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네시 해가 서서히 지기 시작하려는지 오늘도 하늘은 반쯤 구름에 가려있다. 비가 올 듯 오지 않는 무더위 속에서 햇볕을 피해 구름에 가려진 길을 걸을 수 있는 날이다. 무더위에 뒹굴거리며 게으름을 피우다가 이럴 때가 바로 산책을 나서야 할 시간이다. 생각하며 집을 나섰다.
청소년 문화의 집 위 산길을 들어섰다. 여름이 가기 전에 한 번쯤은 산으로 향하는 두레길을 걸어봐야지 했는데 하루 이틀 미루다 보니 벌써 7월의 끝이다.
가파른 계단 길에 발을 들여놓자 마자 숨이 턱 막혀 온다. 그만큼 폐활량이 떨어져 버렸다. 일주일에 두세 번 이 길을 걸을 때만 해도 올라가는 길쯤이야 아무것도 아니었다. 게으름을 피우는 사이 몸도 굼뜨고, 폐도 헉헉 거린다. 체력이 거의 바닥이 되어버렸다는 것을 실감하는 요 며칠이다. 힘없이 나무에서 떨어져 버린 밤톨처럼 안타까운 체력이다.
바람 한점 없는 숲길을 걷다 보니 마스크에 땀이 너무 많이 찬다. 몸에 송글 송글 맺히는 땀이야 그저 그런대로 참을 수 있지만 입 주위에 가득 찬 땀은 어떻게든 해결하고 싶어 땀을 닦아 냈다. 마스크트랩을 안 하고 나와 마스크를 벗기도 턱에 걸기도 애매해졌다. 에라 모르겠다. 땀에 젖은 마스크를 쓰기가 싫어 그냥 벗어 버렸다.
사람이 지나가지 않아 자연스럽게 손에 터덜 터덜 마스크를 들고 산길을 걸어간다. 잠시 바람이 솔솔 불어와 젖은 땀을 말려 주었다. 땀으로 흥건히 젖은 몸을 말려주는 것보다 이 순간만큼은 땀에 젖어 버린 마스크를 말려주는 것이 너무나 고마운 바람이다.
산길을 걷는 것은 자연과의 교감이 필요하다. 풀들도 나무도 새들도 제각각 자신의 소리를 내고 있지만 자세히 관찰하지 않으면 교감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새들의 울음소리가 가득한 숲길이다. 어떤 새들이 오늘은 이토록 울어대는지 자세히 그들의 세계 속으로 들어가 보려 하지만 새들은 내가 들어보려 하면 이상하게 그들의 소리를 멈추어 버린다.
이름 모를 풀들이 잔디처럼 펼쳐진 길을 따라 지나가다 대나무길을 지나면 가파른 언덕이 나온다. '나 홀로 산행은 위험'하다는 글귀가 처음 이곳으로 산책을 나왔을 때만큼 무섭게 다가오지 않는다.
내가 가고 있는 길이 어디로 가는지 길을 안다는 것은 두려움도 없애 준다. 연고지를 찾는 많은 무덤들을 만나더라도 안심이 된다. 내가 가고 있는 길의 다음에 무엇이 있는지 알고 있기 때문이다.
나무를 타고 내려오거나 풀을 타고 올라가는 덩굴 잎처럼 삶의 매 순간마다 오르려고 아등바등하지 않기를 바란다. 순식간에 지상으로 내려오더라도 너무 슬퍼하지 않기를 바란다. 그저 모든 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면 삶은 좀 더 평안해질 테니까 말이다.
한실 큰 고갯길, 늘 이곳에서 앞으로 한 고개를 더 넘어갈까 아니면 그냥 내려갈까 고민을 한다. 오늘은 그냥 내려가는 것을 택했다. 무더위에 산 위까지 아이들을 데리고 오신 부모님은 대단하다는 생각을 한다.
바람 한 점 없는 산길을 땀을 줄줄 흘리며 걷는다는 것은 모기나 다른 벌레들의 추격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오늘 절실히 깨달았다. 산책로를 걸어가는 내내 내 주위를 윙윙거리는 모기를 쫓느라 손을 휘저어야 했으니까 말이다.
하늘은 여전히 멋진 구름을 보여주고 맥문동이 피어나는 길을 따라 도로로 나왔다.
이제 다시 뜨거운 열기로 가득 찬 아스팔트 길을 걸어간다. 다행히 이길도 사람들이 많이 지나가지 않는 길이다. 갑자기 굵은 비 한 방울이 떨어졌다. 집으로 돌아가는 시간에 소나기를 만날 것 같아 발걸음을 서둘렀다. 그러나 한두 방울로 그치고 말았다. 땀으로 흠뻑 젖어 걸어가는 길 비라도 맞고 걸어갔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했다. 집으로 가는 길 비는 내리지 않았다.
구름이 햇빛을 가리기는 했지만 바람 한 점 없는 시간 오후4시 두레길 산책은 땀을 줄줄 흘리며 모기를 쫓는 산책이었다. 다행히 4000보를 걸었다.