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제주 - 첫 번째

여행은 가고 싶은 만큼 가다가 돌아오는 것

by 연목

1년이란 시간이 어떻게 지났는지 알 수 없다. 어느새 나는 제주도 가는 비행기를 예약하고 있었다. 아내는 제주도든 어디든 다녀오라며 채근하는 말이 며칠 사이 잦아졌다. 그래 가보자. 한라산이라도 올라갔다 오자.




공항은 입구에서부터 차가 빼곡히 들어차 있다. 아내는 잘 다녀오라며 공항입구에 나를 내려주고 시나브로 공항을 떠났다. 그래, 잘 다녀오자. 아내에게 미안한 마음이 컸지만, 난 그렇게 마음먹었다. 잘 다녀오기로... 이렇게 무거운 마음으로 집에 있는 것보다 며칠이라도 다녀오는 편이 나을 것 같았다. 얼마만의 제주도인가. 코로나가 오기 직전 늦가을이었던 것 같다. 어림잡아 2년 반만이다. 혼자 다녀온 지는 더 오래되었다. 그때는 겨울이었다. 제주도에 눈이 많이 와 며칠을 기다리며 한라산 등반을 준비했지만, 5일 만에 열린 등산로는 눈이 무릎까지 싸여 한 발 내딛기가 쉽지 않았다. 결국 사라오름까지 갔다가 돌아온 기억이 있다.


공항은 몹시 붐볐다. 출발 시간보다 한 시간 반이나 일찍 왔지만 보안검색대 앞은 벌써 줄이 길게 늘어져 있다. 아직 6월, 초여름이고 거기다 오늘은 화요일이다. 유가가 천정부지로 솟고 있지만 코로나로 눌러있던 여행수요가 넘치면서 요즘 제주도 가는 비행기표 구하기가 쉽지 않다고 했다. 그렇다고 치더라도 여수공항이 이렇게 붐빌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한 시간 가까이 대기하고 겨우 보안검색대를 통과한 후 쉴 틈 없이 바로 비행기에 올랐다. 이미 비행기 안에는 승객들로 가득 차 있다. 일부러 비행기 뒤편 창쪽 자리를 예매했으나 조용히 가기는 어렵게 됐다. 이미 먼저 온 사람이 창쪽 자리를 차지하고 주뼛거리며 나를 쳐다본다. 그 사람도 아는 것이다. 그 자리가 본인 자리가 아니라는 것을. 평소 같았으면 이미 앉았으니 그냥 둘 수도 있었으나 오늘은 비행하는 동안 마스크를 계속 쓸 것을 생각하니 벌써부터 숨이 차 창쪽 자리라도 앉아야 덜 답답할 것 같았다. 그렇게 앉아서 나는 바로 이어폰을 빼서 귀에 꽂았다. 빨리 도착하기만 바랄 뿐이었다. 그러나 아직도 비행기는 출발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아직 보안검색대를 통과하지 못한 승객이 있었는지 비행기는 한참을 더 뭉기적 거렸다. 20분 가까이 지났을까 안내방송과 함께 마침내 움직이기 시작한다. 드디어 이륙이다.


비행은 짧았다. 여수와 제주도라고 해봐야 남해바다 건너다. 비행기는 이륙하는가 싶더니 도착안내 방송이 나왔다. 항상 제주도 가는 비행기는 이렇게 싱겁게 비행을 멈추곤 했다. 그러나 오늘은 비행기에서 빨리 내리고 싶었다. 오래간만에 느끼는 사람들의 체취 가득한 공기가 싫었다.


제주도에 도착하니 여지없이 비가 내린다. 이미 예상했던 날씨, 익숙한 듯 공항을 빠져나와 렌터카를 찾으러 간다. 여행객이 많으니 렌터카 셔틀버스도 붐빈다. 빨리 이 모든 절차를 끝내고 아무 생각 없이 차를 몰고 제주 바다가 보이는 어디든 가고 싶었다. 다행히 난 이미 모바일로 체크인해 정해진 주차구역에 가서 차만 가지고 나오면 된다.


비가 오고 안개가 가득 낀 제주도라. 어디로 가볼까, 아니 가야 하나 고민하다가 점심을 건너뛴 터라 배도 채울 겸 동문시장으로 향했다. 제주도 올 때마다 찾는 곳이라 내비게이션을 따라가는 길, 주변 풍경이 익숙하다. 그래 내가 또 제주도에 왔구나! 동문시장에는 비를 피해 모인 관광객들이 이미 빼곡하게 들어찼다. 비 오는 제주도는 생각보다 갈만한 곳이 많지 않다. 골목마다 늘어선 좌판에 갖가지 생선이며 과일들이 관광객을 반긴다. 천편일률적이던 기념품들이 몇 년 사이 많이들 바뀌었다. 제주가 핫해지면서 도시의 청년들이 제주도로 많이 이주해왔다고 들었다. 그리고 그들은 자신만의 색깔로 다양한 것을 만들어 내기 시작했다.


시장을 한 바퀴 둘러보니 시장끼가 밀려온다. 기념품 파는 곳을 지나니 고기 굽는 냄새가 요란하다. 한쪽에서 청년들이 유니폼을 입고 일명 ‘흑돼지 전복 김치말이 삼겹살’을 팔고 있다. 제목에서부터 좋아하는 재료 네 가지가 들어가 있다. 맛이 없을 수 없겠다. 모양은 또 어떤가? 나는 고민하지 않고 김밥인 듯 김밥 아닌 삼겹살김밥을 한 줄 사서 차로 돌아와 끼니를 때운다.



다시 차를 몰아 제주 4.3 평화공원으로 향한다. 사실 내가 제주에 온 이유는 한라산에 가기 위해서다. 그러니 비 오는 첫날 일정은 아무래도 좋았다. 제주 바다를 등에 쥐고 중산간 쪽을 향하니 빗발이 점점 거세진다. 차로도 한참을 오른 끝에 주차장에 도착한다. 제주시내가 아득하게 보이는 곳. 센터에 들어서니 삼삼오오 방문객들이 모여 이야기하고 있다. 나는 안내데스크를 지나 관람을 시작한다. 4.3이 일어난 지 70여 년, 동백꽃처럼 후드득 쓰러져간 제주사람들의 이야기에 눌러쓴 모자 속 정수리가 가렵다. 나는 모자를 벗은 채 비를 맞으며 멀리 떨어진 주차장 가장자리로 향했다.


해가 뜨진 않았지만, 저녁이 다되어 간다. 아직 숙소도 잡지 않은 터라 갑자기 마음이 바빠졌다. 출발 전부터 첫날은 제주시내 근처에서 하룻밤을 보낼 생각이었다. 그러니 굳이 숙소를 예약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이튿날 아침 일찍 한라산에 오르기 위해서는 굳이 차를 몰고 성산포나 서귀포 쪽으로 넘어갈 필요가 없을 것 같았다. 한라산을 올라갔다 온 후에 둘러볼 생각이었다. 마음 가는 대로...

혼자 하는 여행은 언제나 마음이 편하다. 어디를 갈지, 무엇을 할지 크게 고민하지 않아도 되기에. 발걸음이 닿는 대로 그냥 가면 된다. 그곳이 바다든, 산이든 아무래도 상관없다. 어느 것 하나 놓치지 않으려는 탐험가 마인드는 혼자 하는 여행에서 예초에 필요하지 않았다.


제주시청 근처 숙소를 잡고 비 개인 제주 거리를 걷는다. 딱히 걷고 싶어서 나섰던 것은 아니다. 낯선 도시의 거리, 아무도 나를 아는 사람이 없는 거리를 걷다 보니 걷고 싶어 졌을 뿐이다. 격자처럼 사방으로 흩어진 제주 거리는 왼쪽이든 오른쪽이든 모퉁이에서 한쪽 방향으로만 걸으면 다시 제자리도 돌아오게 되어 있다. 가고 싶은 만큼 가다가 돌아오는 것. 어쩌면 이것이 이번 여행의 목적일지 모른다. 걷기 시작한 지 한 시간 반이 지났다. 이제 돌아갈 때가 된 것 같다. 나는 바다를 끼고 있는 왼쪽 방향을 택했다. 그리고 한참을 걷다가 또 왼쪽으로 돌았다. 출발할 때 보았던 오피스텔이 왼쪽 시야에 들어온다. 하염없이 걷다 보니 다시 제자리도 돌아왔다. 따지고 보면 제주도 와서 올레길이나 사려니숲길, 오름은 많이 걸었으나 제주시내를 이렇게까지 걸어본 건 처음이었던 것 같다. 여행 첫날부터 여러 모로 낯선 시간인 것은 분명하다.



- 안녕! 제주 두 번째에 계속





keyword
작가의 이전글쓴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