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29일 출근 일기

오해와 감정 폭발, 정비사 친구들, 휴대폰이 없던 하루, 달리기

by 낯선여름

1. 월요일 출근이다. 출근이 싫지 않다.

산전수전 겪어보니 알겠다. 아직 내가 할 일이 있다는 것. 바쁘다는 것. 원 없이 일하는 것도 복이다.

월요일 주간 회의가 있는 날. 어제 집에서 이미 작성했지만, 미처 살피지 못한 수치를 살펴본다.

아침에 출근하자마자 디자인 그룹 리더가 있는 방에 지난 금요일의 결정을 이야기 했고, 일정을 확인해 달라고 하곤 다른 일들을 하고 있었다. 한참 있다가 보니 대화가 많이 쌓였는데 대화가 흘러가는 모양새가 심상치가 않다. 그래도 몇 해 함께 호흡을 맞춰왔던 사이인데. 그럴까 싶어, 농 반으로 '화났는지'를 물었다. 답하지 않고 그녀는 싸하게 다른 말을 했다. 내가 잡은 1시 반 회의를 4시로 바꿔달라는 B의 말에, 회의는 하지 마시죠, 어차피 모여봤자 똑같은 말만 반복할 것 같은데,라는 말을 했다. 이 말이 걸렸지만 넘어갔다. 물리적으로 체크해야 할 일이 너무 많다.

주간 회의가 끝나자마자 바로 또 회의를 하게 되었다. 팀장이 디자인 그룹 리더도 부르라고 했다. 회의실 어디냐는 말을 묻고는, 회의실에서도 싫다는 내색을 팍팍 내더니, 필요한 말에만 답하고 대꾸하지 않다가, 회의 끝나자마자 박차고 쌩하니 나가버린다. 저 태도는 뭐지? 오후에 이야기를 해야 할까 생각하는데, 옆에 있던 팀장이 본인이 점심시간 이후에 말을 해보겠다고 한다. 대화는 나와 그녀가 해야 하는데, 대화의 선두를 빼앗긴 것 같은 생각이 얼핏 들었지만 한 발 늦었다.


2. 아침부터 메신저로 지난번 동기들 모임에서 만났던 정비 부서 쪽 동기가 우리 건물에 왔다고 연락을 했다. 동기들 몇 명 있으니 함께 점심 해도 좋겠다고. 나는 아침에 너무 혼이 나가게 바빠서 구내식당도 괜찮고, 혹시 식사를 함께 못하면 차나 한잔 하자고 무심히 답했다. 그리고 결국은 밥은 함께 못 먹고, 차 마시는 데에만 합류하게 되었다. 입사를 같은 해에 하고, 입사 교육을 함께 했을 뿐, 그 이후 어느 접점도 없었는데 또 동기라는 이름으로 다시 만나게 되는 인연이 신기하다. 파릇파릇했던 청춘이 나이 든 모습을 보는 것도. 조금씩 다른 시각과 다른 경험을 가진 친구들이 만나니 대화가 다채롭다.

어린 후배들과 함께 하는 시간들도 소중하지만, 비슷한 또래가 주는 편안함이 있다. 사람 바이 사람이겠지만, 대체로 공대 나온 사람들은 참 순박하다는 생각이 든다. 정비사 유니폼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입고 다니는 그들의 모습이 참 보기 좋다, 그런 정비사 친구들이 있어서 자랑스럽다는 생각을 해보는, 직장인의 점심시간.


3. 오늘은 종일 휴대폰이 없었다. 아침에 충전기에 꽂아둔 채, 큰 애가 얼른 나오라고 하는 소리에 가방만 후다닥 챙겨 나가다 보니, 차키와 회사 아이디카드랑 지갑 등등은 있는데 딱 휴대폰만 없다. 큰 애 학교 데려다주고 집에 다시 돌아올 시간이 안 되는 건 아닌데, 왠지 휴대폰 하나 때문에 역방향으로 왔다가 다시 회사에 출근하는 게 번거롭게 느껴진다. 큰 애 내리게 전에 큰 애 전화로 남편에게 전화를 해서, 둘째 7시 50분쯤 전화로 깨워주고, 학교 끝나고 오면 밥 좀 시켜주든 해달라고, 엄마에게 연락이 안 되니, 아빠에게 전화하도록 당부해 달라고 한다. 회사 PC에 카카오톡도 없고, 회사 IP 폰으로는 회사 주소록에 없는 전화로 전화가 안된다. (이것은 잘 모르겠는데, 사용을 많이 안 해서 내가 모르는 것일지도)

애들 조금 신경 쓰이는 것 외에는 생각보다 편하다. 그 어느 날보다 몰입해서 일했다. 바빠서였을까, 휴대폰이 없어서였을까.


4. 늦은 저녁 야근을 하다가 약간 지쳐있는데, 다른 선임 디자이너 B가 메신저를 건넨다. 이미 오후 즈음에 팀장에게 속도 조절을 조금 하라는 이야기를 들은 터였다. B와 이야기를 잠시 나누기 전에는 오전 일이 그때 잠시 마음에 걸리는 일이었는데 이야기를 하다 보니 조금 서운하다. 그녀 입장에서 힘든 점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그렇게 행동하기 전에, 나에게 버거운 일이라고 조정해야 한다고 말할 수는 없었을까. 그녀 생각에는 그녀가 사정 설명했던 것을 그럼에도 주장해서 관철시키는 내가 원망스러웠을 수도 있다. 나는 디자이너 출신이 아니라 그게 디자이너에게 얼마나 많은 일을 하게 하는 것이니까지는 잘 헤아리지 못한다. 다른 디자이너 B가 그것이 가능하다고 했고, 품질을 높일 수 있는 방법이라고 해서 마지막으로 밀어붙여보자 했던 것인데, 그녀의 마음을 차갑게 돌아서게 했다. 그녀도 나에게 그만큼 서운했을까.

내일 내가 그녀와 차를 마시고 있을지. 아니면 차 마실 시간도 없이 일만 하고 있을지 모르겠다.

내일은 모르겠어.


5. 달리기 작심삼일차.

날씨가 좋아서 저녁 달리기도 괜찮다. 애들이 시험 때라 일찍(?) 잠이 들어, 그 사이에 러닝화만 신고 바로 나간다. 뛰길 잘했다. 복잡한 생각도 가라앉고, 몸과 마음이 한 겹 정도는 깨끗해진 느낌이다.

너무 덥거나 추운 날이 아닌 선선한 날씨에는 무릇 걷거나 뛸 지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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