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른거리는 열기 속 산책하다 SF 드라마 찍은 사연

by 약산진달래

한번 만보를 채우니 될 수 있으면 만보를 채워보려고 노력하는 중이다. 여유롭게 주어진 시간 30분 산책에 나서본다. 건물 밖으로 나오니 비가 멎고 쨍쨍 해가 떠있다. 도로에 가라앉은 공기의 후덥지근한 열기가 갑자기 올라온다.

건물과 자동차에서도 대기 가스로 열을 내뿜고 있는데 오전에 내린 비의 물기를 모두 말려 버리려는지 해마저 도시를 말리려고 한다. 그 열기로 인해 도시가 아른아른 흔들거린다.

그래도 잠시 산책의 즐거움을 찾아보리라. 몇 걸음 안 걸었는데 벌써 온몸에 달라붙는 습기가 차오른다.


가로수 방향으로 걷고 있는데 오늘따라 유난히 빨간 박스가 눈에 띈다. 늘 이 길을 걸을 때면 같은 자리에 있었다. 그런데 오늘따라 이곳의 모든 것과 이질감이 느껴진다. 비 내린 후 갑자기 뜨거워진 날씨에 몸이 적응하지 못해서인지 해가 내리쬐며 도시의 물기를 빨아들이는 기운이 느껴져서 인지 모르겠다.

빨간 공중전화박스가 sf드라마 닥터 후의 순간이동 공중전화박스 같은 기분이 든다. 닥터 후는 어딘가에 갇혀있고 나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에 여기저기 신호를 보낼 만한 곳을 두리번거리며 찾아보았다.

혹시 전화박스 열쇠라도 눈앞에 나타나는 것은 아닌지 찾아보았지만 티브이 영화 속의 한 장면일 뿐 닥터 후의 빨간 전화박스가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계속 재생되는 닥터 후를 만나 행성 어딘가로 타임 로드하는 모습을 상상해보았다. 지구를 침공한 외계인들이 살고 있던 과거나 미래 어딘가로 타임 로드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 빨간 전화박스를 보는 것만으로 시간여행을 떠나 잠시 추억에 젖어 볼 수는 있다.

빨간 공중전화박스는 삐삐를 받고 전화를 걸기 위해 줄을 서던 과거로 돌려보낼 수도 있다.

더 먼 과거로 돌아가 동전이 없어도 콜렉트콜을 누르며 누군가에게 전화를 하던 그날로 보내줄 수도 있을 것이다.

시골집에 전화를 놓게 되면서 주머니에 동전이 있다면 시골집에 전화를 걸기 위해 줄을 서던 그 먼 과거로도 돌아갈 수 있을 것이다.

가로수길 안으로 들어서자 시원한 바람이 불어왔다. 걸어오는 내내 온몸이 지구를 침공한 외계의 바이러스에 걸려 끈적끈적한 땀으로 범벅되었는데 가로수길을 걸으며 다시 지구로 돌아와 정상인이 된 느낌이다.

걸어갔던 가로수길을 다시 돌아오며 빨간 전화박스 옆에 무심한 듯 쓰레기까지 투기되어있는 것을 보니 다시 sf영화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빨간 전화박스 안으로 들어가면 어딘가 다른 세계가 나를 기다릴고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지구를 정복하기 위해 외계인들이 심어놓은 코로나바이러스로부터 지구와 인류를 구하기 위해 전화박스 안으로 들어가야 하는 것은 아닐까? 지금 전화박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면 닥터와 함께 시공간을 누비며 타임 로드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비 온 뒤 아스팔트의 아지랑이 같은 태양의 열기 속의 산책길은 비몽사몽간에 sf 드라마 속으로 들어가 비현실 세계를 걷다가 돌아온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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