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4
아침은 아들이, 저녁은 내가 맡는 것으로 식사 당번을 정했다. 자연스럽게 아침은 빵과 샐러드, 커피로, 저녁은 반찬 두 가지를 곁들인 한식 차림으로 나누어졌다. 당번은 식사 준비부터 뒷정리까지 책임지기로 했는데, 이런 방식이 일상의 리듬을 만들어 주어 만족스럽다. 아이가 차려놓은 아침상에 앉는 여유가 특별하고, 평소와 다른 스타일의 아침 식사가 주는 새로움도 일상의 작은 기쁨이 되고 있다.
아이는 다양한 채소를 버무린 샐러드, 빵과 계란프라이, 으깬 감자로 만든 포테이토, 그리고 아보카도로 아침을 차렸다. 아침에 집안 가득한 요리 냄새는 마음을 따뜻하게 감싸며 편안함을 선사하는 공기처럼 기분 좋은 기운을 전해주었다. 요리하는 아이 모습이 근사해 "유명 셰프처럼 노련하고 멋지다"라며 엄지를 들어 보였다.
아이가 아침을 준비하는 동안 나는 옆에서 음악을 틀어주거나, 책을 읽거나 간단한 글을 쓴다. 이 시간이 마치 선물처럼 여유롭다.
아이와의 이번 캐나다 세 달 살이는 아이가 13살 이후 가장 긴 함께하는 시간이다. 아이는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고등학교까지 기숙사가 있는 학교에 다녔다. 그리고 그 이후 지금까지 계속 독립해 살고 있다. 함께 있는 시간이라고 해봐야 학교 다닐 때 여름, 겨울방학뿐이었고, 그마저도 내가 직장을 다닐 때여서 퇴근 후 몇 시간과 주말만이 아이와 보내는 온전한 시간이었다. 그리고 이제 아이가 어엿한 청년이 되어서야 하루 종일 같은 공간에서 지내는 소중한 시간, 세 달을 맞이한 것이다.
함께하는 시간의 질을 중요시하고, 떨어져 지내는 동안에도 충분한 감정 교류를 했다고 생각했지만, 긴 시간 아이와 함께한다는 설렘과 함께 약간의 긴장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이제 더 이상 품 안의 어린아이가 아닌 독립적인 한 사람의 청년이 된 아이에게 단순한 사랑을 넘어, 독립된 개인으로 인정하고 존중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그런 마음과 함께 낯선 곳에서 언어도 통하지 않고 자신감이 부족한 나는 자꾸 아이에게 의지하게 되었다. 아이는 프리랜서라 어디서든 일할 수 있어 함께 가자고 제안했고, 아이도 흔쾌히 동의했지만 내심 부담을 주고 싶지는 않았다.
자기 관리가 철저한 아이는 아침에는 러닝을, 저녁에는 지하 운동기구를 이용해 하루를 건강하게 채워가고 있다. 시차 적응이 안 되어 운동은 생각도 못 하는 나를 걱정하는 마음이 따뜻하다. 아이에게 걱정을 끼치고 싶지 않아 어서 규칙적인 생활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유니님 남편분의 여동생께서 방문해 주셨다. 주변의 많은 분들이 우리를 세심하게 신경 써주시는 덕분에 안전하게 보호받는다는 느낌이 들었다. 오늘부터 3일간 기온이 크게 떨어질 예정이라며 바깥 활동을 자제하라고 당부와 함께, 근처의 서점과 또 다른 장보기 장소도 안내해 주셨다. 특히 근처에 서점이 있다는 소식이 반가웠다. 비록 책을 구입해 읽기는 어렵겠지만, 서점의 분위기와 풍경을 느껴보는 것만으로도 즐거울 것 같다. 여행할 때마다 방문하는 나라의 서점에서 '어린 왕자' 책을 구입하는 나만의 특별한 추억을 이곳에서도 만들 수 있겠고, 혹시 한강 작가의 책을 발견하는 기쁨을 누릴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에 설레었다.
이곳의 평화롭고 고요한 분위기 덕분인지 모든 것이 여유롭게 느껴진다. 빠른 걸음과 넘쳐나는 사람들로 분주한 곳에서 느끼는 불편함과 달리, 이곳의 느린 흐름 속에서 편안함을 느끼며 나와 잘 어울리는 곳에 내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