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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답게 산다는 것은 - 첫 번째 이야기


나는 지하철을 타거나 내릴 때면 와르르 무너지듯 내닫는 사람들을 피해 한 템포 쉬곤 한다. 무리가 빠져나간 한적한 지하철의 계단을 여유 있게 걷는다. 그들의 열심있는 삶을 응원하지만 나는 싫다. 더 이상 9시 출근을 하지 않아도 되는 삶이 이제 4년 차에 접어들고 있다. 이런 삶이 내게는 더 없이 '적합'하다.


어린 시절 '업 클로즈 앤 퍼스널'이라는 영화에 매료된 적이 있었다. 배우나 스토리 때문이 아니었다. 이른 아침 출근해, 우당탕탕 요란하게 쏟아지는 콜라 한 캔을 집어 든다. 그리고 책상 위에 구둣발을 올려 놓은채 회의가 시작된다. 마치 스팀팩 맞은 마린(스타크래프트 얘기다)처럼 열렬히 일하는 그들의 삶이 너무나 부럽고 매력 있었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입사 이후 처음으로 밤을 샌 나에게 보스는 매우 기특하다는 표정으로 속옷을 선물했다. 한 쪽 눈은 실핏줄이 터져 있었다. 그렇게 6년 3개월을 일했다. 저도 모르게 내공이 쌓였을 그 시간이, 나는 전혀 행복하지 않았다. 회사나 특정 인물에 대한 원망은 없다. 나는 그저 그런 삶에 '맞지 않은' 사람이었을 뿐이다.


지금은 내가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장소에서 일한다. 새벽 5시면 일어나지만 가급적 오전 미팅은 잡지 않는다. 탈북자를, 사회적 기업가를, 소상공인을, 작은 기업가를 돕는다. 야구로 치자면 마이너리그다. 그런데 나는 그들과 함께 일하는 이 시간이 즐겁다. 보람되다. 미친 듯이 경쟁하지 않아도 충분히 행복한 삶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모두에게 이런 삶이 '적합'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여전히 카페인에 기대어 새벽을 달리는 그 누군가의 삶을 응원한다. 하지만 나는 내 방식대로 나의 길을 묵묵히 걸어갈 것이다. 내 삶의 속도대로 나를 필요로 하는 이들과 함께 일할 것이다. 혼자 일하지만 외롭지 않다. 매일 함께 일할 다른 사람들을 만난다. 홀로, 그러나 함께 일하는 법을 배우는 중이다.


어느 날 외국 여행을 하던 친구가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가는 길을 따라가 보았다고 했다. 이윽고 움직임이 멈춘 그곳은 다름 아닌 대학교 수업 시간이라고 했다. 그곳은 관광객이 머물 장소는 아니었던 것이다. 그러니 남들 다 가는 길을 무작정 따라가는 삶을 살지 않도록 하자. 한 번 뿐인 삶, 나답게 살아보자. 삶은 영화가 아니다. 우리는 배우가 아니다. 한 템포 쉬어가도 결코 늦지 않다. 그런 당신의 삶을 열렬히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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