옮기거나, 5부 2장의 글을 2부 3장으로 옮길 일이 있다고 가정해보자. 워드 프로그램을 사용한다면 수없이 많은 스크롤로 한 후 복사하기와 붙여 넣기를 반복해야 할 것이다. 모니터가 크면 화면을 분할해 오갈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작업도 원하는 단락을 찾기가 불편하다는 점에서는 크게 편하지 않았다. 하지만 스크리브너는 드래그 앤 드롭만으로 한 번에 이 작업을 끝낼 수 있다.



스크리브너의 장점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나는 한 권의 책을 쓰기 위해 필요한 자료를 모두 이 곳에 저장해두곤 한다(드래프트 기능). 한 번 지웠던 글도 휴지통에 보관되기 때문에 언제든 다시 소환할 수 있다. 코르크 모드로 변환하면 수십, 수백 개의 메모를 모아놓은 형태로 글감을 확인해볼 수도 있다. 그 중에서도 내가 가장 좋아하는 기능은 바로 '합성 모드 입력하기'다. 글을 쓰다보면 화면 위의 다른 웹페이지나 프로그램으로 방해받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 때 이 기능을 사용하면 드넓은 모니터를 까많게 채운 후 글쓰기 페이지만 덩그라니 띄우게 된다. 다른 데 신경 쓰지 말고 글만 쓰라는 의미이다. 내가 브런치를 좋아하는 이유도 글 쓰는 화면에 군더더기가 없기 때문이다. 사용 가능한 온갖 기능을 메뉴로 띄워놓은 화면을 보면(사실 글 쓰기 싫은 이유는 원래 백 만가지가 넘기 마련이지만) 글을 쓰고 싶은 마음이 곧잘 사라지곤 한다. 하지만 스크리브너의 합성 모드에서는 오직 글 쓰기에만 집중할 수 있다. 마치 헤드셋이나 이어폰의 '노이즈 캔슬링' 기능처럼 말이다.



도구가 글을 대신 써주진 않는다. 하지만 글 쓰는 이의 디테일한 불편을 이해한 에디팅 프로그램을 만나면 그렇게 반가울 수 없다. 나는 글쓰기에 관한 한 투자를 아끼지 않는다. 그래봐야 키보드나 모니터, 프로그램 같은 소소한 씀씀이에 불과하지만 누군가는 옷을 수집하고 차를 바꿀 때 나는 세상의 수많은 글쓰기 프로그램을 직접 사서 써보곤 한다. 그리고 이 모든 글쓰기 툴 중의 끝판왕이 스크리브너라고 생각한다. 실제로 이 프로그램은 미국의 작가들이 가장 많이 애용하는 프로그램이기도 하다. 하지만 한 가지 단점이 있다면 가격이 비싸다는 것이다. 그럴 때는 '율리시스'를 써보는 것도 괜찮은 선택이다. 화면 UI는 훨씬 깔끔하고 단순하지만 꼭 필요한 기능은 거의 모두 들어가 있다. 좋은 도구가 좋은 글을 대신 써주진 않는다. 하지만 글쓰기의 어려운 과정의 동반자가 똑똑하다면 그것만큼 반가운 일도 없다. 스크리브너의 다양한 추가 기능은 다음 기회에 다시 한 번 정리해볼 까 한다. 그러나 글을 쓰고 이동하는 기본 기능만 활용해도 투자 가치는 충분할 것이다. 이제 남은 일은 한 가지, 글감을 수집하고 글을 쓰는 것이다. 미안하지만 이 작업을 대신해주는 프로그램은, 아직까지 없다.




* 스크리브너를 써보고 싶으시다면...


* 율리시스도 함께 써보고 싶으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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