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배의 탈락. 위로하는 마음
바쁜 금요일 퇴근 무렵, 회사 게시판도 볼 새 없었는데,
또르륵. 사내 메신저가 뜬다.
“많이 맘 써줬는데 이렇게 되어서…“
아, 발표가 났구나. 후배는 탈락했구나.
회사 게시판에는 공식적으로 발령지로 발표가 났나 보다. 곧이어 우리 팀 메신저에는 우리 부서에서 합격한 사람에게 축하하는 내용이 동시 다발적으로 이어진다.회사는 이런 곳이다. 누군가는 기쁘고, 누군가는 절망한다.
후배가 계속 좋은 분위기를 타고 있어서 기대를 많이 했던 모양이다. 후배의 실력과 열정, 태도는 충분하지만, 한 가지, 나이 부분에서 조금 걸릴 수도 있는 부분은 우려가 되었다. 회사 분위기상 그걸 넘으려면 해당 부서 임원이 정말 열심히 힘써줘야 할 텐데… 하지만 혹시 안되더라도 도전의 과정은 소중하니까 부러 말을 꺼내지는 않았다. 결과가 이렇게 되고, 후배가 크게 실망하는 모습을 보니, 미안해진다. 불가능성에 대해서도 이야기 나눴어야 했나.
후배는 면접장 분위기도 좋고, 부서장이나 면접관이 해줄 것처럼 환히 웃어주어서, 솔직히 기대를 많이 했다고 했다. 본인이 부족한 탓이지만 허무하고 허탈하고 슬퍼서 자꾸 눈물이 나온다고.
이럴 때 말이 위로가 될까. 가까이 있으면 술 한 잔 말없이 따라주고 싶다. 이런 날은 그런 게 필요하다. 우리는 집도 반대방향이지만, 후배는 도와주는 사람 없이 딸 한 명을 키우고 있어 바로 집에 가야 한단다.
나 : 뭐라고 위로해야할 지 모르겠어. 네가 부족한 탓이 아니라 특히 직부 전환은 부서장이 얼마나 더 힘써주느냐일 텐데… 내가 면접관 누구냐 물었던 것도.. 면접으로 한다는 취지는 좋은데, 그 평가의 공정성은 어떻게 한다는 거지? 궁금하고 우려했어.
하지만 네가 그걸 뛰어넘을 수도 있겠다, 기대하는 마음도 있었고. 네가 보기에 최고로, 전심으로 준비했다던 L 과장도 안된 것 봐서도 그렇고… 회사가 여전히 변하지 않은 것을 확인하게 된다.
Y : 아 참, L 과장, 그 언니는 본인도 떨어져 놓고 바로 연락 와서, 나를 위로해 줬어요.
나 : 에효… 이런 사람들을 대우해야지, 이 몹쓸 회사….
Y : 그래도 내일처럼 같이 속상해 주는 선배들이 있어서 이건 누구보다도 위로가 되네. 근데 자꾸 눈물이 나…
나: 열심히 해서, 최선을 다 해서 그런 걸 거야.
나도 정말 처음으로, 나야말로 어린 시절 더 좀 열심히 살아서 지금 팀장이라도 됐으면 뭔가 좀 더 실질적인 힘이라도 되어줬을 텐데… 아쉽고 미안했어. 이 나이 먹도록 뭐했나… 너에게 ’그냥 마음‘ 말고, 실질적인 힘을 실어줄 수 있었으면, 그런 마음이었어.
이건 진심이었다. 오래 휴직하고 회사에 돌아와 보니, 남자 동기들은 모두 부장이 되고 팀장이 되어 있었다. 이 회사의 한계인지 여자 동기들은 나처럼 쉬지 않은 친구들도 아직 차장을 맴돌고 있다. 나는 내년에도 회사 규정에 따라 부장 진급 대상조차 되지 못한다. 부장이 되지 않으면 팀장이 될 수 없으므로, 팀원에 대해 평가에 대해 물어볼 수 조차 없다. 회사 조직 자체에 대해서는 크게 기대하지 않으니 진급 같은 건 괜찮다고, 3년 이상 쉬고도 일할 수 있으니 감사해야 한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후배가 도전하는 과정, 왜 떨어지는지도 모르고 탈락해 저렇게 울고 있는 모습을 보니, 나의 무력함도 서글퍼진다.
조직에서는 모두를 진급시켜주거나 직부 전환시켜줄 수는 없는 걸, 그래서도 안된다는 걸, 나도 안다. 이 회사에서 가장 답답한 건, 과정과 결과에 대해 투명하게 밝혀주지 않는다는 점이다. 몇 명이 지원했고, 경쟁률이 얼마고 알려주는 게 없다. 평가항목은 이렇고 비중은 이렇다, 떨어진 후엔 어떤 부분이 부족해서 떨어지는 줄 당사자가 알아야 하는데 그런 게 없다. 그러니 내년을 기약한다 해도 사실 희망고문이 되기 십상이다. 늘 이런 회사가 답답하고 못마땅했다. 크고 보수적인 조직이다 보니 언로도 막혀있다.
답답하고 보수적인 회사여서 늘 떠나고 싶은 마음이 한 켠에 있었다. 어쩌다보니 이 회사의 다른 사람들과 똑같이 십 수년간 한 회사에 몸담고 있다. 그러다보니 오늘 같은 감정도 겪게 되나 보다. 왜 나는 이 조직에서 더 성공할 노력은 하지 않았을까. 올 해와 같은 긴장과 노력으로 일했으면 후배를 위해 (아무리 크고 보수적인 회사라 해도) 내가 힘이 돼 줄 부분은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오늘 후배와 다른 의미로 아팠다.
Y : 나 그 마음 너무 고마워요. 근데 언니는 안된 게 아니라 시간이 지난 거라고 생각해요. 여러 일들이 있었고, 또 시간을 헛되이 보내지 않았다는 걸 아니까. 그래서, 지금은 아니지만 머지않아 실질적으로 이끌어 줄 수 있는 진정한 관리자가 될 거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내가 한 일, 업적 성과를 봤을 때, 그 누구보다 내 위치에서 성실하게, 열심히 했고, 그래서 자신이 있었는데, 이렇게 되어서 슬펐어요.
오늘까지는 좀 슬퍼하고, 마음 다시 추슬러야지. 회사 그만둘 거 아니고, 내년에 또 도전하려면. 누구도 안 시켜줄 수 없게 부족한 부분 더 채워야겠어요.
나 : 그래. 와신상담의 정신!
당장 되고 안되고도 중요한데, 전환할 때 혹은 승급할 때만 반짝하고 아무 차이 없는 사람도 많잖아?
앞으로 남은 회사 생활 진짜 어떻게 보낼지 같이 생각해보자. 조직에 몸담고 있으니 거기에서 자유로울 순 없지만, 회사 따위에서 인정해주든 아니든, 우리는 한해 한해 더 멋지고 여유 있는 사람 되자.
힘내고! 딸 ㅇㅇ이도 씩씩한 엄마 통해 많이 배울 거야! 울 엄마는 나를 제일 사랑하는 사람이면서 & 늘 도전하는 사람, 다시 일어나는 사람. 자신의 삶에 열심인 사람! 연휴 찐~ 하게 보내고.. 사랑해 ^^
Y : 오늘 내가 받은 위로 중 최고의 위로!
진심으로 따뜻하고 의미 있는 위로.
갑자기 슬픔이 사라진 거 같아요 ㅎㅎ
고맙습니다.
내가 부추겼던 후배의 도전은 결국, 실패가 되었다. 그렇지만 우리는 이 표면상의 실패를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마음을 나누었으니, 그걸로 위로를 받는다.
내년에 우리는 또 실패할지도 모른다.
한가지 확실한 건,
내년의 우리는, 내후년의 우리는, 지금보다 더 강해지고 멋있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