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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있다는 것에 대하여 - I

불과 수년 전까지 나는 잘 체하는 사람이었다. 오죽하면 내 손 끝을 남의 손처럼 똑똑 잘 따곤 했다. 그래서 쳇기가 있을 때의 기분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머리는 당연히 아프다. 거기에 더해 희뿌옇고 어지럽기까지 하다. 손끝은 차고 저리다. 심하면 미슥거리는 통해 일부러 토하기까지 한다. 스스로 구토를 했을 때의 그 찜찜한 기분은 당해본 사람은 누구나 다 알 것이다. 하지만 못 견디게 힘든 것 한 가지가 더 있는데, 그건 무엇을 하고 싶은 아무런 의욕도 생기지 않는다는 것이다. 나는 그것이 가장 싫고 두려웠다. 그런 시간은 '살아있음'에 포함되지 않는 시간처럼 여겨지기 때문이다.


다행히 회사를 나온 이후로 이런 체증은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느지막히 식탐이 생겨 날마다 체중을 재고 좌절하는 삶이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타고난 기질 탓인지 다양한 우울증을 주기적으로 경험하고 있다. 불안장애, 건강염려증, 공황장애 등이 그것이다. 뭔지도 모르고 당하는 시기는 지났지만 한 번 잡힌 발목은 쉽게 풀리지 않는다. 평생 사슬에 매인 코끼리가 왜 풀려나도 주위를 배회하는지 정확히 이해가 된다. 이성을 넘어선 본능적인 불안과 우울이 가진 힘은 생각보다 끈질기다. 그리고 이때마다 심각한 '무기력' 때문에 고생하곤 한다. 마치 쳇기 때문에 좀비처럼 흐느적거리는 그런 상태가 된다.


사실 이런 증상에 뚜렷한 해법은 없다. 무기력을 활기로 바꿔주는 마법의 스위치는 없다. 나 자신을 객관화하고 무언가 하고 싶은 마음이 들 때까지 다양한 시도를 한다. 그러다 번개처럼 '그것'이 찾아온다. 자리를 고쳐 않게 되고 전에 없던 집중력이 생긴다. 머리는 빠르게 회전한다. 해야 할 일들의 목록이 하나 둘 떠오른다. 그제야 피가 돌 듯 내 몸에 활기가 돈다. 만나야 할 사람들의 얼굴이 떠오른다. 실패의 두려움을 넘어설 만큼의 용기도 함께 생긴다. 어차피 한 번 뿐인 인생 아닌가. 과감해진다. 그제서야 해야할 일들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시간이 아쉬워진다. 그리고 비로소 살아있음이 의미를 오감으로 깨닫는다.


오늘 오후가 그랬다. 당연히 해야할 일들과 함께, 하고 싶은 일들을 소환했다. 두려움이 하찮게 여겨질 만큼의 기대와 희망이 샘솟음을 느낀다. 모든 에너지가 한 곳으로 모인다. 시간이 빨리 흐른다. 호기심과 재미가 불안을 넘어선다. 내가 아는 한 열정적으로 사는 사람들은 이 느낌을 아는 사람들이다. 요는 이 상태를 좀 더 길게 유지하는 노하우를 발견하는 것이다. 빨리 우울에서 벗어나는 법을 익혀야 한다. 모두는 아니지만 적지 않은 이들이 이렇게 살아간다. 나도 그들 중 한 사람이고 싶다. 뜨겁게 살아 있고 싶다. 단 하루를 살더라도. 그것이 단 한 번 뿐인 내 삶을 위한 최고의 예의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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