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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도록 사랑받는 동네 빵집의 비밀, 폴앤폴리나


소설 속 '장발장' 하면 가장 먼저 무슨 생각이 떠오르시나요? 저는 무엇보다 '억울함'이 생각납니다. 고작 빵 하나 훔쳤을 뿐인데, 무려 19년이나 감옥 생활을 해야 했으니까요. 그런데 우연히 그가 훔친 '캉파뉴'라는 이름의 빵에 대해 알고 나서는 생각이 조금 달라졌습니다. '시골'이란 뜻을 가진 이 빵은 알고 보니 서너 명이 배를 채울 수 있을 정도로 엄청나게 큰 빵이더군요. 만드는 과정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반죽을 1차 발효한 뒤 70시간을 저온 숙성하고, 다시 2차 발효를 해서 빵을 구워야 한다는군요. 빵 하나를 완성하는 데 최소 4시간, 보통은 3일이 걸린다고 합니다. 미안하지만 장발장은 그저 빵 '한 조각'을 훔친게 아니었던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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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제대로 된 이 캉파뉴를 만드는 빵집이 서울에도 있었습니다. 바로 '폴앤폴리나'라는 이름의 빵집입니다. 2008년 5월 홍대 앞 골목 15평의 작은 규모로 시작한 이 빵집은 만드는 빵의 종류가 채 스무 가지를 넘지 않습니다. 식빵과 캉파뉴, 치아바타, 바케트, 프레첼 등이 주 메뉴입니다. 대부분 설탕도, 버터도, 심지어 달걀도 쓰지 않고 만들어진다고 하네요. 이렇게 단순한 재료로 겉은 구수하고 바삭한, 속은 쫄깃하고 부드러운 맛의 빵을 만들어냅니다. 그래서 빵 맛 좀 안다는 사람들이 첫 번째로 이 가게를 꼽는 모양입니다. 하지만 여느 성공한 브랜드들이 그렇듯, 이들도 그 시작이 순탄치만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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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앤폴리나가 영업을 시작한 2008년은 글로벌 위기로 떠들석했던 혼란스런 한 해였습니다. 그런데도 이 빵집이 무려 13년이나 되는 시간을 견디며 살아남을 수 있었던 까닭은 무엇일까요? 바로 국내에서 처음으로 버터브레첼이나 치아바타 등을 대중화하는데 성공했기 때문입니다. 당시만 해도 달고 부드러운 빵을 좋아하는 국내 소비자들은 이곳의 빵맛을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별다른 맛이 없는 심심한 '식사빵'이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 사이 우리나라에서도 밥 대신 빵을 먹는 사람이 조금씩 늘고 있었습니다. 2012년 한국인의 1인당 연간 빵 소비량이 78개였는데 비해, 2016년에는 그 수가 90개로 12개로 늘었으니까요. 빵집을 함께 오픈한 최종성, 김선미 부부는 작지만 큰 이런 트렌드의 변화를 읽고 있었습니다.


“간식 빵이나 케이크는 달고 맛은 좋지만 매일 먹을 수 없어요. 하지만 심심한 맛의 식사빵은 씹으면서 맛을 느낄 수 있습니다. 식사의 개념이 점점 확대되고 있기 때문에, 고객에게 밥을 먹을 것인지 빵을 먹을 것인지를 고를 수 있도록 하면 분명히 승산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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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앤폴리나의 이런 판단은 결과적으로 옳았습니다. 기존 연희동, 여의도, 광화문에 이어 여의도 더현대서울, 잠실 리센츠 상가, 방이동 젬스 빌딩 등으로 매장을 확장할 수 있었으니까요. 그럼에도 창업 13년 차를 맞은 이 빵집은 지금껏 한 번도 광고를 하지 않았습니다. 그 대신 한국인의 턱 관절, 소화 기관, 냉장고 문화에 어울리는 빵을 만드는 데 온 힘을 기울였습니다. 한국인의 식문화에 어울리는 빵을 만드는데 무려 50년의 연구 기간을 설정해 놓았습니다. 이제 겨우 23년이 지났다고 하니 그 열정만으로 이 빵집에 대한 무한한 신뢰가 절로 생겨납니다. 그리고 다시 한 번 성공의 비밀 따위는 없다는 사실을 곱씹게 됩니다. 기본에 충실한 맛과 정성, 그리고 빵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이 어떻게 바뀌고 있는지를 읽을 수 있는 감각에 있음을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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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반짝 유행을 타는 수없이 많은 가게들이 시장에서 명멸을 거듭하고 있습니다. 인스타그램과 같은 트렌디한 채널에 반응하기 위해 '예쁘기만 한' 메뉴들이 소셜 미디어의 피드를 가득 채웁니다. 하지만 폴앤폴리나처럼 50년의 시간을 두고 빵의 본질을 고민하는 브랜드는 많이 만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바로 이런 사람들이 트렌드를 읽어냅니다. 트렌드란 바로 인간의 욕구와 욕망이 어떻게 변화하는지를 보여주는 일종의 일기예보입니다. 진정한 농부는 하루 하루의 날씨에 흔들리지 않습니다. 지난 수십 년간의 노하우를 가지고 언제 씨를 뿌리고 수확을 할지를 결정합니다. 폴앤폴리나는 바로 이런 농부의 눈으로 반죽을 빚고 빵을 굽고 있습니다. 이들의 작은 성공이 시작에 불과하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바로 이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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