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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어틴 Aug 07. 2018

꽃보다 엄마

유럽 배낭여행으로 만나는 부모님의 청춘 

오늘의 주파수: 유럽 배낭여행으로 만나는 부모님의 청춘(feat. 어떻게 준비하지?)


나영석 사단의 <꽃보다 할배> 리턴즈가 절찬리(?)에 방송하고 있다. 대한민국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유럽 여행의 붐을 일으켰다 해도 과언이 아닌 꽃보다 시리즈. 아이슬란드, 라오스, 아프리카 등 다소 한국에 잘 알려지지 않은 나라까지 소개해주던 꽃보다 시리즈가 이번에는 다시 유럽을 향했다.


처음에 <꽃보다 할배>를 봤을 때, 나에게 꽂힌 것은 유럽의 모습을 보는 것보다 어르신들을 잘 모시기 위한 짐꾼 이서진의 고뇌였다.  나도 우리 부모님과 여행을 가면, 내가 저렇게 까지 모실 수 있을까?


그래서 준비해봤다. 부모님께 의존하는 여행이 아닌 자식이 리드하는 여행. 부모님의 취향을 파악해 함께 즐겁게 여행할 수 있는 방법-엄마와 함께 했던 유럽 여행에서의 경험들로 정리해봤다. 부모님과 함께 배낭여행을 가기에는 유럽만 한 곳도 없다. 첫째, 걷기 좋은 오래된 도시들. 부모님 세대 때는 있던 트램을 보고 탈 수 있어서 부모님이 꽤 좋아하신다. 둘째, 부모님도 배우고 나도 배웠던 역사 관광지가 많아서 세대에 상관없이 공통분모가 생기게 된다.  마침 현재 방송되고 있는 <꽃보다 할배>에서체코 프라하, 체스키 크룸로프를 간 덕분에 하나하나 추억이 떠올랐다. 나의 경험을 바탕 삼아 부모님과 함께 유럽 여행할 때 어떤 것을 어떻게 준비하면 되는지 등 몇 줄씩 적어보려 한다.

꽃할배들도 거닌 체코 프라하의 카를교에서 엄마와 함께 . 유럽의 도시는 걷기 좋은데 엄마와 함께라 더 좋았다. 

엄마의 경우 전적으로 아빠에 의존하여 여행을 하신 분이셨고 패키지여행을 즐기셨다. 그에 비해 나는 스스로 알아보고 찾아보고 계획을 세워놓고 즐기는 여행을 선호한다. 내가 좋아하는 여행-하나부터 열까지 내가 선택하고 내가 준비하는 여행의 즐거움을 엄마께도 알려드리고 싶었다. 나의 경우 모든 교통 경비(항공, 기차, 패스, 배 등..)는 내가 내고 숙박 및 현지 용돈은 엄마와 나눠 내는 걸로 결정했었다. 



1. 미디어를 잘 활용하면, 부모님도 꼬드겨진다.(?) 

"나 다음 명절 때 휴가 붙여서 체코랑 다른 나라 하나 붙여서 유럽 여행 갈건대, 엄마도 같이 갈래?"


이모들 또는 아빠 아니면 외국 여행 가는 것을 쉽게 생각 못했던 엄마는 여행 결정을 내리는데 한 달이란 시간이 걸렸고, 덕분에 항공권 값은 더 뛰어올랐었다. 값이 오른 항공권은 내게 다소 부담이 컸었다. 직항을 알아봤던 것에서 결국 환승으로 예약하게 됐다. 가는 비행 편은 중국에서 스탑오버 후 스위스->체코로 또 환승하는 2번 환승이었다.


나도 이런 식의 환승은 처음이었지만, 어렵게 다가오진 않았다, 하지만, 지하철 환승도 몇 번 체크하고 가시는 엄마에게 이를 어떻게 설명할까-하다가 문득 <꽃보다 청춘-아프리카> 편에서 박보검이 비행기를 놓쳐 공항 내 호텔에서 하룻밤 자고 아침 일찍 나미비아 비행 편을 탄 에피소드가 생각났다. 

부모님을 쉽게 이해시키는 데에 TV에서 나오는 것만큼 적당한 비유는 없음을 깨달았었다. 미디어를 활용하여 복잡한 루트를 잘 설명하면 좋다.


2. 여행 계획은 되도록 같이 짜며 스케줄표를 만들어 보여드리자 (feat. 부모님의 취향을 알아가자)

우리 엄마처럼 패키지에 익숙해져 계신 부모님이라면 여행 계획을 짜는 것이 익숙하지 않으실 것이다. 나의 경우, 체코와 스위스 여행책을 사서 가고 싶은 곳을 찾아두시라 하고 출근했고 퇴근해서 숙제 검사하듯 매일 물었다. "어디 가고 싶은데 찾았어?"(... 생각보다 잘 안 찾아 놓으셨다)


물론, 드리기 전에 그 책은 내가 완독을 해놓은 상태여야 한다. 그래야 여긴 어떠냐 추천도 가능하니까. 가족이 가장 힘든 것이 서로 자신의 취향과 가족의 취향이 비슷할 거라  믿고, 그렇지 않을 경우 실망이 커서 싸우게 된다고 한다. 여행이란 즐거움을 기대하며 서로 이것저것 추천하다 보면 취향에 대한 부모님과 나의 공통점, 다른 점도 자연스럽게 알아갈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자연스레 부모님의 취향을 알 수 있는 좋은 기회도 될 것 같다.

실제로 내가 만든 스케줄표. 패키지에 익숙한 엄마께 이만한 참고서는 없었다.

그리고, 이를 스케줄표로 만들어서 보여드리면 좋아하신다. 즐겨보시는 꽃청춘 로고 넣어서 만들어드리니 여행 책보다 그것만 계속 보시고 일정을 확인하셨다.


3. 여행 가기 전, 부모님의 짐가방을 점검하자. 나는 가이드이며 급한 순간엔 짐꾼이 될 것이다.

짐꾼과 가이드를 겸비해야 하는 상황이므로 부모님이 조금 더 가볍고 편하게 여행하실 수 있도록 어느 물건을 가져가시는지 확인해보도록 한다. 일정과 맞게 옷을 가져가시는지(날씨, 교통, 도보 상황 등) 평소 자유여행을 즐기지 않으신 부모님이라면 필요한 절차이다. 


나의 경우, 엄마가 패키지에 익숙하셔서 이것저것 다 가져가시는 편이셨다. (패키지에선 캐리어를 버스에 넣고 다니니까..) 이번 여행의 경우 그 누가 짐을 끌어주거나 하지 않으므로, 엄마가 끌기에도 적당한 무게여야 했다. 옷 같은 것은 적당히 사 입을 수 있는 도시 위주의 여행이었기 때문에 엄마의 옷 반이상을 빼냈었다.


여기서 간파하지 못한 게 신발이었는데, "제일 편한 신발들로 가져가야 해!"라고 말해드렸더니 누가 봐도 발 아프게 생긴 꽃 그려진 겉 딱딱한 운동화를 가져오신 것. "패키지에선 이거 신고 다니면 편했는데..."  알다시피 유럽은 오히려 걸어 다니는 코스가 많아서 발 편한 운동화가 좋다. 그래도 프라하가 도시라서 깔창을 살 수 있었고, 결국은 운동화도 하나 샀다.

결국, 프라하에서 사드린 발 편한 신발. 평소엔 스니커즈 싫어하셨는데 여행해 도취되셨는지 스니커즈를 고집하셨다. 둘이 사이좋게 한 켤레씩. 


4. 야간열차 여행 시, 우리끼리만 있을 수 있는 객실로 예약하자.

부모님이 타인, 그것도 외국인을 낯설어 할 수 있는 것도 있지만 무엇보다 숙박을 해야 하는 야간열차라면 잘 쉴 수 있도록 편한 방이 좋다. <꽃보다할배-스페인>편에서 할배들이 4인승 방에 주무시며 서로 거동조차 힘들어하시던 모습을 기억해보면 좋다.


기차에서 잠을 자는 것을 엄마가 꺼려할 수도 있었지만, 이 역시 미디어의 힘을 활용하여 설득시켰고(아아.. 나영석 리스펙...) 화장실도 편히 이용하실 수 있도록 화장실 딸린 2인실 객실로(ensuit)로 예약했다. 프라하에서 1박 하고 다음날 아침 비행기 타는 것에 비해 더 비쌌지만, 야간 기차여행이라는 추억도 만들 수 있고 기차 타고 유럽의 이름 모를 들판을 함께 보는 것도 추억이 될 거라 생각했다. 달리는 기차에서 편히 샤워도 하시고 편히 쉬시며 노을 지는 유럽 들판을 보며 눈이 반짝거리던 엄마를 본 것이 기억이 난다. 

달리는 기차에서 엄마와 함께 본 체코의 노을.
남들과 함께 썼으면 이렇게 편히 계시지도 못하셨을 것 같다. 정말 편하게 기대어 누워버리신 엄마.

밤새 기차 연결 소리에, 덜컹거림에 난 푹 잘 수가 없었는데(국경을 넘거나 할 때 가끔 여권과 티켓을 제시해달라고 한다고 해서 머리맡에 엄마와 내 여권, 기차표, 그리고 뭐라 말할 것인지 긴장하느라) 엄마는 덜컹덜컹 거리니 요람 같아서 푹 잤다고 하셨다. 지금은 없어진 국내의 침대열차 얘기도 했었고 프라하 역에서 산 빵과 과일들을 오물오물 먹으며 수다도 떨었다.


2인실 ensuit(화장실 포함)인 열차 객실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내릴 때까지 한 번도 문을 열지 않고 방안에서 모든 게 해결이 됐었다. 만약, 타인과 같이 쓰는 방이거나 화장실을 공용으로 써서 방을 드나드는 일이 있었다면 낯선 기차 여행에 더 편하게도 있지 못했을 것 같다. 

저녁 식사는 프라하역 마켓에서 산 것들로. 엄마도 나도 저녁식사는 과하게 하지 않는 편이라 간단히. 제일 천천히 먹었던 식사.
좌/ 위는 엄마가, 아래는 내가. 덜컹거렸지만 작은 공간에서  편히 있을 수 있었던 게 제일 강점! 우/와인 보다는 홍삼정! 아침에 하나씩 꼭 챙겨드렸다. (면세점에서 구매 가능)


5. 숙소를 예약할 때, 부모님과 함께 살고 싶었던 집으로 예약해보자.

유럽의 경우, B&B가 동화 속 집 같은 느낌의 유럽 감성 짙은 인테리어인 경우가 많다. 편한 호텔도 좋지만 유럽은 호텔비도 비싸니까. 교통이나 관광지 이동이 편한 곳으로 고르는 것은 필수고 옵션으로 평소 부모님께 제안하고 싶었던 분위기의 집을 예약해서 지내보는 것은 어떨까.

체스키크롬로프에서 묵었던 다락방. 창 넘어 교회가 있어서 아침에는 종소리에 깨기도 했다.

나의 경우 체코의 체스키 크룸로프에서 묵은 방은 동화 속 집처럼 지붕 바로 아래 다락방이었다. 어린 시절부터 내 방으로 꿈꾸던 곳이기도 했지만, 엄마와 함께 유럽을 여행하는 동안 창이 큰 집, 다락방, 산이 보이는 집 등 평소 가족과 함께 있어보고 싶었던 방을 골라서 예약을 했었다. 현재 우리 가족은 한 집에서 30년 넘게 살고 있어서 집과는 다른, 새로운 공간에 함께 있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컸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B&B나 호텔이어도 가정집 같은 느낌의 인테리어의 방에 묵다 보니 엄마가 좋아하는 작고 소소한 행복도 엿볼 수 있었다. 작은 창에 있던 꽃화분, 그곳에 놓인 긴 소파, 앞의 작은 테이블, 원목의 느낌.. 모두 기뻐하고 좋아하셨다. 집에서는 알 수 없었던 엄마의 취향들이었다. 

스위스 인터라켄에서는 알프스의 산들과 옥색의 아레강이 보이는 경치를 골랐다. 창문만 열면 보이던 동화 같은 광경들. 숙소 오면 창문을 열고 엄마와 이 경치를 감상하곤 했다.
체코 프라하에서 묵었던 방. 엄마는 높은 천장과 넓은 창이 있는 이 곳을 '우리집'이라고 표현하시기도.

서비스도 편한 호텔에서 머무는 것도 좋겠지만 늘 같은 공간에서 마주하는 가족을 새로운 거주 공간에서 마주할 때 서로의 새로운 면도 만나는 것 같다. 가족이라지만 같이 살다 보니 불편한 것도 익숙해져서 서로 어떤 점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조차 생각도 못해본 것이었는데, 여행의 숙소를 통해 자연스레 그런 부분을 자연스럽게 캐치할 수 있는 장점이 있었다. 



유럽을 거닐던 엄마의 뒷모습은 어쩐지 낯설었다. 내가 생각했던 그 그림 같은 풍경에 너무나도 익숙한 엄마가 서있는 것, 그리고 엄마의 뒷모습을 이렇게 오래 본 적이 있나 싶었다. 지금의 청춘이라 불리는 사람들에게 로망이기도 한 유럽 배낭여행을 통해 엄마의 청춘을 만날 수 있었다. 


그래도 가장 기억에 남는 엄마의 뒷모습은 패러글라이딩하며 순식간에 사라지던 순간이었다. 하늘을 나는 엄마를 보며 나는 많이 울컥했었다. 자식이 알아봐 주지 않았으면 이런 도전조차도 해볼 생각도 안 할 분인걸 알았기 때문에 내가 즐거워할 것들을 함께 즐겨주시니 감사한 마음이 컸던 것일까. 하지만, 엄마도 엄마에게도 큰 도전이었던 패러글라이딩을 하시며 너무 재미있었고 행복하셨다고 한다. 이 여행을 통해서 새로운 즐거움을 부모님과 많이 나누고 함께 오래 행복하고 싶다는 바람이 생겼다. 




여행 휴가철이 끝나고 추석, 개천절-한글날 연휴를 활용해 외국 여행을 계획할 시즌이다. 친구랑 가는 것도 좋고 혼자 가는 것도 좋지만 <꽃보다 할배>를 보고 할배들의 지혜로움과 언제나 청춘인 모습에 존경하는 마음이 들었다면, 이번 여행은 부모님과 함께 가보는 것은 어떨까? 집에서도 그랬듯이 여행 가서도 부모님의 잔소리는 존재하고 그로 인한 티격태격은 존재하지만, 집에서는 만날 수 없었던 부모님의 청춘을 만날 수 있다. 당신의 다음 유럽 여행은 부모님의 청춘과 주파수를 맞춰지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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