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가 예약해 준 숙소는 서귀포 위미항이었다. 성판악주차장에 다다르니 어느새 세시가 넘어가고 있다. 여기서 다시 차가 있는 제주방목지까지 가야 한다. 숙소는 제주시쪽으로 내려갔다가 다시 이 길을 돌아와 서귀포쪽으로 가야 한다. 출발한 지 한 시간 가량 됐을까 피곤이 몰려온다. 그도 그럴 것이 산길을 20킬로미터나 걸었으니 몸이 성할 리가 없다.
숙소가 생각보다 멀다. 언젠가 제주도 사는 지인이 나를 붙잡고 하소연했던 적이 있다. 제주 시내 쪽에 사는 이 친구는 한동안 연락이 없던 사람이 전화가 오면 백발백중 제주도에 왔거나 제주도에 갈 예정이니 전화받기가 무섭다고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숙소가 어디냐고 물으면 서귀포, 성산포, 협재해수욕장, 중문관광단지일 때가 많단다. 그러니 짧게는 한 시간, 길면 두 시간도 가야 하고 다음 날 출근해야 하는 처지니 다시 늦게라도 다시 돌아와야 한단다. 그 이야기를 들으니 부담을 가질 수밖에 없겠단 생각이 들었다. 여수에서도 두 시간이면 목포까지도 갈 수 있는 거리다. 같은 전라도지만 끝에서 끝이다. 그런데 그 친구 왈, 대부분 사람들이 제주도가 섬이니 모두 다 지근거리에 있을 거라고 착각한다는 거다. 나도 직접 제주도를 돌아보고 나서는 그 친구 말에 전적으로 동의하게 됐다.
숙소는 위미항 가운데 자리하고 있었다. 한눈에 보기에도 지은 지 얼마 되지 않아 보인다. 하루 종일 아무것도 먹지 못해 체크인을 마치자 배낭을 멘 채로 편의점으로 향했다. 먹는 거에는 크게 의미를 두지 않는 성격 탓인지 여행을 오면 편의점 도시락으로 끼니를 때울 때가 많다. 아직까지 혼자 식당 찾아가서 1인분 시키는 건 미안함을 넘어 죄악과도 같다고 생각한다. 나이 든 티가 이런 데서 난다. 여담이지만, 스물일곱 때, 일 때문에 거문도를 간 적이 있었다. 워낙 먼 거리다 보니 당일치기는 어려웠고 차까지 싣고 가야 하니 쾌속선이 아닌 철부선을 타고 가야 했다. 다섯 시간 반 만에 도착해서 겨우 일을 마치고 숙소를 잡고 나니 몹시 출출했다. 그래서 숙소 주변 식당을 찾아 "식사할 수 있냐" 묻자, "죄송한데 밥이 다 떨어졌다"며 미안해했다. 그래서 그 옆집 식당에 들어가서 "식사할 수 있냐" 묻자 또 똑같이 "밥이 다 떨어졌다"는 거다. '오늘은 관광객이 많았나 식당들이 모두 밥이 없네'. 그런데 세 번째 들어간 식당에서도 똑같이 밥이 다 떨어졌다는 것이 아닌가? 세 번째 식당을 나오면서 알 게 되었다. 밥이 없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그래서 식당을 나오면서 '전라도에 그것도 섬에서 뭔 이런 일이 다 있냐'며 투덜거리는데, 마침 그 모습을 본 중국집 아저씨가 평상에 나와 장기를 두다 말고 "그냥 짬뽕 먹으세요"하며 주방으로 들어간다. 그래서 난 팔자에도 없는 거문도 짬뽕을 주문하지 않고 강제로 먹었던 기억이 있다(물론 밥맛이 사라져 먹다 말았다). 물론 20년 전 이야기이고 지금은 문화가 많이 바뀌었지만 그때 이후 난 고속도로 휴게소를 제외하곤 어지간하지 않으면 혼자 식당을 찾아가 밥을 먹는 일이 거의 없다.
저녁까지 생각해서 도시락을 두 개와 컵라면을 사서 숙소로 올라왔다. 대충 씻고 도시락으로 허기를 채운다. 밥을 먹고 나니 더 피곤하다. 일단 제주도에 온 목적은 달성했으니 남은 며칠은 아무래도 상관없다. 아내가 특별히 하래한 시간은 넉넉했다.
눈을 떠보니 저녁 9시다. 창문 사이로 보이는 위미항에는 낮동안 내리쬐던 햇살은 온 데 간 데 없고 어둠이 짙게 깔렸다. 나는 뭉친 다리도 풀 겸 위미항을 걷기 위해 숙소 밖으로 나왔다. 이상하게 제주도는 갯내음이 없었다. 여수에 살다가 잠깐 순천이나 광주만 다녀와도 여수에 들어서면 독특한 여수만의 바다내음이 느껴지곤 한다. 그런데 이상하리만큼 제주도는 바다내음이 나질 않는다.
항구는 어두웠다. 듬성듬성 몇 개의 가로등만이 항구를 비추고 있었다. 좌우로 방파제가 서로 닿을 듯 말 듯 길게 뻗어 있다. 빨간 등대와 하얀 등대 사이로 배들이 드물게 왕래하며 위미항의 밤이 깊어 가고 있다.
한라산을 오르던 중 전화벨이 울렸다. 물론 받지 않았지만 순간 불편감이 느껴졌다. '하필 이 순간에 전화라니...' 왜 전화했는지 이유를 알 수 없지만, 지금 이 기분을 망치고 싶지 않았다. 제주도에서 돌아온 뒤에도 몇 번의 전화가 왔지만 나는 받지 않았다. 앞으로도 받지 않을 것이다. 지금 나에게 중요한 것은 관계에 매몰된 나를 끄집어내어 바로 서게 하는 것이다.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소비할 감정이 남아 있지 않다. 그러고 싶지도 않다. 그건 그들에게 해당되는 말이다. 관계 회복을 원했다면 그 선을 넘지 말았어야 했다. 나는 오래전부터 그 선을 넘지 않기를 바랐다. 그러나 허사였다.
하얀 등대 옆으로 보름달이 떴다. 그 달 아래 갈치와 한치 잡는 배들의 집어등 불빛이 하늘과 바다 경계를 짓는다. 우리는 매일 경계에 서있다. 그 속에서 넘을 것인가 말 것인가를 고민한다. 경계선이 명확하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을 때가 훨씬 많다. 무엇이 옳은 것인지, 어떻게 하는 것이 맞는 것인지 모호할 때가 많다. 바다를 그토록 봐 왔지만 제주도 바다는 여전히 낯설다. 낯선 제주바다에서 제주 밤이 깊어간다.
얼마 전 이사오며 가지고 왔던 매트리스를 아파트 집하장에 버렸었다. 그런데 매트리스는 한 달이 다 되어 가도록 그곳에 적재되어 있었다. 집을 나설 때마다 눈에 들어오는 매트리스가 불편했다. 왜 빨리 가져가지 않는 것인지... 제주도를 다녀오며 이토록 불편스러운 감정들을 털어내고자 했고 털어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문득문득 그때의 감정들을 느낄 때마다 버렸던 매트리스가 생각이 난다. 사실 나는 버렸으나 아직 버리지 못했는지도 모른다. 아직 시간이 더 필요한 것은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