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의 순간들

D-6

by 리베르테

전화벨이 울렸다. 낯선 이곳에서 누군가의 전화가 머리를 스쳤다. 부재중 전화 3통이 표시되어 있자, 마음 한구석이 불안해졌다. 죄송한 마음에 전화드렸다.


여러 번 전화해도 연결되지 않아 걱정스러웠다며 지금 집 앞에 거의 도착했다고 하셨다. 우리를 염려하시는 마음이 온몸으로 느껴졌다. "걱정을 드려 죄송합니다"라고 말씀드리자, 아무 일 없으면 되었다며 이곳까지 왔으니 시장 볼 것이 있으면 함께 가자고 제안하셨다. 차가 있으면 더욱 편리할 것이라고 덧붙이셨다.


가는 길에 잠깐 병원에 들러 문병하고 가자고 하셨다. 빨간 벽돌로 지어진 낮은 건물, 복도 벽에는 커다란 그림 액자들이 걸려 있었고, 병원 정원의 나무마다 반짝이는 전등이 매달려 있었다. 밤이 되면 마치 별이 반짝이는 듯한 모습일 것 같았다.


병원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자 따뜻한 온기가 느껴졌다. 오가는 사람들은 서로 반갑게 웃어주었다. 마치 이방인이 아닌 것처럼 익숙하게 복도를 걸어 엘리베이터를 타고 3층으로 올라갔다. 3층 복도 대기실에서 기다리는 동안 두 분은 병실에 다녀오셨다. 아프신 분의 이야기를 들으니, 마음이 아팠다. 비록 직접 뵙지는 못했지만, 그분의 쾌유를 마음 간절히 기도했다.


지나는 길에 보이는 집들이 모두 아기자기 예뻤다. 놀라운 점은 그 집 중 50년, 100년이 넘은 집이 많다는 것이었다. 세월이 흘러도 깨끗하고 단정한 집의 모습은 마치 주인의 성격을 보는 듯했다.

병원을 나와 가는 길에 ‘던던 캐슬’이라는 곳을 지나쳤다. 유료로 내부를 구경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검색해 보니 1835년에 지어진 이 건물은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빅토리아 시대의 대저택이었다. 빅토리아 시대의 생활양식이 궁금해졌다.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꼭 구경해보고 싶다.


성을 지나자 얼어붙은 온타리오 호수가 보였다. 이곳은 아이와 함께 버스를 타고 오려했던 곳이다. 황량한 주변에 아무것도 없는 드넓은 호수 위로, 멀리서 몇몇 사람들이 스케이트를 타고 있었다. 넓은 호수에 몇 안 되는 사람들을 보며 우리나라의 사람 가득한 실내 스케이트장이 떠올랐다.


차는 다시 목적지인 한인 식품점 갤러리아를 향해 달렸다. 갤러리아에는 한국 식품들이 거의 다 구비되어 있었다. 배추, 무, 고구마, 감자, 두부, 온갖 장류까지 한눈에 잘 정리된 모습이었고, 마치 한국 슈퍼처럼 다양한 물건들이 반가웠다. 배추김치를 담고 싶었지만, 배추의 대용량과 높은 가격 때문에 포기하기로 했다. 모든 고객은 한국인이었고, 익숙한 모습과 말이 반가웠다. 한국식품이 좋았지만, 가격은 B&T보다 비쌌다. 두부와 파, 어묵을 집어 들었다가 더 저렴한 B&T에서 구입하기로 하고 다시 제자리에 놓았다.


이곳에는 다양한 마트가 있다. Nofrills, Loblaws, Shoppers, Galleria, Costco, Food Basics, Wholefoods 등 각각 특색 있는 마트들로, 구입할 물품에 따라 특색 있게 이용하는 것이 좋다고 조언해 주셨다. 나는 아직 Costco와 B&T 두 곳만 이용해 보았는데. Nofrills 가격이 상대적으로 저렴하니 그곳을 이용해도 좋겠다고 하셨다.


다시 처음 장을 본 B&T로 향했다. 갤러리아보다 진열이나 식품 구성이 깔끔하진 않지만, 같은 물건의 가격이 대부분 더 저렴했다. 이곳 슈퍼마켓의 다양한 정보를 알려주시며 알뜰하게 장을 보시는 모습은 내가 본받고 싶은 모습이었다.


문득 며칠 전 걸으며 든 생각이 떠올랐다. 오래전 이곳에 건너와 고생하시며 정착하신 선배 세대 덕분에 우리가 편안히 오갈 수 있게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까지 오랜 세월 이곳에서 살아온 분들께 감사했다. 첫 세대는 선택의 여지없이 그저 앞으로 나아가야 했지만, 그 뒤를 잇는 세대는 편안히 다져진 길을 선택하며 따라올 수 있었다. 그렇게 생각하니 외로운 시간을 보내셨을 그분들께 깊이 감사함이 밀려왔다.


그 마음을 전하고 싶어 "정말 애쓰시고 수고 많으셨어요. 감사합니다"라고 진심을 담아 말씀드렸다.

밖은 어둑어둑해지고 다시 눈이 내렸다. 러시아워로 도로는 긴 차량으로 가득 찼고, 우리도 그 행렬에 합류했다. 차는 느리게 달렸고, 집에 도착했을 땐 이미 어두워져 있었다.


오늘 하루 캐나다 근교를 드라이브하며 함께 장을 봐주신 두 분의 친절에 깊이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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