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해녀의 부엌'에선 무엇을 팔고 있을까?

가족과 함께 제주에 간 적이 있었습니다. 와이프는 손가락 품을 팔아 제주의 번화가?에서 훌쩍 벗어난 바닷가 팬션을 미리 예약해 두었었죠. 통유리로 된 2층 집은 욕조에서도 바다를 바라볼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주변엔 그야말로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편의점은 고사하고 구멍 가게 하나 없는 엄혹한 현실을 마주한채 식당을 찾아 해변가를 정처없이 걸었던 기억이 지금도 새롭습니다(물론 그 다음 날부터는 차로 움직였지만요). 그러다가 우연히 작은 가건물 같은 식당을 하나 만났습니다. 그리고 해산물과 칼국수가 반반인 엄청난 메뉴를 먹었습니다. 제주 여행 중 많은 것을 먹었지만 그 칼국수 맛 만큼은 잊을 수가 없네요. 그때만 해도 어렸던 아이들과 달리 와이프는 역시 그 맛을 지금도 기억한다고 말하곤 합니다. 우리는 그날 진짜 제주를 만났던 셈입니다.



요즘 제주도에서 핫하다는 '해녀의 부엌' 이야기를 들어보셨나요? 금토일 주말에만 운영되는 예약제의 다이닝 식당이라고 하네요. 한예종 출신의 대표가 공연과 식사를 함께 제공하는 곳으로 유명세를 타고 있는 중입니다. 이곳 제주 종다리 출신의 대표가 판로가 없어 고사되어가는 해녀 문화를 살리기 위해 만들었다고 합니다. 공연은 하루 두 번, 연극을 전공한 대표가 남편을 잃은 해녀의 삶을 보여주는 것으로 시작됩니다. 그리고 극중 실제 인물인 해녀 할머니가 나와 그날 제공되는 제주의 식재료를 소개하는 순서로 이어집니다. 그리고 손님들은 뿔소라, 군소, 톳 등 제주의 식재료로 만들어진 한 끼의 식사를 즐기게 됩니다. 마지막 순서는 Q&A라고 하네요. 식사를 마친 손님들이 궁금한 것을 물으면 해녀들이 직접 이에 대해 답하는 것으로 공연과 식사가 마무리 된다고 합니다. 직접 가보진 않았지만 다양한 사진과 글을 읽는 것만으로도 그 분위기를 조금은 느낄 수 있었습니다. 영리한 브랜드이지 않나요? 그저 제주의 '맛'을 보여주는데 그치지 않고 제주를 '경험'할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을 만들어냈으니까요.



제주를 경험한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요? 일단 이들은 마을에서 버려선 위판장을 공연장으로 골랐습니다. 20년 전 갓 잡아온 생선을 거래했을 위판장을 식당으로 탈바꿈시킨 겁니다. 커다란 식당 벽엔 해녀들이 쓰는 망사리과 태왁이 걸려 있습니다. 해녀들이 추운 몸을 녹이던 불턱을 재현두었습니다. 이곳을 다녀온 사람들이 빠트리지 않고 올린 사진 중엔 뿔소라로 만든 식기 받침대가 빠지지 않더군요. 다들 그 디테일을 칭찬하고 있었습니다. 어찌 보면 인위적으로 보이기도 하지만, 큰 돈 들이지 않고 제주를 표현하기엔 이만한 장치가 없다 싶은 생각도 듭니다. 사실 저 역시도 그랬습니다. 성산 일출봉의 경관 보다는 식당 주인이 몇 마리 끼워 주던 홍게 몇 마리가 더욱 기억에 남으니까요. 이 마을 출신의 대표님이 연극을 통해 해녀들의 삶을 알린다는 것 자체가 하나의 빼어난 스토리임에 분명합니다. 버려졌던 위판장을 식당으로 바꾼 것도 신의 한 수입니다. 20여 년의 제주 역사를 고스란히 재현한 셈이니까요. 이런 공간이라면 평범한 음식도 '제주스럽게' 다가올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입니다.



제주엔 맛집이 많습니다. 현대적인 건물과 인상적인 공간이 적지 않다고 들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정말로 원하는 것은 가장 '제주다운' 시간과 공간을 '경험'하는 것 아닐까요? 제주만 다녀오면 받곤 하는 감귤 초콜릿은 솔직히 너무 식상합니다. 하지만 이곳 '해녀의 부엌'을 다녀오면 할 말이 참 많을 것 같습니다. 해녀들의 삶을 응원한다는 뿌듯함도 잊혀지지 않겠지요. 브랜딩의 관점에서도 흥미롭긴 마찬가지입니다. 제주와 해녀라는 분명한 컨셉은 공연하는 배우들과 식당 종업원들의 의상에서도 선명하게 드러나 있습니다. 게다가 공연을 통해 '해녀들의 삶'이 이야기로 전해지지 강력하지 않을 수 없어요. 여기서 공연은 제주와 해녀라는 컨셉을 전달하는 그들만의 방법입니다. 이것 그저 식당의 분위기와 경치, 맛 만으로는 전달할 수 없는 '제주다움'을 전달하는데 매우 성공하고 있는 듯 해요. 적지 않은 후기와 기사들이 그 점을 입을 모아 이야기하고 있으니까요.



늘 이야기하지만 좋은 브랜드는 그들 나름의 명확한 '컨셉'을 반드시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컨셉을 전달하는 과정에서 진정한 차별화가 시작됩니다. 해녀의 부엌은 그 방법으로 시간과 공간을 녹여낸 '공연'이라는 방법을 찾았습니다. 한예종에서 연극을 전공했다는 대표의 이력이 큰 역할을 했을 것입니다. 결국 자기다운 경쟁력을 통해 또 하나의 제주를 경험하는 해법을 찾아낸 셈이지요. 매우 응원하고 싶은 대목입니다. 이들은 단순히 제주의 음식을 파는데 그치지 않았습니다. 제주에서 일상을 헤쳐나가는 '해녀들의 삶'을 함께 팔고 있었습니다. 그 모든 해법을 자신들이 가진 것에서 찾았다는 것도 흥미롭습니다. 버려진 위판장, 해녀들의 물질 도구, 심지어 여든 살 넘으신 할머니까지 공연에 참여시킨 건 신의 한 수라고 생각합니다. 여러분이 지금 팔고자 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이 질문에 답할 수 없다면 여러분의 가게는, 사업은 아직 조금의 준비가 더 필요한 것인지도 모릅니다. 모쪼록 '해녀의 부엌'이 그 모범적인 사례로 여러분께 기억될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