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닫힘 버튼이 없는 엘리베이터를 타본 적이 있나요?

by 페로 제도 연구소
출처: 한국일보

한국의 엘리베이터에서 흔히 보이는 사진이다. ‘열림’ 버튼은 멀쩡한데, ‘닫힘’ 버튼만 유독 닳아 있다. 사람들이 가장 많이 누른 자리. 다들 어디론가 빨리 가고 싶은 마음이 그 자리에 남아 있다.


페로 제도의 한 호텔에 도착해 체크인을 하고 엘리베이터를 탄다. 습관적으로 닫힘 버튼을 찾는데,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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없어?

다시 살펴봐도 없다. 다른 위치에도 없다.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다. 당황스러움은 잠시, 이상하게 마음이 느긋해진다. 버튼 하나 없을 뿐인데 엘리베이터가 달라 보인다. 닫힘 버튼이 없어서 얼마나 더 많은 사람들이 엘리베이터를 놓치지 않을 수 있었고, 또 스쳐가는 인연을 마주했을까.


빨리 닫히지 않아도 괜찮은 리듬, 기다림이 자연스러운 속도. 어쩌면 지금 우리나라에 정서적으로 꼭 필요한 가치가 아닐까? 페로의 문화가 이렇다고 단정 지을 순 없지만 그 순간만큼은 그런 기분이 들었다. 그제야 전국에 신호등은 9개밖에 없지만 교통질서가 유지되고, 차선이 1개뿐인 양방향 통행 터널이 그렇게 많지만 터널 내 사고가 일어나지 않는 이유가 이해된다. 닫힘 버튼이 없는 그 엘리베이터처럼, 삶도 조금은 느긋해져도 괜찮지 않을까.


닫힘 버튼이 필수가 아니라는 걸 알게 된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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