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노클(MONOCLE)이라는 세계적인 잡지가 있습니다. 여행을 자주 다니는 비즈니스맨들이 좋아하는 매거진입니다. 모두가 디지털을 이야기할 때 오히려 종이 잡지를 만들어 성공했습니다. 쉽게 말해 사업을 하면서 전 세계 곳곳을 다니는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주제들을 다룹니다. 안목이 높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이 잡지가 전세계 'TOP 100 호텔'을 선정했다는 사실을 우연히 알게 되었습니다. 게다가 국내에서 유일하게 선정된 우리나라 호텔이 있다는 사실도 함께 알게 되었습니다. 호기심이 동했습니다. 과연 어떤 이유로 콧대 높은 글로벌 비즈니스맨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는지가 궁금했습니다. 마침 인근에서 강연이 있어서 마치자마자 호텔로 달려갔습니다. 상도동에 있는 '핸드픽트' 호텔이 그 주인공입니다.
그 날은 갑자기 비가 쏟아졌습니다. 상도동은 외딴 동네입니다. 일 때문에 들를 일도 많지 않은데다 먹거리나 볼거리가 많은 동네도 아닙니다. 그래서인지 소나기가 쏟아지는 오후, 덩그러니 서 있는 호텔 건물 앞에서도 별 감흥은 없었습니다. 사전 정보로 로비가 1층이 아닌 9층에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저는 바로 엘리베이터로 향했습니다. 보통의 호텔이 주는 위압감 대신 검은 톤의 깔끔한 실내 인테리어가 나를 반깁니다.
하지만 9층에 있는 식당겸 로비에 들어서자 내가 확실히 '다른' 호텔에 왔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아담한 식당 한 켠에서 손님을 맞는 그곳이 로비일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마치 동네 카페에서 주인을 만난 기분으로 체크인을 합니다. 자세하지만 크게 해당 사항이 없는 안내 및 주의사항 등을 듣고 바로 객실로 향합니다. 과연 잘한 선택일까 고개를 갸웃하면서 말입니다.
객실은 좁습니다. 깨끗한 투베드가 나를 반깁니다. 그런데 여느 호텔 방 같지 않은 면모가 하나 둘 눈에 들어옵니다. 일단 화려한 패턴의 카펫이나 벽지가 아닙니다. 하나쯤 있을 법한 스탠드 조명도 없습니다. 벽에는 그림 한 장 걸려 있지 않습니다. 그제서야 호텔의 특징 중 하나인 간접 조명이 하나도 없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그야말로 어느 가정집에 만들어진 여분의 침실 같은 아늑함이 느껴집니다. 그제서야 이 곳을 찾기 전 이런 저런 경로로 얻었던 정보들이 납득이 되기 시작합니다.
이 호텔을 만든 창업자는 우리나라의 주거 형태를 최대한 담을 방법을 고민하다가 '조명'에서 답을 찾았다고 했었거든요. 보통의 한국 사람들이 선호하는 '직접등'을 설치해 호텔이 주는 위화감을 없앴다고 했습니다. 그야말로 서울의 어느 가정에 초대받은 듯한 느낌을 주기 위해 이런 선택을 한 것이죠. TV 전원을 켜자, 자신이 어린 시절을 보낸 이 동네에 호텔을 세운 대표의 스토리가 화면에 나타납니다. 내겐 무심했던, 그러나 외국인들에겐 특별했던 이유를 이제야 조금은 알것만 같습니다.
이튿날입니다. 전날 비를 맞아서인지 평소보다 깊은 잠을 잘 수 있었습니다. 간단하게 씻고 다시 9층 로비에 위치한 식당으로 무거운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그런데 엘리베이터를 나와 전날과 똑같이 식당 입구로 들어설 때였습니다. 작은 감탄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상도동의 언덕에 빼곡히 위치한 집들이 이상하게 아름다운 전경을 만들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도시의 분주함이 아닌, 이른 이참 동네 뒷산에 오른 듯한 생경한 상쾌함이 몰려왔습니다. 조식은 더 놀라웠습니다. 호텔 조식인데 무려 한식이라니요. 콩나물 국밥인데 상차림은 여느 국밥과는 전혀 달랐습니다. 외국인을 고려한 탓인지 간도 세지 않고 정갈하기 그지 없었습니다. 나는 그제서야 이 호텔이 그토록 사랑받는 이유를 알것만 같았습니다.
핸드픽트 호텔은 2016년 도에 설립되었습니다. 2021년까지 이 호텔을 방문한 사람 수는 12만 명에 이릅니다. 호텔을 세운지 8개월 만에 손익분기점을 넘겼다니 놀라운 일입니다. 이 호텔의 모토는 '지역의 문호를 호텔에 접목한다'입니다. 집처럼 자꾸 생각나는 '소울 플레이스'를 지향했습니다. 실제로 서울에서 사는 것 같은 경험을 외국인들에게 주는 것이 가장 큰 목표였습니다. 호텔은 지역의 주거 형태와 삶을 담아야 한다는 대표의 고집이 여행객들의 마음을 움직인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매일 이 도시에서 아웅다웅 살아가는 보통의 사람들에겐 큰 감흥이 없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전혀 다른 새로운 도시에서 맞는, 호텔에서의 특별한 경험을 원하는 외국인들에겐 사랑스러운 선택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모든 여행객들은 바랄 것입니다. 도쿄에서는 도쿄의 아침을, 태국에서는 태국만의 특별한 하루를 기대할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핸드픽트는 보통의 서울의 아침을 손님들에게 제공하고 있었습니다.
핸드픽트 호텔은 객실 수가 고작 43개에 불과합니다. 이 작은 규모 때문에 손이 가는 한식을 제공할 수 있는 것이라 했습니다. 서울이라는 도시를 살아가는 보통 사람들의 삶을 보여주기에 '콩나물 국밥' 같은 소박한 한식이 주는 감흥은 남다를 것입니다. 그리고 깨닫게 됩니다. 좋은 브랜드란 결국 과장되지 않은 자신의 모습에서 시작해야 한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작은 카페나 식당, 모텔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딘가에서 보았던 모습을 흉내내는 그쳐선 안됩니다. 그대신 내가 살아가는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는데 집중하면 그만입니다. 그것이 가장 자연스럽고 나다운 모습일 것이기 때문입니다.
상해 출장길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시간은 고급 호텔에서의 하룻밤이 아니었습니다. 인근 골목에서 마주한 아주 저렴한 동네 식당이었습니다. 상대적으로 싼 가격 때문인지 저는 중국 사람들에 뒤섞여 그들의 먹거리에 마음 놓고 취할 수 있었습니다. 식당 안은 한없이 소박했고, 플라스틱 식기는 저렴해 보였으며, 종업원들과의 소통은 쉽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비싼 훠궈나 베이징덕 보다도 그 평범한 식당에서 보낸 두어 시간이 훨신 행복하고 즐거웠습니다. 비로소 중국, 그리고 상해라는 도시의 진면목을 본 듯한 뿌듯함이 밀려왔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가게를, 카페를, 숙박업을 한다면 이 호텔을 방문해보세요. 우리가 평소에 먹고 마시던 것들이 어떻게 호텔의 지위에 오를 수 있게 하는지를 배울 수 있을테니까요. 그리고 그 가게가, 카페가, 모텔이 위치한 동네를 보여줄 수 있는 장치들을 함께 고민해보세요. 그 동네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것들의 리스트를 뽑아보는 겁니다. 기억하세요. 상도동은 특별한 동네가 아닙니다. 그런데 외국인들에겐 그 동네가 한없이 정감있보였던 이유는 그 소박함과 자연스러움 때문이었음을 잊지 마세요. 커피가 아닌, 음식이 아닌 경험을 제공하세요. 그것이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정말로 팔아야 할 것들음을 기억하세요. 이 작은 호텔, 핸드픽트가 그렇게 했던 것처럼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