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28일 주말 일기

엄마 노릇, 시장의 흥정

by 낯선여름

1. 시장의 북적거림이 좋아서


다른 때라면 좋은 날씨에 외부 나들이 일정을 잡았겠지만, 애들 중간고사 기간이니 엄마 역할에 더 충실해 보는 주말. 큰 녀석 매트리스 커버 바꿔줄 때가 되어서, 도매가로 파는 지하상가에 들렀다.

지하상가들은 이제 카드도 다 받지만, 아무래도 현금으로 받는 것을 더 좋아한다. 현금으로 사면 물건값을 몇 천 원이라도 깎아주기도 하고, 무엇보다 주인 분들의 눈빛과 태도가 달라지므로, 이때만큼은 현금을 준비해 간다. 이불 가게도 몇 군데나 있지만, 보통은 두 번째 정도 가게에서 잡힌다. 오늘도 두 번째 가게에서, 매트리스 커버만 샀다가, 괜히 머뭇거리다 베개커버에 매트까지 사게 되었다.

"이거 그냥 이 집 저 집 다 있는 공장형 물건 아니야"

"내가 이거 아까워서 그래. 좋은 물건 싸게 나왔는데 안 사가면 내가 다 아까워서 그래"

장삿속인 것을 알면서도, 단골 멘트인 걸 알면서도, 나는 이런 멘트들에 잘 넘어간다.

아주머니들은 신나서 계산도 안 했는데 비닐봉지 꺼내서 테이프를 쫙쫙 붙여준다.

"정말 잘 사가는 거야" 도 잊지 않으신다.

돌아오는 길에 들른 다른 이불 가게에 조금 더 저렴하고, 면도 좋은 것을 봤지만, 눈을 질끈 감는다.

그래도 시장의 왁자지껄함과 계산 방식이 인간적이어서 좋다. 정말 프로 아줌마 다 된 느낌.


2. 힘내라 고삼아


오늘은 애들 아빠가 독서실 좌석 맡기에 성공해서 (5시 40분부터 줄 섰다고), 둘째는 여유롭게 단지 안의 독서실을 갔다. 큰 애는 그 곳이 중학생 가득한 곳이라 가기 싫다고 애초부터 예약 부탁도 안 했다. 원래 다녔던 곳은 질렸다고 요즘은 집에만 있는다.

"엄마가 너무 잘해주니까, 집에만 있고 싶지?" "이제부터 하나도 뭐 안 해줘야지"라고 실없는 농담을 건네본다. 피식 웃기만 하고, 별 반응이 없다. 집에서 공부 꼭 안 해도 되니, 좋은 날 햇빛 받으며 산책이라도 한 바퀴 하면 좋으련만. 나름 스트레스가 많은 것 같다. 힘내라 고삼아!


3. 시인의 산문을 읽는다는 것


이번 주말에는 심보선 시인의 산문, "그 쪽의 풍경은 환한가"를 읽었다. 시인이 쓰는 산문이어서도 그렇고, 사회학과 전공한 교수로서의 직업을 갖고 있으면서 시를 쓰는 분이어서 그런지, 산문이 옛날 종이 신문 시절의 대기자의 사설처럼 논리 정연하고 시사적이면서도, 시인의 서정성이 느껴진다.

신형철 평론가가 심보선 시인의 글을 좌뇌 우뇌의 합작이고, 그를 질투하지 않기 위해 무척 노력했다고 쓴 글의 의미를 잘 알겠다.

우리를 스쳐가는 정보들은 많지만, 마음에 오래 남는 글, 깊은 글을 읽기가 쉽지 않은 시절이다.

깊은 글을 더 부지런히 읽고, 나도 그런 글들을 하나씩 써보고 싶다는 생각을 여러 번 하게 한 책.



영화를 보는 여유 시간에 우리는 비슷한 영혼을 나눠 가졌다는 단순한 진실을 떠올리며 눈물을 흘린다. 하지만 극장 문을 나서자마자 우리는 질주한다. 무한 경쟁의 시대에 매 순간 마주칠 수밖에 없는 선악의 기로에서 둘 중 하나를 무심코 선택하면서 달리고 또 달린다. 결국 악이란 '망각을 선택함'이고 지옥이란 거듭된 망각 끝에 다다르는 종착지의 이름이다. 장담컨대 그 종착지인 지옥은 끔찍하기는커녕 너무나 평범한 세계의 모습으로 우리를 맞이할 것이다. ('악을 생각하다', 그 쪽의 풍경은 환한가, p65)




4. 수영으로 마무리하는 주말 루틴


어제 시작한 30분 달리기를 오늘도 했다. 지난 4개월간 한번 시작하기가 어려웠는데, 역시 날씨 영향인가.

그런 후, 일요일 저녁에 하는 수영을 갔다. 6개월째 같은 시간에 함께 하는 학생이 오늘은 결석이라 혼자 레슨을 받게 되었다. 접-배-평-자를 모두 하고, 접영의 자세를 더 가다듬었다. 수영은 참 좋은 운동 같다. 물멍이 있다는데, 물속에선 어떤 걱정과 근심도 떠올릴 수 없이 호흡하고 힘차게 몸을 움직여야 한다. 몇 바퀴 돌다 보면 돌고래가 된 것 같은 느낌이다. 더 큰 바다로 나가고 싶은 망상이 생길 정도.

선생님이 많이 늘었다고 칭찬을 해준다.

늘 느끼지만 뭘 배우면서 칭찬을 받으면 기분이 무척 좋은데,

성인인 우리는 아이들에게 칭찬을 하기만 하지, 받는 일이 별로 없어서인 것 같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4월 27일 주말 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