텃밭에서 자라는 채소들은 꽃이 지고 바로 열매가 달릴 때는 모두 같은 모양이었다. 그런데 자랄수록 이상하다. "오이밭에 오이가 길쭉길쭉"이라는 유아 동요가 있다. 우리 텃밭의 오이는 "오이밭에 오이가 꾸불 꾸불"로 부를 수밖에 없는 모습이다.
텃밭의 오이를 보러 온 사람마다 "널 닮아서 못생겼다"는 말을 계속했다. 오이가 거의 허리를 구부리고 자라 있었기 때문이다. 오이 대를 세워주지 않고 땅과 가깝게 자라 못생긴 오이로 자라게 된 줄 알았다.
그런데 이번 주에 새로 만난 아이들은 못생겼다는 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비가 내리지 않아 거의 전멸이려니 했는데 마른 잎사귀 사이로 오이는 잔뜩 열려 있었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볼수록 그 모습이 가관이다. 생전 처음 본 오이의 모습이었다. 허리는 거의 꼬부랑 할머니고, 너무 구부려진 나머지 숫자 모양으로 자란 오이도 있다.
그것보다 더 기괴한 것은 오이 대와 연결된 머리 쪽은 작고 몸통 쪽으로 비대하게 자라 있다는 것이다. 텃밭 집사가 집을 비운 사이 영양분을 몸 전체로 골고루 분사시켜 주시 못해 기형아 모습이 되고 만 것이다. 오이를 따면서 물을 주지 못한 죄인이라 오이에게 너무 미안한 마음이 들 정도였다.
호박 밭에는 다른 애호박보다 2배는 큰 거대 호박도 자라고 있다. 분명히 애호박 씨앗을 심었는데 이렇게 큰 거대 호박으로 자랄 줄은 몰랐다.
애호박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잎을 살짝 들쳐보자 그곳에 자리 잡고 있는 애호박을 보고 소스라치게 놀랐다. 바로 샴쌍둥이 애호박이 자라고 있었다. 머리가 두 개 몸통이 두 개 그런데 둘 다 꼭 붙어서 자라고 있었다. 한 개의 생명체가 아닌 두 개의 생명체였다. 생전 처음 보는 돌연변이 호박이었다. 호박을 따면서 이거 따도 되나 하는 섬뜩한 기분마저 들었다.
사실 돌연변이 채소를 텃밭에서 처음 본 것은 이번만이 아니다. 시골 친구에게 얻어온 가지 모종을 부추밭에 심었는데, 몇 주 전에 열매가 열렸다. 지난주에 내려와 자라기 시작한 가지 생김새를 보며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가지가 걷는 모양처럼 생겼기 때문이다. 머리는 하나이지만 몸과 다리가 두 개였다.
이번 주 다른 채소들을 보기 전, 처음 가지만 봤을 때는 신기하다 정도의 가벼운 느낌이었다. 그런데 생김새가 이상한 오이들과 머리와 몸통이 둘이지만 꼭 붙어 자라는 호박과, 머리는 하나이지만 몸이 두 개인 가지까지 돌연변이 채소들을 보자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지 하는 의구심이 든다.
씨앗이 잘못되었을까? 토양이 잘못되었을까? 만약 토양이 잘 못되었다면 오이와 호박은 상토에서 키워 그렇다고 치자. 그런데 일반적인 토양에서 자란 가지도 돌연변이가 나왔으니 토양이 잘못되었다고만 할 수가 없다.
그렇다면 씨앗에 문제일까? 채소도 기본 정보를 DNA에 저장한다. 방사능의 영향을 받은 씨앗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맛과 수확량을 늘리기 위해 유전자 변이로 만들어진 돌연변이일지도 모른다. 슈퍼푸드를 만들기 위해 유전자 변이로 생겨난 기형아들이라면 결코 기분 좋은 일은 아니다.
돌연변이 채소들은 자연의 축복일까? 유전자 변이가 만들어낸 기형아 채소일까?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것이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텃밭에 돌연변이 채소된 확률은 환경적인 요인이 가장 클 것이다. 우리 집 텃밭 채소들만 돌연변이 채소들로 자란 것일까? 그것이 몹시 궁금하다. 오이는 물을 주지 않은 이유도 있다. 거름을 과다 투하한 실수 때문일 수도 있다. 일반 흙이 아닌 오직 상토에서 거리두기 없이 밀집으로 자라도록 한 것에서 나름대로의 원인을 찾아보았다. 그러나 하늘이 채소들을 키워주기만 바라는 초보 텃밭 집사는 아무것도 모른다.
이번 주에 수확한 오이, 호박, 가지는 시골집에 방문한 가족들에게 사랑받지 못했다. 기괴한 채소의 모습에 아무도 가지고 가려하지 않았다. 돌연변이 야채를 먹었다가 몸에 이상이라도 생길까 봐 지레 겁먹은 것이다.
그러나 내 눈에는 돌연변이 채소도 사랑스럽다. 생긴건 이상하고 못생겨 보여도 순수 100% 유기농으로 오직 하늘이 키운 채소들이기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