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회사에서 점심시간에 주 1~ 2회 요가한다고 얘기했던가?
이번주는 원래 요가 선생님이 여름휴가 기간이라서 대체 선생님이 해주신다는 얘기를 하셨어.
화요일은 다른 약속이 있어서 빠졌는데 화요일에 참여했던 후배가 회사 메신저로 말을 거는 거야.
대체해서 오신 선생님이 자세히 설명해 주셔서 굉장히 도움이 되었다고. 목요일에 꼭 오시고, 가능하면 보충하는 금요일도 참석하시길 권한다고.
그렇게 사전 정보를 조금 갖고 수업에 참석했는데, 정말 엄마 같은 초보자에는 너무 도움이 되는 수업이었어.
요가를 다녀본 적이 두어 번 밖에 없으니 비교할 수는 없지만, 여태껏 만난 선생님 중에는 최고였어.
근데 이 선생님을 만나기 전에는 원래 우리 선생님이 최고인 줄 알았거든?
왠지 대체 선생님이 온다고 조금 싫었던 것 같기도 하고.
사람 마음이 늘 이래. 변화가 싫고. 기존에 익숙한 것들에, 혹은 내가 선택한 것이 가장 좋다고 여기고,
뭐를 바꾼다 하면 거부부터 하게 되는 것 같아.
어려서야 그렇다 쳐도 엄마는 어른이 되어서도 종종 이런 편견 때문에 실수를 했던 것 같아.
이런 얘기하다 보면, 엄마가 네가 첫째라고 어린이집 결정을 무슨 인생의 중대한 결정인 것 마냥
밤새 검색하고, 장단점 표 그려서 분석하고, 상담 다녀와서 또 아빠랑 할머니랑 토론했던 기억이 나네.
그렇게 해서 엄마가 너를 4살 때 기어이 엄마가 원하는 분위기의 발도르프 교육을 하는 어린이집으로 결정했는데, 그곳은 차량 운영이 안되고, 집에서 20분은 차로 가야 하는 곳이었어. 그때 엄마는 운전도 못했고. 거기를 무리해서 보낸다고 할머니 고생시킨 것 생각하면, 그 꼬마가 고 3이 되었는데, 아직도 너무 죄송하면서 부끄러워져.
물론 그 발도르프 교육 방향이야 너무 좋았지. 어린아이들에게 문자 교육이나 학습시키지 않고, 매일 바깥 산책하고, 얕은 동산도 오르고. 그렇지만 할머니와 아빠, 너까지. 희생을 해가면서까지 다닐 필요는 없었는데 말이야. 그 후에 다닌 구립 어린이집도 충분히 좋았으니까 말이야.
네 동생은 그 시행착오를 거친 후라 아예 가장 가까운 어린이집으로 보냈었고. 모두 편안히 무리하지 않고 다닐 수 있었어.
너희들 키우면서 종종 엄청 정이 든 선생님들이 떠나가면 늘 아쉬워했지만, 엄마는 경험이 있으니, 이런 이별에는 덤덤히 반응하고 너희들에게 이야기했었지.
사람도 그렇지만, 일도 그렇고, 어떤 선택에서도 내가 절대적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아닌 것으로 밝혀지기도 하고, 상황이 바뀌어서 내 마음이 바뀌기도 해.
인생에서 이게 아니면 안 되는 것 같은 일과 사람을 만나는 것이야 말로 특별한 축복이겠지만,
그렇게 되기 전까지는 무수한 시행착오의 경험이 있게 마련이야.
그러니, 일이나 선택의 경중에 따라 다르겠지만, 조금 더 마음을 열어놓고 너그러워질 필요가 있는 것 같아. 다른 사람에게든, 내 자신에게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