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싶은 것

다큐는 나의 힘 #01.

초등학교 무렵이었나? 어느 날 할머니가 아버지 몰래 나를 방안으로 조심스럽게 불러들이신 적이 있었다. 할머니는 한참을 망설이시다 이윽고 결심한 듯, 그리곤 나만 알고 있으라며 오랫동안 가슴에 묻어두신 비밀스런 이야기 하나를 꺼내놓으셨다.


“사실 너한테도 고모가 있었단다. 참한 고모가...”


아버지에겐 두 분의 동생이 있었고 큰 아버지 되시는 형님은 일찍 돌아가신 걸로 알고 있었다. 하지만 고모가 있다는 사실을 나는 그날 처음 알았다. 할머니의 표현에 의하면 고모는(그러니까 딸은) 매우 예뻤고, '몹쓸 일'을 당하신 후 스스로 세상을 떠나셨다고 했다. 그날, 얼마나 자세한 얘기를 들었는지 나는 기억할 수 없다. 아마도 그 '몹쓸 일'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는 훗날 다른 친척 누군가로부터 따로 들었던 것 같다.


하지만 왜 그렇게 어린 나에게 할머니가 굳이 그 이야기를 꺼내셨는지, 그것도 무언가에 쫓기듯 조심스럽게 속삭이며 이야기하셨는지를 깨닫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가슴에 묻은 예쁜 딸의 존재, 아마도 할머니는 그 존재를 아직은 어린 손자의 기억을 통해 확인하고 싶으셨는지 모르겠다. 그렇게라도 얘기하지 않으면 바람처럼 그 기억들이 흩어져버릴까봐. 그리고 이제부터 이야기하려고 하는 영화에도 그 '몹쓸 일'을 겪은 두 사람, 아니 두 여자의 이야기가 등장한다.


capture_28.jpg 다큐 '그리고 싶은 것' 캡쳐화면


다큐멘터리 영화 ‘그리고 싶은 것'은 일제 시절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인 심달연 할머니의 이야기를 그림책으로 완성해가는 어느 여류작가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하지만 이 그림책에는 배경이 되는 이야기가 있다.


2007년 일본의 그림책 작가들은 한국과 중국의 작가들에게 ‘평화'에 관한 그림책을 함께 출간하자고 제안한다. 그 작가들 중 한 명이 바로 이 영화의 주인공 권윤덕 작가다. 그러나 순조롭게 진행될 줄 알았던 이 ‘평화로운' 프로젝트는 바로 권 작가에 의해 암초에 걸리고 만다. 감추고 싶은 과거를 낱낱이 끌어낸 권 작가의 그림책 발간에 일본 측 출판사가 난색을 표해서였다.


물론 이들이 그 내용에 동의하지 않았던 것은 결코 아니다. 그림책을 읽는 대상이 성폭력이라는 주제를 받아들이기 힘든 어린아이들이라는 사실, 거기다 한국과 일본의 정치적 긴장감이 높아지면서 일본 우익의 극렬한 반대를 예상한 출판사의 신중함이 더해졌기 때문이다. 권윤덕 작가의 책 ‘꽃할머니'는 8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출간되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그 사이, 책의 주인공인 심달연 할머니는 세상을 떠나신다.


capture_27.jpg 다큐 '그리고 싶은 것' 캡쳐화면


우리는 안다. 아주 오래전 이 땅의 꽃다운 나이의 소녀들이 전쟁 속 성폭력의 피해자로 살았다는 사실, 그 아픈 경험을 고스란히 떠안고 살아가시는 할머니들이 아직도 마흔일곱 분이나 살아계시다는 사실, 그러나 이 사실은 일본 측의 외면과 부인으로 반쪽짜리 역사로 머물러 있다.


하지만 또한 우리는 모른다. 그때 그 할머니들의 삶이 그 일 이후로 어떻게 바뀌었는지를. 위로받고 사랑받아야 할 고국으로부터 더 큰 상처를 받았다는 사실, 그리고 그 비극이 그 후로도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는 사실,

한때 피해자였던 우리가 베트남 전쟁에서는 역으로 가해자의 위치에 있었다는 사실을. 전쟁이 사라지고 평화가 오기 전까지는 이러한 고통과 아픔의 역사가 끊임없이 되풀이될 수 있다는 사실을.


작가는 이 메시지를 전하고 싶어 하지만 다큐가 끝날 때까지 일본 출간의 꿈은 지리한 희망고문처럼 미뤄지고 또 미뤄진다. 다큐 속 63이라는 숫자가 47(지금은 44이다)이 될 때까지, 아픈 과거를 고스란히 세상에 드러낸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 중 무려 열여섯 분이 가슴에 한을 품고 돌아가실 때까지.


capture_2.jpg 다큐 '그리고 싶은 것' 캡쳐화면


그런데 다큐의 중반부, 아리따운 여인, 한없이 귀여운 꼬마의 예쁜 사진이 느닷없이 등장한다. 잠깐의 시간이 흐른 후에야 알게 된다. 다큐의 주인공 권윤덕 작가의 젊은 시절, 어린 시절의 사진이었음을. 그리고 권 작가는 고백한다. 자신 역시 또 한 명의 성폭력 피해자였음을. 지우고 싶은 과거를 이 작업을 통해 고스란히 되짚고 있었다는 사실을. 그래서 더더욱 자신처럼 상처받은 이들을 위해서라도 이 작업을 마무리지어야 하는 운명에 접하고 있음을. 이 그림책이 단순히 일본과 일본군의 조직적인 만행이었음을 고발하는데 머무르지 않고

더 큰 비극을 막기 위한 성찰과 위로와 치유를 위한 디딤돌이 되어야 하는 것임을.


capture_6.jpg 다큐 '그리고 싶은 것' 캡쳐화면


다큐는 할머니를 만나러 가는 권 작가의 창가 모습으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그리고 장례식을 치르고 쓸쓸히 집으로 돌아가는 작가의 뒷모습을 이야기의 끝을 맺는다. 그렇게 만났던 첫 장면에서 할머니는 쇠한 자신의 육체를 이야기한다. 마지막 장면에서 할머니는 한 줌의 재로 세상에 남는다.


하지만 할머니는 세상에 자신의 작은 흔적을 남겼다. 예쁘게 핀 꽃을 한지에 넣어 말린 압화, 즉 꽃누르미 작품들이다. 할머니는 그 꽃을 한 땀 한 땀 떼어 말리며 심리치료를 받으셨다고 한다. 그래서 꽃은 할머니의 쇠해가는 몸, 늘어가는 주름과는 상관없이 사랑스럽고 아름다우며 활기차기까지 하다.


과연 권 작가가 그리고 싶은 것은 무엇이었을까? 할머니가 그리고 싶은 것은 또 무엇이었을까? 마치 나의 할머니가 굳이 어린 나에게 고모 이야기를 담담히 하실 때처럼, 권 작가가 어렵게 자신의 과거를 털어놓을 때처럼, 자신의 아픈 과거를 누군가가 기억해주기를. 그래서 결코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 때문은 아니었을까? 심달연 할머니는 아프지 말고 오래오래 사셔라는 원예치료사에게 활짝 웃으시며 이렇게 말하셨다고 한다.


"사람들이 꽃 보고 좋아하듯이 그렇게 좋아하며 살았으면 좋겠다."


그렇게 할머니는 나비가 되어 날아가셨다. '그리고 싶은 것'을 여전히 그대로 남겨두신 채.


capture_26.jpg 다큐 '그리고 싶은 것' 캡쳐화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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